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이방자 여사 [한일 매듭&맺음]
입력 2024-09-30 19:00  | 수정 2024-09-30 19:53
【 앵커멘트 】
'매듭을 짓는다'는 뜻과 함께 '관계를 이어나간다'는 뜻의 무스비(結び) 라는 일본어,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MBN은 양국이 그동안의 갈등은 잘 매듭짓고, 새로운 관계를 맺자는 취지에서 연속 기획을 준비해봤는데요.
첫 번째 순서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독립투사들을 변호했던 일본인 변호사와, 정략결혼으로 조선에 왔지만 자신의 조국은 한국이라고 말했던 일본 출신 마지막 황태자비의 이야기입니다.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들, 권용범 기자가 일본과 한국에서 현장 취재했습니다.


【 기자 】
▶ 스탠딩 : 권용범 / 기자 (일본 이시노마키)
- "이곳은 일본 이시노마키시 박물관입니다. 일본인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후세 다쓰지의 흔적들이 전시된 곳인데요. 직접 들어가 보겠습니다."

1880년 일본 이시노마키에서 태어난 후세 다쓰지는 명문 메이지대 법대 출신 검사에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천황 폭살 미수 사건으로 재판정에 선 박열과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 등 수많은 조선의 독립운동가를 변호하며 활약했습니다.

▶ 인터뷰 : 이토 타쿠미 / 일본 이시노마키시 박물관 담당자
- "억압된 시대에서도 사회적으로 입지가 약한 사람들을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하셨고 많은 사람들을 지원하셨습니다."

일제로부터 법정을 모독했다며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실형까지 선고받으며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그 의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 인터뷰 : 후세 도키치 / 후세 다쓰지 종손자
-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인을 위한 헌신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향에서는 해마다 추모제가 열릴 만큼 후세 다쓰지의 활약상은 일본인들의 마음속에도 커다란 울림을 줬습니다.


1953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대한민국 정부는 공로를 인정해 2004년 일본인 최초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 스탠딩 : 권용범 / 기자
- "이곳은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의 무덤입니다. 1989년 세상을 떠난 뒤 남편 영친왕과 함께 이곳에 묻혔습니다."

일본 황족으로 태어난 이방자 여사는 1920년 정략결혼 이후 일본인 마사코가 아닌 한국인 이방자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공식 석상에서 자신을 한국인으로 소개할 만큼 자부심이 컸습니다.

또, 장애인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는 등 국내에서 사회공헌 활동에 힘을 쏟았습니다.

▶ 인터뷰 : 대한뉴스
- "이방자 여사는 자혜학교와 명휘원을 창립해서 불우 어린이들의 복지에 헌신적으로 이바지해왔습니다."

▶ 스탠딩 : 권용범 / 기자
- "한국의 독립을 변호한 후세 다쓰지와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이방자 여사, 반복되는 한일 갈등 속에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인물들입니다. 일본 이시노마키에서 MBN뉴스 권용범입니다."

[dragontiger@mbn.co.kr]

영상취재 : 김영진 기자
영상편집 : 송지영
그래픽 : 이새봄
화면제공 : KTV·국가보훈부
번역 : 강예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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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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