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Overseas Trip] 때론 P처럼 때론 J처럼...카트만두를 거쳐 포카라까지
입력 2024-07-19 14:06 
포카라 부다나트 스투파 주변 광장
히말라야의 땅, 네팔 여행 ①
트레킹 준비의 전초기지, 카트만두와 포카라

이동의 시작은 인도 북동부였다. 인도에 온 김에 주변국인 네팔에 들러보자는 다소 즉흥적인 생각이 자연스레 안나푸르나산(Mount Annapurna) 트레킹 계획으로까지 이어졌다. 네팔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도 북동부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이 숨겨진 추진력을 끄집어내기에 충분했다. 즉흥적(P)이면서도 계획적(J)인 여행의 시작이었다.
인도와 네팔의 출입국 관리 사무소를 마주하다
인도 북동부 실리구리(Siliguri, 인도 서벵골주의 도시)에서 네팔 국경을 통과해 수도인 카트만두(Kathmandu)까지의 직행버스는 총 20시간가량 소요된다. ‘직행이라는 말에 순간 혹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20이라는 숫자 앞에 추진력은 금세 자취를 감춰버렸다. 결국 직행버스 대신 밤 기차와 두어 번의 셰어택시를 활용하는 것으로 이동계획을 조정했다.
뉴 잘파이구리 기차역(New Jalpaiguri, 실리구리 도심에서 남쪽으로 약 4km 떨어진 곳)에서 락사울(Raxaul, 인도 비하르주에 위치한 네팔 국경과 맞닿아 있는 소도시)까지 12시간가량 소요되는 기차의 침대 칸에서 두 다리 쭉 뻗고 잠을 청할 수 있다는 것이 ‘직행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지웠다.
(쫘)네팔 국경과 맞닿아 있는 인도 소도시 락사울 기차역 (우)인도 북동부 뉴 잘파이구리 기차역
락사울 기차역에서 국경까지는 고작 1km로 지척이다. 도보로 이동이 가능한 거리지만 국경 주변의 혼잡함을 고려해 삼륜차인 오토릭샤를 잡아탔다. 10분 정도 이동했을까. 시동이 꺼진 삼륜차가 멈춰선 곳은 경비초소처럼 보이는 작디 작은 건물 앞, 건물 벽면에 쓰여진 영문을 재차 확인하니 락사울 출입국 관리 사무소가 맞았다. 도보로 이곳에 왔다면 보고도 그냥 지나쳤을 게 분명했다. 실로 오래간만에 외국인 여행자가 방문했다는 듯 반가움을 표출하는 사무소 직원들의 얼굴과 몸짓에서 특별한 순간이 싹트고 있었다.
어쩌면 어두컴컴한 사무소 내부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특별한 경험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을지 모른다. 2024년, 21세기,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영 믿을 수 없는 사실 같았기 때문이다. 인도에서의 출국을 마친 뒤 20여 분가량 도보로 이동해 마침내 네팔 국경을 넘어 그곳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 당도하자 이번 역시도 마치 창고 같은 건물 외관의 등장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긴장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인도와 네팔 국경은 어렵사리 찾아온 여행자의 수고스러움을 단박에 보상해줬다.
네팔 국경 출입국 관리 사무소 전경
카트만두의 중심지역, 타멜과 아산
카트만두는 서기 2세기에 건설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적으로 사람이 살았던 곳 중 하나로, 해발 1,400미터 바그마티 강과 비슈누마티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카트만두 도심에는 새로 건설된 도로와 낡고 오래된 벽돌집이 줄지어 있는 좁은 구역이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 1934년 지진으로 파괴된 도시의 기반시설은 현재의 현대식 건물이 하나둘 건설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카트만두는 네팔의 정치와 문화의 수도로서 고대의 전통과 최신 기술의 발전이 함께하는 도시다. 정교하게 조각된 나무 창틀, 18세기 청동 조각상과 사리탑이 여행객의 시선을 빼앗고, 대도시가 가진 특유의 번잡함과 미소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도시 사람들의 친절과 배려가 카트만두를 정의 내린다.
(좌)카트만두 관광지구 타멜(Thamel) 거리 (우)카트만두의 상징이라 불리는 아산 시장
카트만두에서 최대 상업지구로 꼽히는 곳, 바로 타멜(Thamel) 지역이다. 관광지구로도 일컬어지는 이곳은 말 그대로 관광객을 위한 모든 시설이 총망라된 곳이다. 전 세계 각지에서 카트만두를 찾은 수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히피 문화가 만들어지고 자리잡으면서 지난 40년간 타멜 거리의 불빛은 깊은 밤에도 꺼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 보니 타멜 지역은 카트만두의 여느 지역과는 상반된 분위기를 뿜어낸다. 거리 위에 빈틈 없이 들어선 수많은 호텔과 카페, 레스토랑, 바, 책방, 기념품 상점, 여행사 등 도시의 모던한 감성이 오직 타멜 지역을 중심으로 조성된 형국이다.
