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월연대와 쌍청교를 걷다
영남루와 위양지에서 맞는 햇살
영남루와 위양지에서 맞는 햇살
밀양에 월연대라는 곳이 있다. 선비 이태가 지은 정자인데 그는 이곳에서 세상을 잊은 채 말년을 보냈다. 나는 그 선비처럼 월연대 마루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가을바람을 맞았다.
‘비 그칠 무렵의 추녀 같은 아름다운 이름이라니
나는 지금 월연대 마루에 앉아 있다. 담장 너머 밀양강이 흐르고 강물에는 구름이 비치고 있다. 숲에서 날아온 새소리가 발치에 떨어진다. 아, 가을 냄새가 나네.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오늘 밀양으로 왔다. 최근 한 달 동안 일 때문에 너무 정신이 없었다. (내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새 책이 세 권이 동시에 나왔고, 다음 달에 나올 새 원고를 디자이너에게 넘겼다. 그러면서 경북 서부 일대를 취재해야 했다. 카페에서 원고를 쓰고, 편집 대지를 검토하고, 국밥 한 그릇을 먹고 여관으로 들어가 가는 하루를 반복했다.취재를 대충 끝내고 돌아와 인쇄소에 감리를 보고 신간을 배본한 후 한숨을 겨우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느타리버섯을 넣은 된장국과 계란찜, 가지볶음과 생선구이로 아침을 먹다가 어디로든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밀양으로 왔다. 내가 편집한 어느 여행작가의 책에서 월연대에 관한 글과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언젠가는 꼭 한 번 가봐야지 했던 게 그 순간 기억났기 때문이다.
월연대 가는 길, 월연대 가는 오솔길, 쌍청교의 운치 있는 풍경
월연대는 밀양강과 단장천이 만나는 절벽 위에 있는 정자다. 조선 중종 때 한림학사를 지낸 월연 이태가 지었다. 이태는 조선의 이름난 선비다. 한양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외가가 있는 밀양에서 보냈다. 1510년(중종 5) 문과에 급제했고, 기묘사화가 일어난 1519년에는 함경도 도사로 있었다. 사화 당시 개혁을 주장하던 선비들이 무더기로 죽거나 파직당하는 걸 본 그는 세상사에 환멸을 느끼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다. 그리고 월연대와 쌍경당을 지어 별서(別墅, 별장)로 삼고 자신을 ‘월연주인(月淵主人)이라 부르며 은거했다. 세상은 그를 ‘기묘완인(己卯完人)이라 불렀다. ‘몸과 명예, 어느 것도 다치지 않고 흠이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는 뜻이다.월연대 가는 길은 밀양 시내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 주차장에 차를 대면 곧바로 숲속 오솔길이 펼쳐진다. 길이 너무 예뻐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SNS에 올렸다. 자랑은 아니고, 뭔가 좋은 걸 보면 나누고 싶어서다. 길은 두 사람이 비켜 갈 만한 너비인데,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윤슬이 반짝이며 밀양강이 유유히 흘러간다. 숲길 바깥에는 아직 여름 기운이 있지만 숲속은 완연한 가을이다. 숲에서 새소리가 흘러나오고 바람이 상쾌해 걷는 기분이 좋다.
쌍경당 현판, 쌍경당
어느 시인 형이 SNS를 보고 ‘넌 걸으면서도 시를 쓰는구나! 하고 댓글을 달았다. 시를 안 쓴 지가 십 년이 넘은 ‘전직 시인이지만 이런 말을 들으면 여전히 기분이 좋다. 시를 다시 써볼까 하다가, ‘언젠가 때가 되면 쓰게 되겠지 생각하고 만다. 살다 보면 기다려야만 하는 일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시를 쓰는 것도 그런 일 가운데 하나다.짧은 오솔길을 지나니 왼쪽으로 높이 쌓은 석축이 보인다. 그 위 담장 너머로 하늘을 향해 처마가 사뿐히 올라갈 듯 가볍다. 쌍경당이다. 오른쪽으로 협문이 하나 있는데, 협문을 지나 계곡물 소리가 나는 곳으로 몇 발짝 걸어가면 얕은 계곡에 놓인 쌍청교(雙淸橋)가 보인다. ‘달과 물이 모두 맑다는 뜻이다. 다리를 건너면 월연대다. 이 계곡 이름은 영월간(迎月澗). ‘달을 맞이하는 실개천이라는 뜻이다.
