정치
한일 남녀, 그들이 사랑하기까지 [매듭&맺음(結び)]
입력 2024-10-10 15:43  | 수정 2024-10-11 10:16
한일 로맨스 혼전연애 방송 캡처본 | 출처 : MBN
◇ 에필로그


배우 최다니엘이 데이트를 앞두고 차량을 몰아 집 앞까지 데리러 옵니다. 일본 배우 겸 가수 카호는 익숙하지 않은 듯 감격해 다시 집으로 들어가 친구들에게 이를 자랑합니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혼전연애>는 한국 드라마를 보고 로망을 갖게 된 일본 여성들이 한국 남자들과 새로운 사랑을 꿈꾸며 데이트를 진행하는 연애 프로그램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혼인 건수는 840건으로 전년보다 40% 늘었습니다. 한일 관계에 대한 기획 취재를 준비하다 보니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자꾸 '과거사' 등 무거운 주제로만 생각이 미쳤습니다. 하지만, 한 취재원이 한국과 일본의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얘기를 들어보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순간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조사는 한국갤럽에 의뢰해 10월 3일 FGD(Focus Group Discussion) 좌담회 방식으로 2시간 동안 진행됐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한국 남성-일본 여성 두 커플·7년차 한국 남성-일본 여성 부부·19년차 한국 남성-일본 여성 부부·10년차 일본 남성-한국 여성 부부를 섭외했습니다. (다만, 국적 뿐 아니라 개인의 차이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 기사는 전체 의견을 표방하지는 않습니다.)

조사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습니다. 처음에는 말을 꺼내는데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민감한 내용도 부드럽게 풀어낼 수 있었고 서로 공감하며 웃을 수 있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교제 중인 커플은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부부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고, 부부들은 지난 삶을 짚어보며 자신들과 다른 젊은 커플들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 한일 남녀, 한국-일본에 대한 선입견은?

일본 여성 A(2년 교제, 내년 결혼 예정)
"K-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의 다정다감한 이미지가 좋았다."


일본 여성 B(결혼 7년차)
"예전 TV 뉴스에서 보는 한국은 되게 무섭고 나쁜 나라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 남성 C(5년 교제)
"일본인들이 개인주의 성향이 많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에게 ‘실제로 여자친구가 연락을 많이 안 하느냐, (개인주의라서) 한 달에 한 번은 연락 하느냐라는 질문을 들은 적도 있다.”


한국 여성 D(결혼 10년차)
"아버지가 일본을 정말 좋아했다. 아침마다 일본 음악을 들어서 친근한 것도 있고, 전자제품도 일본 제품을 선호했다.”


연인을 만나기 전 한일 남녀는 상대방의 나라에 대한 다양한 선입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긍정적인 이미지도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었습니다. 호불호는 어떤 루트로, 어떤 콘텐츠를 접하느냐에 따라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다수의 일본인은 최근 한류에 대한 호감을 많이 언급했습니다.

일본 여성 J(5년 교제)
K-POP 그룹 중에 아이오아이와 소녀시대를 좋아한다. 화려한 무대가 멋있다.”


◇ 그와 그녀가 만났다…첫인상은?

MBN-한국갤럽 한일 커플 5쌍 FGD 좌담회 | 2024.10.3

일본 여성 E(결혼 19년차)
"한국인과 살아보니 자기표현이 확실하고 감정 표현도 잘한다. 일본 사람들은 그런 것에 서툰 경향이 있다."


일본 여성 B(결혼 7년 차)
"한국인은 사랑하는 사람과 거리가 더 가까운 것 같다. 또 타인과 비교적 빨리 친해질 수 있는데 일본인은 마음을 열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한국인의 이러한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한국 남성 F(결혼 19년차)
"일본인들은 기본적으로 상당히 근검절약한다. 또 친절하다고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직접 가보니 예상보다 훨씬 더 친절했다.”


한국인과 일본인과 생김새만 비슷할 뿐 실제 만나보면 성향이 매우 다르다고 합니다. 커플들은 각자 자신과 다른 상대방의 매력에 끌렸습니다.

