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 건설업자에게 금품 받고도 무죄 받은 검사에 사회적 공분 커져 시행
공직자의 배우자, '직무 관련해' 금품 '받는 것'만 금지… 위반해도 처벌 규정 없어
이번 논란, 입법 미비가 아닌 검찰이 '대가성' 좁게 해석해서 생긴 문제란 의견도
공직자의 배우자, '직무 관련해' 금품 '받는 것'만 금지… 위반해도 처벌 규정 없어
이번 논란, 입법 미비가 아닌 검찰이 '대가성' 좁게 해석해서 생긴 문제란 의견도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이 오늘(2일) 무혐의로 종결되면서 선물·접대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시행된 청탁금지법이 일정 부분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청탁금지법은 자녀의 담임교사를 비롯한 공직자에게 줄 수 있는 식사·선물·경조사비까지 제한할 정도로 국민들의 일상을 촘촘하게 규율해왔습니다.
그런데도 수백만원 상당의 선물을 주고받은 사실관계가 '몰래카메라'로 촬영돼 비교적 상세히 공개된 사건에서 최고위 공직자의 배우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에 국민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처벌 규정이 없으니 배우자는 금품을 받아도 되는 것이냐'라는 다소 냉소적인 반응도 적지 않습니다.
◇ '스폰서·벤츠 검사 무죄' 재발 막으려 만들어진 청탁금지법
2016년 시행된 청탁금지법은 건설업자나 변호사로부터 금품을 받고도 무죄를 선고받은 '스폰서 검사', '벤츠 검사' 등에 대한 국민적 공분 속에 탄생했습니다. 증명이 까다로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제재할 수 있도록 국민 눈높이에 맞게 사각지대를 보완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부정 청탁과 부당한 선물·접대 관행 자체를 근절하기 위해 금품 수수를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사적 거래에 따른 채무 이행이나 친족 간 제공 등 일부 예외 인정 사례를 열거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이처럼 강력한 법이 도입된 것은 적지 않은 공직자가 금품·접대를 받고도 부당하게 법망을 피해 간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폰서 검사'로 불린 한승철 전 검사장은 2010년 지역 건설업자로부터 140만원 상당의 식사·향응과 현금 100만원을 받은 혐의(뇌물수수 등)로 기소됐지만 직무 관련성을 인식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습니다.
'벤츠 여검사'로 불렸던 이모 전 검사도 내연 관계인 변호사가 고소한 사건을 동료 검사에게 청탁해 주고 벤츠 승용차, 샤넬 명품 가방 등을 받아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됐지만 청탁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아 무죄를 확정받았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 청탁금지법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현행법상으로는 공직자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 관계 없이 금품을 받는 경우 처벌받지 않는다"며 "아무 이해관계 없이 거액의 금품을 공직자에게 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행위이고 외견상 부정행위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적지 않은 금품을 주는 행위가 순수한 동기에서 비롯될 수 없고 일정한 대가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사진=연합뉴스
◇ 배우자엔 비교적 느슨한 규제…"강화해야" vs "과잉 우려"
하지만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100만원이 넘는 고가 금품은 받지 못하게 한 조항은 공직자 본인이 아닌 배우자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설사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았더라도 배우자를 처벌하지는 못하게 설계돼 논란의 여지를 남겼습니다.
김 여사 명품백 사건의 경우도 공직자 본인이 아니라 배우자가 금품을 받았다는 점이 혐의 유무를 갈랐습니다.
공직자의 배우자는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는 것'만 금지되고 위반해도 처벌 규정이 없어서입니다.
배우자의 금품 수수 사실을 인지한 공직자에게 반환 및 신고 의무가 있긴 하지만 배우자가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은 경우에만 적용됩니다.
검찰은 이런 조항에 근거해 김 여사와 윤 대통령 모두 청탁금지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직자가 배우자를 통해 금품을 받거나, 공직자의 배우자와 친분을 쌓아 도움을 받으려는 이들의 우회로를 차단하기 위해 법을 강화해야 하는 게 아니냔 지적이 나옵니다.
청탁금지법은 배우자의 금품 수수를 알게 된 경우 공직자가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하도록 하는데, 해당 공직자가 기관장인 경우 누구에게 신고해야 하는지도 명확히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원석 전 검찰총장은 지난달 9일 김 여사 사건과 관련해 "이번 기회에 공직자의 배우자에 대해서도 법령을 정확하게 보완하고 미비한 점을 정비해서 더 이상 사회적 논란의 소지가 없도록 입법을 충실하게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7월 공직자 배우자 처벌 조항을 신설하는 청탁금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상태입니다.
다만 직무 관련성이 없는 금품 수수까지 금지하면 배우자 개인의 독립적인 사회생활까지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김 여사 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입법 미비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검찰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을 좁게 해석해서 생긴 문제란 의견도 제기됩니다.
최용문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은 "법 제정 당시 배우자 처벌 조항은 실수로 빠진 게 아니라 과잉 규제 우려 때문에 일부러 뺐던 것"이라면서도 "악용 사례가 나온 만큼 배우자에 대해서도 직무 관련성 요건을 없애고 처벌 규정을 둘지 논의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유민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mikoto23062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