그도 그럴 것이 타멜 지역을 벗어나고 나면 금세 도시는 사라지고, 예스러운 분위기가 여행자의 시각을 에워싸기 때문이다. 타멜 지역 중심가에서 남쪽으로 약 1km 떨어진 아산 바자(Asan Bazar)는 이러한 분위기를 몸소 체험하기에 제격인 장소다. 과거 카트만두의 중심지로 군림했던 아산 시장 광장은 네와리족(Newari People, 카트만두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집단)의 고향이자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생명의 원천과도 같았다.
과거 카트만두의 중심지였던 아산 시장 광장
특히 아산 시장은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중 하나로서 6개의 거리가 모여 형성된 광장에는 각 거리마다 여러 상점과 노천 장사꾼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는 모습이다. ‘풍부한 식량이자 곡물의 여신이라 불렸던 안나푸르나 아지마(Annapurna Ajima) 사원을 중심으로 활기찬 시장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카트만두의 상징으로 일컬어진다. 각종 식료품부터 향신료, 섬유와 전자제품, 귀금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이 판매되고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과거 카트만두의 중심지였던 아산 시장 광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구시가지
아산 시장에서 메인 도로를 따라 15분가량 걸으면 구시가지 초입에 다다른다. 17세기와 18세기에 지어진 역사적인 건축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데, 네와르족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이 광장 내·외부 건축물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마치 과거로 회귀한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더욱이 이 일대를 아우르는 ‘두르바르 광장(Durbar Square) 전체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일찍이 그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두르바르 광장 주변에 들어선 기념품 상점과 노천상인들 , 두르바르 광장 주변에서 판매하는 기념품, 광장 그늘에서 무더위를 식히는 네팔 사람
광장의 건설은 3세기경 시작되었지만 광장 내부 주요 건축물은 4세기부터 8세기 사이 세워졌으며, 광장 외부 단지는 말라 왕조(1201년부터 1779년까지 네팔 카트만두를 통치했던 왕조)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건축물은 1934년 네팔 대지진 이후 재건축된 것이 대다수다. 또한 2015년 4월 규모 7.9의 지진으로 또 한 차례 피해를 입은 카트만두는 당시 이곳 광장에도 지진의 영향을 받아 6개의 사원이 무너지고 여러 개의 탑이 파괴되는 등 커다란 손실을 입었다.
지진 이후 수년간 재건이 활발히 진행돼 왔으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광장에는 50개가 넘는 사원과 더불어 여러 궁전과 안뜰로 구성되어 있다. 그 때문일까. 이곳은 ‘사원 박물관이라 불리기도 한다. 1564년 말라 왕조가 당시 왕실 여신인 탈레주 바와니에게 바치기 위해 지어진 힌두교 사원, 탈레주 바와니 사원(Taleju Bhawani Temple)이 가장 대표적이다.
(좌)광장 그늘에서 무더위를 식히는 네팔 사람들 (우)광장 그늘에서 무더위를 식히는 네팔 사람들
두르바르 광장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장소는 바로 남쪽에 위치한 작은 동네, 올드 프리크 스트리트(Old Freak Street)다. 현재 관광지구로 조성된 타멜 거리의 전신 격에 해당하는 이곳은 1960~70년대 카트만두에서 가장 핫한 거리로 유명했다. 당시 세계 각지에서 카트만두를 찾은 히피족이 하나둘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여행자 거리로, 젊은이들의 문화아지트로 각광받은 것.
하지만 넘쳐나는 히피족들의 무질서로 인해 골머리를 앓게 된 네팔 정부는 1970년대 후반 이곳을 점령한 히피족들을 인도로 추방하는 데 성공하며 올드 프리크 스트리트의 인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는 타멜에 가려져 이곳 거리가 가진 명성을 잃은 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시가지 골목길 한 편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 이곳만의 흥미로운 역사를 돌아보며 한번쯤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장소다.
광장에서 올드 프리크 스트리트로 이어지는 좁다란 골목길, 모던한 카페가 들어선 올드 프리크 스트리트
사원에서 삶의 희로애락이 피고 진다
전체 인구의 87%가 힌두교를 믿는 힌두교의 나라, 네팔에는 3억 3,000만의 신을 섬긴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러 동물은 물론 자동차, 건물, 나무, 음식 등 신처럼 받들 듯 섬기는 대상이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종교의 색채가 짙게 풍기는 나라답게 카트만두에만 크고 작은 사원이 약 3,000개 이상 자리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 보니 카트만두에는 ‘집보다 사원이 더 많고 사람보다 신과 여신이 더 많다고들 한다.
