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교토국제고 '차별' 아닌 '화합' 상징으로 [시시콜콜한 이야기]
입력 2024-08-23 08:48  | 수정 2024-08-23 08:55
일본 내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 야구 선수들이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 고시엔구장에서 열린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준결승전에서 승리를 확정한 뒤 기뻐하고 있다. 2024.8.21 | 사진 : 연합뉴스

'그런 흔한 여름날이었다'
아다치 미츠루의 'H2'는 여름 고시엔을 배경으로 합니다. 4천 개에 가까운 일본 고교 야구팀의 선수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 흘리는 땀방울을 보면 '청춘'과 '여름'이라는 단어가 자동적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여름 고시엔에서는 한국계 교토국제고의 선전이 단연 화제입니다. 교토국제고의 전신은 1947년 재일교포들이 민족 교육을 위해 돈을 모아 설립한 교토조선중학교입니다. 교토조선중은 1958년 교토한국학원으로 바뀌었고, 2003년 일본학교교육법 인가를 받아 일본 정부가 인정하는 정식 학교가 되며 이름을 교토국제고로 바꿨습니다.

일부 한국 언론은 교토국제고를 '억압과 차별'의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지 분위기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1958년 교토한국학원은 교토부지사로부터 각종학교(정규교육기관 이외의 다양한 특성화 교육을 위한 학교) 인가를 받아 운영됐고, 그때도 졸업생은 고교 졸업과 동등한 자격을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차별해 인가를 해주지 않았다는 것보다는 독자적인 민족 교육에 집중하는 학교였기 때문에 별개의 인가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 더 정확해 보입니다. 현지 소식통은 "교토 지역의 재일동포들이 전반적으로 차별과 설움 속에 살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일반론에 가까운 사실을 교토국제고에 그대로 투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학생 수 감소로 학교 운영이 어려워지자 2002년 일본 학생을 받기 위해 일본 문부과학성의 고교 인가를 신청하게 된 겁니다. 이후 교토국제고는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양쪽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있는데, 일본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이 한국의 약 1.5배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만약 한국에 있는 일본계 학교가 한국 고교 야구 대회에 출전해서 결승에 진출했다고 상상해 봅니다. 만약 일본어로 된 교가가 구장에 울려 퍼지고, 방송으로 중계까지 된다면 한국 사회는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을까요? 일본의 우익들이 SNS 등에서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 등을 생트집 잡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하고 비판합니다. 다만, 한국 언론에서 교토국제고의 교가 번역이 왜곡됐다며 열혈 취재를 진행해 학교 측이 곤란해 했다는 후문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일본의 고교 야구는 지역 밀착형이어서 교토국제고도 교토 지역의 지원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황인데 말이죠.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이번 대회에 출전한 교토국제고 야구부의 선수 전원이 일본인이라는 사실때문입니다. BTS 등 케이팝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어·일본어·영어 등 3개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교토국제고의 인기도 높아졌다고 합니다. 딱히 '국뽕'을 느낄 사안도 아니고, 갈등이 심각한 사안도 아니라는 거죠. 잠시 뒤면 교토국제고 선수들의 결승전이 열리게 됩니다. 건승을 기원합니다. 승패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이 쏟아질 겁니다. 이때 교토국제고에 대해 민족을 앞세워 갈등을 부각시키기보다 오히려 '화합'과 '통합'의 상징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제안해봅니다.

"유사 이래 한국과 일본은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한때 불행한 시기도 있었지만, 이웃 나라로서 앞으로 더욱더 우호를 다져나가야 한다. 진정한 우호는 상호이해 없이는 있을 수 없다. 국제학교가 된 이후 일본 학생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융남 교토국제고 이사장 / 학교 홈페이지)

[시시콜콜한 이야기] 외교 안보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듣고, 치열하게 고민해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이성식 기자 mods@mbn.co.kr]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