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아메리카 샷 추가] 올림픽 대표팀 탈락했는데도 더 화제?
입력 2024-07-31 10:22  | 수정 2024-10-29 11:05
파리 올림픽 무대 밟지 못해도 더 인기 끄는 케이틀린 클라크
제2의 '래리 버드-매직 존슨' 라이벌 구도 만들며 화제
올림픽은 전 세계 운동선수들이 꿈꾸는 꿈의 무대입니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도 시선이 집중되죠. 그런데 오히려 올림픽에서 빠졌다는 이유로 더 화제가 되고 있는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의 케이틀린 클라크입니다.

일본 팬 '한 줄 도발'에 미국 언론도 '들썩'


파리 올림픽에서 클라크의 실력과 인기를 알 수 있는 에피소드가 연출됐습니다. 프랑스 파리 현지시간으로 지난 30일 열린 미국과 일본의 여자농구대표팀 경기에 미국 응원단의 '멘탈'을 뒤흔든 응원 문구가 등장했습니다. 일본 농구팬은 "우리를 이기려면 클라크가 필요하다(You need Caitlin Clark to beat us)"라고 쓰여있는 종이를 들어올렸습니다. 올림픽 8회 연속 우승을 노리는 미국 팀이라도 클라크가 없으면 별 것 아니라는, 아주 도발적인 문구를 사용한거죠. 그리고 이 응원 모습을 NBC 스포츠 리포터 케리스 버크가 자신의 SNS에 올리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이 한 줄의 응원이 경기 결과보다 더 시선을 끌었습니다. 많은 언론이 경기 결과를 보도하면서 이 응원 문구를 인용했습니다.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될 응원 문구인데도 미국 언론이 그냥 넘기지 못했습니다.

경기에 대한 기사를 보면 "일본 팬의 도발에도 선수들이 흐트러지지 않고 잘 싸웠다, 그래도 클라크가 빠져서 아쉽다"는 평가로 끝맺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미국은 일본을 상대로 102-76, 26점 차이 대승을 거뒀습니다) 기사 내용만 놓고 보면 미국팀의 승리보다 클라크의 불참이 더 관심을 끄는 듯 합니다. 미국 농구팬들은 '세계 최강' 미국팀이 이기는 것은 당연하고, 클라크가 이 자리에 초대받지 못한 것이 당연하지 않다고 여기는 듯 합니다.



미국 여자 농구 역사 새로 쓰는 클라크


대체 클라크가 누구길래 일본 팬이 그 이름을 언급한 것만으로 미국 언론이 들썩이는 걸까요? 클라크는 미국 여자 농구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스타선수입니다. 많은 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대표적인 기록 몇 가지만 꼽아보겠습니다. 우선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최다 득점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녀 통틀어 최고 기록(3951점)입니다. 클라크는 아이오와대학을 졸업하고 올해 WNBA 인디애나 피버에 입단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구름 관중을 이끌며 여자 농구의 인기를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특히 아이오와대학과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의 NCAA 결승전은 1800만 명 이상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정도 시청자 숫자는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나 달성 가능하다고 합니다. 클라크가 인디애나 유니폼을 입고 처음 뛴 데뷔전은 230만 명이 시청했습니다. 2001년 이후 최고 기록입니다.



클라크 경제효과에 '클라코노믹스' 신조어 등장


클라크의 인기가 높다보니 '클라코노믹스'(Clarkonomics)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습니다. 클라크의 관중 동원이 막대한 경제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건데요. '아이오와 커먼센스 연구소'(Commonsense Institute Iowa) 보고서에 따르면 클라크가 아이오와주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아이오와주에 기여한 경제 효과가 최대 720억 원이라고 합니다.

이 정도 인기를 등에 업은 클라크가 대표팀에서 왜 빠진건지 궁금할 지경인데요. 미국 농구 대표팀 선발위원회는 클라크의 '큰 대회 경험 부족'을 이유로 꼽았습니다. 대표팀엔 지난 도쿄 올림픽 대회 때 7회 연속 우승을 이끈 선수들이 7명이나 포함돼 있습니다. 반면 클라크는 올림픽 출전 경험이 없습니다. 또 클라크의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인데, 이 포지션에 경험 많고 실력 쟁쟁한 선수들도 많다보니 클라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고 미국 언론들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카고 바비'와 라이벌 구도


프로무대에서도 클라크가 얼마나 기량을 발휘할지는 지켜봐야 하겠습니다만, 당분간 확실한 흥행 카드가 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특히 미국인들은 클라크를 '백인의 우상' 래리 버드에 비유합니다. 버드는 1980년대 미국 프로농구(NBA)에서 활약한 선수입니다. NBA를 세계 최정상급 인기 스포츠로 정착시킨 주역이기도 합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흑인 선수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보니 버드가 백인이라는 점이 꽤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클라크가 버드의 이미지에 딱 맞아 떨어진다는 겁니다. 흑인 선수들이 즐비한 NCAA, WNBA에서 백인 선수가 두각을 나타낸 흔치 않은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버드는 흑인 선수 매직 존슨과 라이벌 구도를 만들면서 더욱 화제를 모았는데요. 공교롭게도 클라크 역시 흑인 선수를 라이벌로 두고 있습니다. 바로 에인절 리스입니다. 루이지애나주립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WNBA 시카고 스카이 소속 선수로 뛰고 있습니다. '루이지애나 바비', '시카고 바비' 같은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화려한 외모의 소유자입니다. (여자 운동선수의 외모를 부각시키는 별명을 사용하는 것이 다소 부적합할 수도 있겠지만, 리스 스스로 자신의 SNS에 바비라는 별명을 거론하곤 합니다.) 클라크와 마찬가지로 올해 프로무대에 뛰어든 에인절 리스는 얼마전 15경기 연속 더블더블(두 자리 숫자 리바운드와 득점) 기록을 세웠습니다. WNBA 단일 시즌 최다 기록입니다.

매직 존슨은 실제로 두 선수의 라이벌 대결에 부채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6월 자신의 SNS에 클라크와 리스가 과거 래리 버드와 자신을 떠올리게 한다고 올린 겁니다. 40년 만에 재연되는 라이벌 구도에 농구팬들은 더욱 열광하고 있습니다.



피가 끓는다고 말한 흑인 선수


그렇다면, 클라크가 백인이 아니었더라도 지금의 인기가 가능했을까요? 클라크는 아마도 선수 생활을 하는 내내 이 질문을 맞닥뜨려야 할 겁니다. 클라크가 백인이기 때문에 인기를 끌고 있고, 혜택을 받았다는 의구심은 클라크의 프로무대 진출 이후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올림픽 대표팀 선수면서 WNBA의 유명 센터 에이자 윌슨은 클라크의 인기와 관련해서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뼈 있는' 발언을 남겼습니다. 윌슨은 흑인 선수인데,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사람들은 상품성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그런 문제가) 인종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피가 끓는다"고 밝혔습니다.

이 발언을 윌슨 개인의 예민성 차원으로 축소해서 바라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클라크의 등장 이후 미국 스포츠계에 인종 차별이 과연 존재하지 않는지, 질문을 던지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 제기는 관중 폭증으로 도약기를 맞이한 미국 여자 농구계가 풀어야 할 숙제기도 합니다.

[ 이권열 기자 / lee.kwonyul@mbn.co.kr]

[아메리카 샷 추가] 에서는 현재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연수 중인 이권열 기자가 생생하고 유용한 미국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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