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정부, 사태 수습 과정 이견으로 권력갈등설 제기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이 프랑스 축구대표팀을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으로 비하하는 노래를 '떼창'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특히 아르헨티나 부통령이 문제의 장면을 SNS로 중계한 자국 축구대표 선수를 옹호하면서 프랑스 정부의 반발을 샀고, 아르헨티나 대통령 비서실장이 프랑스측에 사과하면서 부통령과 대통령 비서실장간에 갈등을 빚고 있다고 아르헨티나 언론들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언론에 따르면 지난 16일 '미주판 월드컵' 대회인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한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이 버스로 이동하던 중 승리감에 도취해 프랑스 선수들을 비하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때마침 엔소 페르난데스 선수(첼시 소속)가 자신의 SNS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켰다가 이 장면이 고스란히 방송돼 이 같은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부른 노래는 지난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팬들이 결승에서 만난 상대국 프랑스 선수들을 조롱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프랑스 대표팀 선수들의 부모가 나이지리아, 카메룬 등 아프리카계이며, 킬리안 음바페(레알 마드리드 소속)는 성전환자와 사귄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에 프랑스 축구협회는 발끈하며 국제축구연맹(FIFA)에 제소하겠다고 발표했고,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첼시 구단은 성명을 내고 페르난데스 선수에 대해 징계하겠다고 알렸습니다.
같은 팀 소속인 첼시의 프랑스 출신 선수들도 모두 그와 SNS에서 팔로우를 끊으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페르난데스 선수는 다음날 개인 SNS에 해당 영상에 대한 사과문을 게재하면서 "모욕적인 표현이 포함된 노래를 부른 것에 대해 변명의 여지는 없지만, 그 노래가 나 자신의 신념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선 "축구장에서 재미로 부르는 노래인데 너무 한다", "프랑스 축구대표팀 선수들 대부분이 흑인이고 사실을 표현한 노래가 무슨 문제인가"라는 의견과 더불어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고 흑인들을 착취한 프랑스가 우리에게 인종차별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빅토리아 비야루엘 아르헨티나 부통령도 개인 SNS에 "그 어떤 식민주의 국가도 축구 노래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말한다고 해서 우리를 협박할 수 없을 것이다. 분노하는 척하지 말라, 위선자들. 엔소, 난 당신 편이다"라고 적고서 대표팀의 행동을 옹호했습니다.
비야루엘 부통령은 몇 년 전 BTS를 '무슨 의료보험이나 성병 이름 같다'고 조롱해 논란이 됐던 인물입니다.
비야루엘 부통령이 이 같은 입장을 밝히자 아르헨티나 주재 프랑스 대사가 디아나 몬디노 외교부 장관에게 항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외교 문제로 번질 우려가 커졌습니다.
이에 다음 주 밀레이 대통령의 프랑스 공식 방문을 준비 중인 아르헨티나 정부는 논란을 서둘러 잠재우기 위해 대통령의 여동생이자 막강한 권력자인 카리나 밀레이 대통령 비서실장이 프랑스 대사에게 직접 부통령의 발언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마누엘 아도르니 대통령실 대변인은 19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부통령의 의견은 아르헨티나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며, (카리나 대통령 비서실장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당 발언에 관해 설명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르헨티나 정부는 스포츠 열정과 외교 문제를 혼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현지 매체 엘테스타페는 "프랑스 측의 요청도 없는데,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사관을 방문해 개인적으로 사과했다는 대통령실 대변인의 설명도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외교부 장관이 아닌 대통령 비서실장이 나선 것도 정상적인 절차가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매체는 카리나 비서실장과 비야루엘 부통령 간의 내부 권력 싸움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비야루엘 부통령(좌), 밀레이 대통령과 카리나 비서실장(우)
[김경태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dragonmoon20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