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아메리카 샷 추가] '마운틴 듀'의 기쁨과 슬픔
입력 2024-08-10 03:11  | 수정 2024-08-10 12:40
'마운틴 듀' 음료 / 사진=펩시코파트너스닷컴 홈페이지(https://www.pepsicopartners.com)
탄광 노동자들의 음료수, 애팔래치아서 인기
애팔래치아 '마운틴 듀 마우스', 사회 문제로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 갑자기 이 음료가 화제입니다. 팀 월즈 민주당 부통령 후보와 J.D. 밴스 공화당 부통령 후보 모두 '다이어트 마운틴 듀'에 대한 애정 공세를 펼치고 있다는 점이 새삼 눈길을 끈 겁니다. 두 후보 모두 '다이어트 마운틴 듀'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런 취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MBN이 보도한 아래 기사에서 두 후보의 눈에 띄는 '마운틴 듀 행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두 후보의 '흙수저 부통령' 월즈-밴스 "녹색 탄산은 내가 더"…음료로 표심 경쟁>
https://www.mbn.co.kr/news/world/5048555



점유율 5위 음료, 애팔래치아 지역서 인기


미국 언론은 마운틴 듀를 둘러싼 독특한 정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마운틴 듀는 탄산음료 브랜드 가운데 시장 점유율 6.3%로 순위로는 5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이어트 마운틴 듀는 점유율 1.9%, 10위입니다. 크게 인기 있는 음료는 아닙니다. (시장조사업체 비버리지 다이제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점유율 1위는 코카콜라 코크, 2위가 닥터페퍼와 펩시입니다. 닥터페퍼가 아주 미세하게 점유율이 앞서지만, 큰 차이가 없다보니 흔히 공동 2위로 집계되곤 합니다. 3위가 스프라이트, 4위가 다이어트 코크, 5위가 마운틴 듀입니다.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순위를 조금 더 공개하자면 6위는 코크 제로, 7위는 다이어트 펩시, 8위 환타, 9위 캐나다 드라이입니다. )

그런데 유독 인기를 끄는 곳이 있습니다. 흔히 이런 곳을 '마운틴 듀 벨트'로 부릅니다. '마운틴 듀 벨트' 가운데는 애팔래치아 산맥이 걸쳐져 있는 곳이 많습니다. 애팔래치아 산맥 일대에서 마운틴 듀가 잘 팔리는거죠. 시장조사업체 민텔 분석에 따르면 특히 연소득 5만 달러 미만 가구의 남성들에게서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중산층에 진입하려면 흔히 연소득 7만 달러 정도는 돼야 한다고 하니 서민과 빈곤층에게서 인기가 좋은 셈이죠. 애팔래치아 산맥 일대 지역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집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료수로 마운틴 듀를 꼽기도 합니다. 켄터키주에서 성장한 사라 베어드라는 미국의 음식 작가는 마운틴 듀를 가리켜 "집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다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마운틴 듀 벨트' / 사진=MBN 방송 화면


미국 애팔래치아 지역 / 사진=미국 애팔래치아지역위원회 홈페이지(https://www.arc.gov)


애팔래치아 지역 테네시주에서 탄생


애팔래치아 지역에서 마운틴 듀가 인기있는 이유를 살펴보면, 미국 대선과 관련된 민심의 기류를 읽을 수 있습니다. 마운틴 듀가 애팔래치아 지역에서 인기있는 가장 큰 이유는 마운틴 듀의 탄생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마운틴 듀는 애팔래치아 산맥을 끼고 있는 테네시주 녹스빌이라는 곳에서 1940년 탄생했습니다. 처음 만들 때만해도 위스키에 섞어 마셨다고 하는데, 마운틴 듀(Mountain Dew)라는 말 자체가 밀주를 뜻하는 속어였다고 합니다. 마운틴 듀가 판매되던 초기엔 애팔래치아 남성의 이미지가 광고나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됐습니다. 1960년대 마운틴 듀 광고를 보면 강인하면서도 순박해 보이는 중년 남성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그때만 해도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살아가는 남성들의 음료수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겁니다. 1964년 마운틴 듀를 인수한 펩시는 1970년대부터 마운틴 듀의 이미지를 보다 젊게, 또 도시 생활에 어울리는 음료로 만들려는 마케팅을 강화합니다. 그렇지만, 애팔래치아 사람들에게는 한 번 각인된 마운틴 듀의 인상이 꽤나 지속되는 듯 합니다.

