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한국이 일본에 요구할 것은 사과가 아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입력 2024-09-30 06:00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제주도에서 정상회담을 마친뒤 공동기자회견장으로 향하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 2004.7.21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 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쌍둥이들과 주말을 맞아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입장까지 시간이 남아 두리번거리다 보니 코인노래방이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부스에 들어가고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최신 아이돌 음악을 부르려나 보다 했는데 뭔가 익숙한 동시에 낯선 반주가 들려 문을 열어보니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독도는 우리 땅'였습니다.

독도 문제가 노래를 통해 초등학생에게도 조기 교육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역사를 생각하면 한국 사회의 전반에 걸친 반일 정서는 이해 못할 바가 아닙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면서 옅어져야 할 반일 정서가 최근 몇 년 사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흔히 일본을 상대로 많이 제기하는 비판 중 하나는 과거 역사를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실제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2001년 10월 한국을 방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정상회담에 앞서 옛 서대문형무소 자리에 있는 서대문독립공원을 찾았습니다. 그는 일본 현직총리로서 처음으로 순국한 독립 운동가들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비 앞에 무릎을 굽혀 헌화하고 나서 참배했습니다. 흔히 과거사에 대한 사과의 모범사례로 독일의 케이스를 많이 언급합니다. 빌리 브란트 전 총리가 폴란드를 방문해 위령탑에 무릎을 꿇은 장면이 상징적으로 얘기되는데 고이즈미 전 총리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2010년 8월 일본 칸 나오토 총리도 한일 강제병합 100년에 즈음해 담화를 통해 과거 일제의 식민지배에 대해 통렬히 반성하고 진정으로 사죄하면서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애초 일본이 사과한 적 없다는 주장에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면 진정한 사과가 아녔다는 식으로 주장은 '뫼비우스의 띠'를 구성합니다.

일본에 과거에 대한 사과를 계속해서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혔던 지도자가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
"일본은 이미 사과했습니다. 우리는 거듭 사과를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사과에 합당한 실천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과를 뒤집는 행동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주변국이 갖고 있는 의혹은 근거가 없다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의심을 살 우려가 있는 행동을 자제해야 합니다." (2006년 제87주년 3.1절 기념식 기념사)


진정한 사과란 무엇일까요? 한일 관계에 정통한 한 당국자는 과거에 얽매이기보다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고 조언했습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일본의 사과는 양국의 관계가 좋을 때 나왔습니다. 지난 정부 반일 감정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 일본 대형 서점은 혐한 도서들로 가득 찼지만, 지금은 한국어 교재들이 대신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양국의 사람들의 왕래는 국교정상화 때는 일 년에 1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왕래했었다. 그런데 작년에는 약 360만 명의 양국 사람들이 일본과 한국을 왕래했다. 그러니까 1년에 1만 명으로부터 1일 1만 명으로 확대됐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로 20년이 지난 지금은 한 달에 300만 명, 하루에 10만 명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시대가 됐습니다.

물론 '역사 교과서'나 '독도'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국민의 감정적 반응을 정치적 목적에 활용하는 것만은 지양하자는 겁니다. '역사 교과서' 문제는 일본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꾸준히 지적하되 공동 연구나 학술교류 등을 확대해 중장기적으로 인식의 차이를 좁히고, '독도' 문제도 차분히 영유권을 강화하면 충분하다는 것이 건설적인 한일관계를 기대하는 여러 전문가의 조언입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외교 안보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듣고, 치열하게 고민해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이성식 기자 mods@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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