◇ 문화적·정서적 차이는?…”책임감으로 극복”

한국 여성 D(결혼 10년차)
"빙빙 돌려서 말하는 일본인의 어법을 참고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거리상으로 가깝지만 문화적·정서적으로는 먼 나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여성 B(결혼 7년차)
"남편은 밥을 먹을 때 너무 빨리 먹는다. 밥을 천천히 먹는 편이어서 처음에 남편 속도에 맞추면 소화가 안 될 정도였다. 다만, 지금은 익숙해졌다."


일본 여성 E(결혼 19년차)
"문화적 차이는 정말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 국적도 다르고 여자, 남자라는 성별도 차이가 있고…. 최대한 상대방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는데 잘 안 될 때도 있다."


한국 남성 I(결혼 7년차)
일본이 선진국 이미지가 강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불편한 게 많았다. 구청을 가더라도 번호표도 없이 수기로 써놓은 번호표를 주고 병원도 한국에서 어릴 때나 썼던 병원 기록지를 쓴다.”


바다 건너 다른 나라에서 수십 년 동안 살아온 남자와 여자가 만났으니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며 느끼는 차이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한국 남성 G(2년 교제, 내년 결혼 예정)
"이곳에 있는 여느 커플과 다 비슷하다고 생각을 한다. 한쪽이 다른 나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책임감이 더 많이 생기는 것 같다."


한국 남성 C(5년 교제)
"여자친구는 일본사람인데 와사비를 못 먹고 나는 한국 사람인데 매운 걸 못 먹는다. 이건 개인적인 특성일 뿐이지 일본인 또는 한국인 전체의 특성은 아닌 거다. 이런 생각으로 편견을 많이 내려놓게 됐다.”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고 만났다는 사실에 관계를 잘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기고 서로 더 이해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 가깝지만 먼 나라…사랑에 걸림돌?

한국 여성 D(결혼 10년차)
"한국의 지인들은 일본에서 지진이 나면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 일본인 시어머니는 결혼 초기 북한에서 핵무기 소식이 전해지면 전화를 하셔서 당장 지금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와서 살아야 한다고 걱정했다."


일본 여성 B(결혼 7년차)
"아버지가 한국이 아직 북한과 대치 중이어서 특히 걱정을 했는데 남편을 보시더니 마음에 들어 하셨다. 인간대 인간의 관계니 국적과는 상관없이 좋게 이어나가라고 말씀하셨다.”


국적이 다른 배우자를 만난다는 사실에 주변에서는 걱정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흔들리지 않고 인연을 이어가는 모습에 우려는 믿음으로 바뀌었습니다.

한국 남성 C(5년 교제)
"임진왜란 영화도 있고,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드라마나 영화가 많습니다. 얼마 전 노재팬 운동을 할 때 캠퍼스에 걸린 현수막을 보면서 여자친구와 함께 불편해했습니다. 다만, 그에 대해 굳이 서로 많이 이야기를 안 했던 것 같다."


일본 남성 H(결혼 10년차)
"독도는 어디 땅이냐고 한국 지인들이 물어보면 우리 땅이라는 노래가 있지 않느냐고 대답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간혹 (짓궃게) 우리가 어디냐고 묻기도 했다. 20대 때에는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면 반감이 생겼는데 결혼하고 애가 생기니까 그러든지 말든지, 그냥 맞장구치고 만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한일 커플들은 공통적으로 '국적은 다르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서로 바라본다'고 답했습니다. 언론과 정치인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하는 '과거사' 문제는 한일 커플이 만나 사랑을 싹 틔우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매듭&맺음(結び) :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준비한 MBN의 기획보도. 일본어 무스비(結び)는 매듭과 (인연을) 맺음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갈등과 우호 관계를 잘 매듭짓고, 새로운 인연을 잘 맺어보자는 의미를 담아봤습니다.


[이성식 기자 mods@mbn.co.kr, 김세희 기자 saay@mbn.co.kr]

※ 본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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