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아메리카 샷 추가] 해리스가 '가짜 흑인'?...진실은?
입력 2024-08-04 12:19  | 수정 2024-08-04 23:58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 사진=백악관 홈페이지
인도계에서 흑인으로?...흑인이면서 남아시아계 미국인
과거 인도인을 '백인'으로 분류...지금은 아시아계
미국 대선에 출마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인종이 정치적 논란의 소재가 됐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노림수 같습니다. 트럼프는 전미흑인언론인협회(NABJ)에서 해리스가 인도계에서 흑인으로, 정체성을 바꿨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몇 년 전 해리스가 흑인이 되기 전까지 흑인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해리스가 득표를 위해 인도계에서 흑인으로 정체성을 바꿨다는 트럼프의 공격에 대해 미국 내에서도 반발이 상당합니다.



해리스, 인도계와 흑인 정체성 모두 강조


결론부터 말하면 해리스는 흑인이 맞습니다. 그리고 해리스가 인도계에서 흑인으로, 정체성을 바꾼 적도 없습니다. 해리스는 인도계와 흑인의 정체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해리스는 2019년 출간한 자서전 '우리가 가진 진실'에서 인도 문화를 충분히 느끼며 자랐고, 또 흑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성장했다고 밝혔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검찰청에서 일하던 2010년에 뉴욕타임스에 해리스에 대한 기사가 나왔는데 이때 이미 '흑인 경제학자(아버지)와 인도 출신 생물학자(어머니)의 딸'로 소개가 됩니다.

해리스의 인종에 대한 논란, 불필요한 궁금증은 예전에도 존재하긴 했는데요. 과거 미국의 인종 구분이 작위적으로, 또 임의적으로 이뤄져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일단 미국의 인종 구별법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인구조사국에서는 크게 다섯 인종으로 분류를 합니다. 백인, 흑인 혹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시아계, 미국 인디언 혹은 알래스카 원주민, 하와이 원주민 혹은 다른 태평양 섬 주민입니다.

'흑인 혹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정의는 아프리카 흑인 인종의 혈통을 물려받은 사람입니다.

해리스의 아버지, 도널드 J. 해리스는 자메이카계 미국인입니다. 정확히는 아프리카계 자메이카 이민자 출신입니다. 영국 식민지 시절,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노예의 삶을 강요당하며 자메이카로 이주당했습니다. 2012년 뉴욕타임스에 자메이카 작가 캐롤린 쿠퍼의 글이 실렸는데, 여기에 따르면 자메이카 주민의 90%가 아프리카계라고 합니다. 자메이카 이민자 출신의 딸, 해리스도 당연히 흑인입니다.

과거 미국의 인종 분류 체계로 혼란 커져


해리스의 어머니는 인도 출신 이민자입니다. 여기서 약간 혼란이 생깁니다. 해리스의 출생 증명서가 공개됐는데 어머니의 인종이 '백인'(Caucasian)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해리스의 출생증명서는 '스크립드'라는 전자책, 전자문서 공개 사이트에 공개됐습니다. https://www.scribd.com/document/472773880/Kamala-Harris-birth-certificate-is-clear-she-is-eligible-for-VP-position)

해리스 어머니의 인종이 표시된 출생증명서 / 사진 = '스크립드' 홈페이지


이 혼란에 대해서는 미국의 팩트체크 전문기관, '팩트체크닷오알지'가 상세하게 파악을 했습니다. 여기에는 다소 황당한 사연이 있습니다. 1995년에 발간된 미국 관리예산처(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의 '인종 및 민족 분류 표준'(Standards for the Classification of Federal Data on Race and Ethnicity)을 보면 '인도인'을 복잡하게 분류한 역사가 나와 있습니다. 인구조사를 할 때 1920년부터 1940년까지는 인도인을 '힌두계'로 분류하고, 1950년부터 1970년까지는 '백인'으로 분류합니다. 1980년부터 1990년까지는 '아시아계 또는 태평양 섬 주민'으로 분류하죠. 해리스는 1964년에 태어났으니 그때는 해리스의 어머니가 '백인'으로 표기되는게 맞습니다.

백악관 홈페이지에 '흑인, 남아시아계 미국인' 소개


지금은 인도인이 아시아계로 분류됩니다. 실제로 해리스도 아시아계 미국인 모임에 참석했을 때 '공동체(community)의 일원'이라는 말로 자신을 소개했다고 합니다. 백악관 홈페이지에도 해리스에 대해 흑인, 남아시아계 미국인이라고 소개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흑인과 남아시아계 가운데 해리스의 인종은 정확히 무엇일까요? 설문 조사 형태로 이뤄지는 인구조사를 할 때 인종 표기는 '자기 인식'에 따라 표기를 합니다. 스스로 느끼는 정체성이 중요한데, 하나 이상 인종에 표시를 할 수도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어떻게 조사가 이뤄지는지 아실 수 있습니다. 한글로 된 인구조사 설문지 작성 안내서입니다.

2020년 인구조사 안내서 / 사진 = 미국 인구조사국


해리스는 아마 스스로 흑인이면서 남아시아계 미국인으로 인식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흑인과 남아시아계를 일도양단하듯 나눌 수 있는 과학적, 합리적 기준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해리스에게 인종을 굳이 물어볼 필요도,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어차피 인종이라는 관념은 사회적으로 발명됐을 뿐, 실존하는 개념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해리스가 어떤 인종이든, 유권자에게 중요한 판단 기준은 아닐 것 같습니다. 소수 인종 등으로 표상되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공감 능력을 해리스가 가지고 있는지, 또 공감이라는 정서를 유효한 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겠죠.

[ 이권열 기자 / lee.kwonyul@mbn.co.kr]

[아메리카 샷 추가] 에서는 현재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연수 중인 이권열 기자가 생생하고 유용한 미국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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