월연대 처마로 스며든 햇살, 석축 위에 자리한 월연대
쌍경당과 그 옆에 자리한 제헌 등을 아울러 ‘월연대 일원(명승)이라 한다. 조선 시대에 정자는 대부분 단독으로 지었는데, 월연대 일원은 담양 소쇄원(명승)처럼 여러 건물이 들어선 점이 독특하다. 쌍경(雙鏡)은 ‘강물과 달이 함께 밝은 것이 마치 거울과 같다는 의미다. 쌍경당 옆에는 이태의 맏아들 이원량을 추모하는 제헌(霽軒)이 있다. ‘비 그칠 무렵의 추녀(처마에 있는 서까래)라니, 이보다 더 운치 있는 이름이 있을까.시 같은 풍경을 찾아다니는 일
쌍경당에서 나와 쌍청교를 건너 월연대로 향해본다. 까마득한 절벽에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정자를 지은 곳이다. 보니 석축 앞에서 고개를 쳐들면 월연대 현판이 보인다. 왼쪽에 월연대로 들어가는 돌계단이 있다. 월연대는 앞면 5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한가운데 방이 하나 있고 사방이 마루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최대한 건물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조선 사대부의 자연관과 전통 조경 양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숲속에 느긋하게 들어앉은 월연대
월연대 마루에 앉아 있으니 이곳에서 보는 달 뜬 풍경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보름달이 뜰 때 달빛이 강물에 길게 비치는 모습이 기둥을 닮아 그 풍경을 ‘월주경(月柱景)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옛사람들은 월주가 서는 보름마다 이곳에서 시회를 열었다고 한다. 달빛 아래에서 강물을 보며 시를 짓는 옛사람들의 기쁨과 사치를 나는 반만큼이나 헤아릴 수 있을까. 다만 부럽기만 할 따름이다.마루에서 일어나 숲길을 되짚어 나오며 달과 물이 모두 맑게 보이는 다리, 달을 맞이하는 실개천, 비 그칠 무렵의 추녀, 강물이 비치는 달빛의 기둥이라는 이름에 대해 생각한다. 아, 옛 사람들은 모든 대상을 이처럼 아름다운 시로 표현했구나. 나는 굳이 시를 쓰지 않아도 되겠다. 시 같은 풍경을 찾아다니며 그 속에 숨은 시구를 읽어내리며 음악을 듣는 일생을 살면 그것으로 충분히 보람되지 않을까.
천황산 정상에서 본 풍경, 재약산 위로 오르는 케이블카
높은 곳에서 풍경을 내려다보는 경험월연대를 나와 천황산(재약산)으로 왔다. 억새로 유명한 곳인데 아직 좀 일렀다. 억새는 아직 피지 않았다. 억새가 필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워지는 산이다. 예전에 천황산에 오르려면 땀을 꽤 쏟아야 했다. 표충사에서 출발해 매바위마을~필봉(665m)~필봉 삼거리(감밭산 갈림길)~도래재 갈림길~상투봉(1,107m)을 지나 올랐었다. 그리고 한계암과 금강폭포, 금강동천 방면으로 내려갔던 기억이 있다. 약 13km 정도 거리다.
아마 대학 때였던 것 같다. 그땐 등산화나 등산복도 따로 없었다. 운동화에 청바지를 입고 산을 타던 시절이다. 배낭에는 쌀과 김치, 버너와 등유를 넣고 다녔다. 계곡가에 텐트를 치고 밥을 지어 먹었다. 그렇게 지리산 종주를 했고 재약산에도 왔던 것 같다.
요즘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다. 초속 4m로 1.8km의 거리를 훌쩍 날아가 해발 1,020m에 자리한 상부승강장에 사뿐하게 내린다. 상부승강장에서 250m를 더 가면 하늘정원 전망대가 나오는데, 가지산과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등 영남알프스의 고산 연봉이 어깨를 걸고 이어져 장관이다. 전망대에서 약 2.4lkm 더 가면 천황산 정상이다. 완만한 길이라 가볼 만하다.
정상 표지판과 봉수대
케이블카는 스릴 있다. 오르는 각도가 거의 수직이다. 케이블카 창밖으로 수려한 경치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착한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백운산 중턱의 백호바위도 보인다. 십 년만 젊었더라도(내가 이 표현을 쓰게 될 줄이야!) 어떻게든 걸어서 올라갔겠지만 지금은 탈 것이 있으면 무조건 타야 하는 나이다. 에코백에 500㎖짜리 생수 두 병과 ‘견과류 한 봉지를 챙겼다. 나는 지금 재약산에 에코백을 들고 가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케이블카 상부승강장에서 사자봉으로 조금 걷다 보면 억새밭 입구에 ‘샘물상회가 있다. 재약산 일대의 여러 봉우리를 대표하는 쉼터다. 어떤 여행작가는 나와 작업한 책에서 산중에서 샘물상회라는 이름보다 더 적합한 이름이 있겠는가. 세상 여러 나라들을 다니며 여러 종류의 상호를 만났지만 이처럼 소박하고 따뜻한 이름은 없었던 것 같다. 무지개 호텔이라든지 천국 또는 행운 카페 심지어 밥 말리나 동물 이름을 차용한 곳은 많이 봤지만, 이곳처럼 절묘한 위치에 적당히 자리 잡은 이름이 있을까”라고 적었다. 정말이지 이 말이 샘물상회에 관한 가장 정확한 표현이자 묘사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 본 풍경
케이블카를 탈 때부터 ‘여기서 라면 한 그릇 먹어야지. 아니면 손두부에 막걸리 한 병을 먹든가 이렇게 생각했는데 아뿔싸, 문을 열지 않았다. 아직 억새철이 아니라 찾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예전에는 뜨끈한 손두부 한 모를 앞에 두고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였으며 라면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랬다. 가끔 고개를 들면 창밖으로 광활한 억새밭이 펼쳐졌다. 세상에서 가장 풍경이 좋은 가게였다.정상 표지석 앞에 서니 기분이 좋다. ‘광평추파(廣平秋波)라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다. 광평추파는 광활한 사자평고원에 가을철 억새가 바람 따라 일렁이는 장관을 일컫는 말이다. 영남알프스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천황산은 영남알프스뿐만 아니라 주변 산도 아우르는 최고의 조망지로 손꼽힌다. 산능선이 겹치며 물결처럼 흐른다. 밀려가는 것 같기도 하고 밀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역시 인간은 높은 곳에 서서 풍경을 내려다보는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 인생이 다 고만고만하게 보이고 헛되이 보이니까 말이다. 옹색한 마음을 몇 평이나마 넓힐 있는 수 있는 것이다.
