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이다.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몇 천 세대가 들어섰다. 집과 도로만 놓여 있고 주변에 변변한 가게조차 없던 시기다. 그때 아파트 주민들의 일상을 가능케 했던 것은 아파트와 함께 지어진 상가들이다. 이 강남 대단지 아파트 상가의 시조가 바로 압구정 현대아파트 신사시장이다.
신사시장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깊숙한 곳에 있다. 한강변에 가깝고 주변은 바로 아파트 단지와 압구정초등학교다. 신사시장은 아파트를 사이로 한 약 200m 길이의 도로 양쪽에 있다. 물론 이 상가들은 각기 금강상가, 현대상가, 신사시장으로 구분되지만 보통은 신사시장이라 부른다. 상가는 1976년 현대아파트 준공 당시 같이 지어졌다. 지금도 그때 그 모습으로 한쪽은 3층, 한쪽은 1층짜리이고 그 안에 재래시장 신사시장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동네에 재래시장이라니…. 하지만 얕보지 마라. 이곳의 ‘경쟁상대(?)는 현대백화점이다. 현대백화점은 현대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셔틀버스를 운영 중인데, 많은 주민들이 이 버스를 이용해 현대백화점에서 쇼핑을 하지만 신사시장 역시 나름의 경쟁력으로 48년의 구력을 유지하고 있다.
상가거리의 양 끝에 카페 두 곳이 있다. 블루리본을 10년째 받고 있는 로스팅하우스 커피트리와 에스프레소 로이이다. 커피트리는 아메리카노도 맛있지만 바닐라라떼와 밀크티가 유명하다. 앉을 자리는 3자리뿐이라 테이크아웃이나 아니면 볕 좋은 날 서서 먹어도 괜찮다. 에스프레소 로이는 유기농 벌꿀라떼가 시그니처다. 특히 크림 카페라떼에 뿌려나오는 시나몬 가루는 묘하게 커피와 잘 어울린다.
이제 현대아파트도 2026년 전후로 재건축에 들어간다. 그러면 번듯하고 현대적인 상가가 들어서겠지만 시간이 녹아든 재래시장 특유의 감성은 재현하기 어렵지 않을까.
[글과 사진 장진혁(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48호(24.10.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