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영원한 재야' 장기표 향년 78세로 별세…각계 각층 추모 이어져
입력 2024-09-22 19:30  | 수정 2024-09-22 19:50
【 앵커멘트 】
한국 노동운동과 민주화에 앞장선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오늘 새벽 세상을 떠났습니다.
암 투병 사실을 알리며 "살 만큼 살았고, 이룰 만큼 이루었다"는 소회를 남긴 지 불과 2달 만입니다.
'영원한 재야'로 알려진 재야운동가 장기표가 이루고 남긴 것들이 무엇인지, 백길종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 기자 】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오늘 새벽 1시 35분, 담낭암 투병 끝에 숨을 거뒀습니다.

1945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한 뒤 줄곧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했습니다.

7080년대 9년의 수감 생활과 12년의 수배 생활을 한 고인은 '재야 운동권의 대부'로 꼽힙니다.

빈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옛 동지를 비롯한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 인터뷰 : 김문수 / 고용노동부 장관
- "저는 그때 1학년이라서 전태일이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게 그 의미를 몰랐는데 장기표 선배는 장례를 서울법대 학생장으로 하겠다 해서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인은 7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3번의 대선에서 낙선하며 '영원한 재야'라는 별칭을 얻었지만, 조문객들은 "고인의 목표는 금뱃지가 아니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 인터뷰 : 이부영 / 전 국회의원
- "모든 정치세력이 장기표의 비판의 표적이 됐다고 보면 됩니다. 어느 정치에도 착근을 하지 못하고 역시 장기표는 '장기표주의'였다."

▶ 인터뷰 : 박계동 / 전 국회의원
- "그때 (통합)했으면 14대 때 아주 편안하게 (국회에) 들어갈 수 있었죠. 그 정도로 정말 명분주의자이기도 하고."

정치권에서도 애도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민주화운동으로 시대를 지킨 귀감이었다"고 추모의 뜻을 밝혔습니다.

국민의힘은 "노동·시민 운동에 몸 바치고도 일체의 보상을 마다했다"고 평가했고,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김근태 선생과 함께 존경했던 대선배"라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장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26일입니다.

MBN뉴스 백길종입니다. [100road@mbn.co.kr]

영상취재 : 김민호 기자
영상편집 :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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