이 많은 신과 여신이 이곳 사람들의 안위를 보살펴주고 치료해준다는 믿음이 모두에게 굳게 뿌리내려져 있는 분위기다. 이를 테면 이곳 사람들은 몸이 아플 때 병원보다 사원을 먼저 찾고 기도를 올린다. 인생의 행복과 불행, 아픔의 순간마다 사원은 이를 해소하고 공유하는 일 순위 공간이다. 삶의 희로애락이 사원을 중심으로 피고 지는 도시, 이곳의 내면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원에 가야 한다.
카트만두를 대표하는 티베트 불교사원-부다나트 스투파, 부다나트 스투파 주변 광장
카트만두에는 많은 수의 티베트 불교사원 또한 자리한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부다나트 스투파(Boudhanath Stupa)다. 카트만두 도심에서 북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부다나트 스투파는 14세기경에 지어진 거대한 흰색 돔 천장과 높이 솟은 황금 첨탑, 꼭대기에 위치한 불교 피라미드 탑이 돋보이는 사원이다.
황금 첨탑에는 부처님의 전지전능한 눈이 그려져 있는데, 이를 본 따 만든 다양한 종류의 기념품이 카트만두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을 만큼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물과도 같다. 돔 천장 주변을 걷다 보면 위치에 따라 햇볕의 밝기가 달라져 황금 첨탑은 다양한 빛깔을 드러낸다. 특히 일몰 무렵 노을이 질 때 생기는 불그스름한 빛은 부처님의 두 눈에 반사되어 오묘한 신비를 자아내는 것이 특징.
사원 주변을 걷는 동안 동쪽 안뜰에서 땅에 몸을 쭉 뻗고 엎드린 채 108배를 드리는 헌신적인 신도들을 쉬이 목격할 수 있다. 오전 혹은 오후 하루 중 어느 시간대에 가더라도 동쪽 안뜰에는 빈 자리 하나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부다나트 스투파는 종교적 공간이라는 의미를 떠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카트만두의 단면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임이 분명했다.
트레킹을 위한 관문, 포카라에 닿다
안나푸르나산 트레킹을 하기 위해 일단 포카라(Po-khara)로 이동해야 했다. 네팔 중부 대도시인 포카라는 카트만두에 이어 네팔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다. 페와 호수(Phewa Lake) 기슭에 위치해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10개 봉우리 중 3개, 즉 안나푸르나 1봉을 비롯해 다올라기리(Dhaulagiri), 마나슬루(Manaslu)가 포카라에서 북부 방향으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이 세 개의 봉우리 중 안나푸르나 1봉은 트레킹의 성지라 불릴 만큼 인기가 높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교통편은 두 가지다. 버스와 비행기. 두 도시 간 거리가 약 200킬로미터에 불과한데, 소요시간은 상상을 뛰어넘어 12시간을 꼬박 채웠다. 오전 7시에 출발한 버스가 정확히 저녁 7시를 가리켜 포카라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한데 비행기 소요시간 또한 상상을 뛰어넘는다. 고작 25분, 그러고 보니 200킬로미터가 틀린 숫자는 아니었다.
포카라에서의 첫 일정은 트레킹을 위한 준비에 집중됐다. 일단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려면 가장 중요한 허가증 발급이 우선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카트만두와 포카라에 허가증을 발급해주는 사무소(ACAP Entry Permit Counter)가 위치하며, 두 곳 어디서나 필요서류와 증명사진, 발급수수료를 지불하면 쉽게 허가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이때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면 사무소 직원으로부터 동일한 두 장의 허가증을 받게 되는데, 하나는 추후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 중간에 방문하게 될 출입국 사무소에 제출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영수증처럼 여행자 본인이 트레킹 내내 지참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안나푸르나 일대는 6월초부터 우기가 시작되지만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몇 주 앞당겨 우기가 찾아온 시점이었다. 그만큼 날씨와 일정 등을 고려해 트레킹 코스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심사숙고 해야 했다.
포카라에서 만난 여러 현지인들의 의견과 조언에 따라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 중 우기의 영향을 덜 받는, 눈 덮인 설산의 맑은 전망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하는 ‘마르디 히말(Mardi Himal)을 택했다. 4박5일간의 트레킹 일정, 상황에 따라 1~2박 더 길어질 수도 있는 상황. 내일의 다가올 위험과 염려, 두려움은 잠시 접어두고 일단 산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뗀다. 어찌됐든 시작이 반이다.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39호(24.07.2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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