샘물상회 표지판,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샘물상회
소소한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
위양지에 가볼까 하다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배가 고파 밥부터 먹자며 식당으로 왔다. 밀양이니까 무조건 돼지국밥이다. 돼지국밥에는 부산식과 밀양식이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밀양식을 더 좋아한다. 밀양식은 소뼈를 우린 국물에 돼지고기를 넣고 밥을 말아낸다. 부산식 돼지국밥이 걸쭉하고 진하다면 밀양식은 국물이 맑고 맛이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고기도 두툼하게 썰지 않고 얇게 썬다.식당 가는 길 해가 슬슬 지기 시작한다. 낮은 건물이 모여 있는 마을은 산책삼아 걷기에 딱 좋았다. 조그마한 과일가게나 국숫집, 동네 서점을 보며 내가 이곳에 살았다면 저 가게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여행하면서 만나는 이런 소소한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이 좋다. 장바구니를 들고 버스를 기다리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할머니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정류장의 풍경도 어떤 그리움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정상 가는 길의 억새
식당에 들어와 돼지국밥을 주문한다. 옛날 같으며 ‘특을 시켰겠지만 이젠 소화를 시키는 것도 무리다. 그러고 보니 요즘 부쩍 ‘옛날 같으면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뭐 어쩌랴. 그만큼 나이가 들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닐까. 게다가 다른 사람한테 하는 말도 아니고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니 아무런 폐도 되지 않는다.돼지국밥이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이다. 아주머니 여기 소주 하나 주세요. 위양지는 내일 가도록 하자. 나 혼자 왔으니 뭐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 여행이다.
밀양 여행 정보
월연정 가기 전 작은 터널이 보인다. 1905년 경부선 개통 당시 사용하던 용평터널로 1940년 경부선 복선화로 선로를 이설하면서 일반 도로로 쓰이고 있다. 폭 3m에 총연장 약 130m. 정우성이 주연한 영화 ‘똥개를 이곳에서 촬영했다.영남루(보물)는 밀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여행지다. 밀양강을 바라보며 서 있는 영남루는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일컫는다. 앞면 5칸, 옆면 4칸에 팔작지붕을 올렸다. 내부에는 당대 명필가와 대문장가의 시문 현판이 즐비하다. 영남루가 가장 운치 있을 때는 저물 무렵이다. 해질녘 영남루에 앉으면 밀양강이 흘러가는 소리가 귓전을 적시고, 밀양강 너머에서 밀려온 노을이 이마를 붉게 물들인다. 밀양강 건너 둔치에서 보는 영남루도 운치 있다. 화려한 조명을 받은 영남루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위양지는 신라 때 축조한 저수지로 본래 이름은 양양지인데, ‘선량한 백성을 위해 축조했다 하여 위양지(位良池)라고도 한다. 사계절 내내 절경을 선사해 밀양 8경으로 꼽힌다. 연못가에는 왕버들이 연못을 향해 가지를 드리우고 자란다. 아침이면 물안개가 가득 피는데 이 신비로운 풍경을 담기 위해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몰려든다. 위양지 가운데에 작은 섬 5개와 완재정이 있고 완재정을 감상할 수 있는 벤치가 놓여 있다. 연못을 따라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가을 기운을 느끼며 걷기 좋다.
영남알프스얼음골케이블카는 바람이 많이 불면 운행을 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사전 문의가 필요하다. 10~11월에는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10~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밀양의 먹거리
돼지국밥은 예림돼지국밥과 단골집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밀양아리랑전통시장에 보리밥집이 몇 곳 나란히 늘어서 있다. 메뉴는 보리밥과 장국 단 두 개. 보리밥을 주문하면 숭늉과 비빔장이 함께 나온다. 콩나물, 부추무침 등 먹고 싶은 만큼 덜어 만들어 먹는 셀프 보리밥집이다.[글과 사진 최갑수(여행 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48호(24.10.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