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명동 황제' 신상사 별세…"마지막 남은 1세대 조폭"
입력 2024-08-11 14:50  | 수정 2024-08-11 14:55
회고록 '주먹으로 꽃을 꺾으랴' 표지/사진=연합뉴스


'명동 황제'로 유명한 원로 주먹 신상현(申常鉉)씨가 어제(10일) 오전 5시 향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월간중앙 한기홍 기자가 대신 쓴 회고록 '주먹으로 꽃을 꺾으랴'(2013)에 따르면 1932년 서울 관수동에서 태어난 고인은 숭실고등보통학교를 중퇴했고, 6·25 당시 대구 특무부대에서 1등 상사로 근무한 경력 때문에 '신상사'라는 평생의 별명을 얻었습니다.

1954년 대구에서 상경한 뒤 명동 중앙극장 옆에 터를 잡았습니다. 당시는 우미관의 김두한, 명동의 이화룡, 종로파(나중엔 '동대문파'로 불림)의 이정재가 3각 구도를 이룰 때였습니다.

고인은 독자 조직을 꾸리며 명동연합에 합류했습니다.


1958년 9월 '충정로 도끼 사건'으로 구속된 적이 있었고, 1960년대 중반 조직을 재건한 뒤 1970년대까지 명동을 장악하고 신상사파 보스로 활동했습니다.

마산의 전설적인 주먹 구달웅, 서순종 전 세기프로모션 회장 등이 그의 부하였습니다.

일본 야쿠자 조직과 함께 관광호텔 카지노를 운영해 수입을 올렸지만, 마약과 사채, 유흥업소 관리에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1990년 노태우(1932∼2021)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벌였을 때도 신상사의 명동 조직은 거의 피해를 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먹으로 꽃을 꺾으랴' 머리말에 "이익을 탐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수도 있지만, 저는 잘 모르는 분야는 쳐다보지 않았고, 범죄꾼과의 결탁은 한사코 반대했습니다. 제가 말년에 이르기까지 주변 사람들의 구설에 크게 오르지 않은 이유였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적혀있기도 합니다.

1975년 1월 신상사파가 범호남파 조양은 등에 습격당한 '사보이호텔 사건' 이후 상대의 사과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합의서를 써줬다고 술회하기도 했습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 12일 오후 1시 30분, 장지 봉안당 홈.

☎ 02-3010-2000

[김경태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dragonmoon20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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