1960년대 마운틴 듀 광고 / 사진=유튜브(Our Nostalgic Memories 계정) 캡처


애팔래치아 광부들이 마시던 고카페인 음료


프리실라 해리스 애팔래치아 로스쿨(Appalachian School of Law) 교수는 조금 색다른 견해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2015년 1월 허프포스트에 실린 의견인데요, 애팔래치아는 탄광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었고, 광부들이 위험한 작업을 할 때 긴장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마운틴 듀에 의존했다고 합니다. 마운틴 듀는 실제로 고카페인 음료로 알려져 있습니다. 펩시 홈페이지에 따르면 16온스 펩시콜라 카페인 함량이 50밀리그램인데 같은 용량의 마운틴 듀는 카페인 함량이 72밀리그램입니다. 밴스 공화당 부통령 후보 역시 "고카페인, 저칼로리 '다이어트 마운틴 듀'는 좋은 제품"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16온스 용량 다이어트 마운틴 듀 카페인 함량도 72밀리그램입니다.)

애팔래치아 지역의 개발이 상대적으로 늦다보니 주민들이 믿고 마실 수 있는 식수원을 확보하기 어려웠다는 점도 애팔래치아에서 마운틴 듀가 인기를 끄는 원인으로 꼽힙니다. 주민들이 어차피 물을 사서 마셔야 하는 상황이다보니 가까운 곳에서 많이 파는 마운틴 듀를 선택했다는 겁니다.

'마운틴 듀 마우스'에서 드러난 열악한 의료 환경


문제는 마운틴 듀가 단순히 애팔래치아 주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음료가 아니라는 겁니다. 애팔래치아 지역에서는 '마운틴 듀 마우스'(Mountain Dew Mouth)가 커다란 사회 문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아래 사진은 애팔래치아 지역인 오하이오주의 클리블랜드 의료 기관이 '마운틴 듀 마우스' 예방법을 안내하는 내용의 인터넷 사이트 일부입니다.) 탄산 음료를 지나치게 많이 섭취한 주민들의 치아 상태가 심각하게 나빠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공영 라디오 NPR이 2013년 9월 프리실라 해리스 교수의 분석 결과를 보도했는데요. 18세에서 24세 사이 애팔래치아 주민의 15%가 충치나 치아 부식으로 치아를 뽑은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다른 지역 미국인들도 탄산 음료를 많이 마시긴 합니다. 하지만, 애팔래치아 주민들은 치과에서 진료를 받기가 쉽지 않다보니 '마운틴 듀 마우스'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주민들의 빈곤, 의료 기관의 부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마운틴 듀 마우스' 예방법 안내 / 사진=클리블랜드클리닉 홈페이지(https://health.clevelandclinic.org)


민주와 공화, 양당 부통령 후보는 애팔래치아 일대 육체 노동자들을 비롯해서 그들과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마운틴 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힐빌리, 레드넥으로 불리는 백인 육체 노동자들에게 마운틴 듀는 아마도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각별한 음료수일 것 같습니다. 지금은 힐빌리라는 호칭이 백인 빈곤층에 대한 멸칭으로 자리잡았지만, 1960년대만 하더라도 힐빌리라는 이름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이 달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1960년대 마운틴 듀 광고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름이 사실 '윌리 더 힐빌리'(Willy the Hillbilly)입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애팔래치아 주민들이 미국을 지탱하는 중산층이라는 귀속감을 가지고 살았을 겁니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달콤한 탄산 음료일까요? 두 부통령 후보의 생각이 궁금해집니다.

[ 이권열 기자 / lee.kwonyul@mbn.co.kr]

[아메리카 샷 추가] 에서는 현재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연수 중인 이권열 기자가 생생하고 유용한 미국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