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통화서 "사의 말렸다…자기도 그건 생각 안 한다더라"
채해병 순직 사건 당시 청와대 경호처 출신 송모 씨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과 대응 방향을 상의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추가 발견됐습니다.
'건강을 잘 챙기라'는 취지의 안부 문자를 보냈을 뿐이란 송 씨와 임 전 사단장의 기존 해명과는 배치되는 내용입니다.
관련자들의 해명이 엇갈리거나 오락가락하고 있어, 이른바 '임성근 구명 로비 의혹'에 실체가 있는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로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멋쟁해병' 단톡방을 공익신고한 A 변호사가 공수처에 제출한 통화 녹취에는 지난해 8월 9일 송 씨가 해병대 사건과 관련해 "나는 사단장 여기만 잘 살피고 있다"며 임 전 사단장과 통화를 했다는 취지로 말하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이어 송 씨는 A 변호사에게 "내가 그랬다. 어떤 경우가 와도 도의적인 책임은 지겠지만 그걸로 인해 사의 표명은 하지 말아라. (그랬더니) 자기도 그건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하더라)"하면서 "대민(지원으로) 돕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사단장 책임이라고 하면 말이 안 된다. 여튼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단톡방 참가자 중 한 명인 송 씨는 "내가 VIP한테 얘기를 하겠다"는 발언으로 구명 로비설의 중심에 선 이종호 전 블랙펄 인베스트먼트 대표에게 임 전 사단장의 사의 표명 소식을 전하는 등 중간 다리 역할을 했다고 지목된 인물입니다.
작년 8월 9일은 이 전 대표가 A 변호사와의 통화에서 "내가 VIP에게 얘기하겠다"며 임 전 사단장의 사퇴를 만류했었다는 취지로 말한 날입니다.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을 둘러싼 구명 로비설이 불거지자 지난 10일 이를 부인하는 입장문을 내고 채상병 순직 당일인 지난해 7월 19일부터 8월 31일까지 송 씨와 전화를 주고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임 전 사단장은 당시 "(언론 보도로 저의 사의 표명 사실이 알려진) 8월 2일 이후 미상일에 송 씨로부터 '언론을 통해 사의 표명을 들었다. 건강 잘 챙겨라'라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받은 듯한데 수령 일시와 정확한 내용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송 씨도 위로 문자를 보냈을 뿐 채상병 사건 이후에 임 전 사단장과 다른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수처에 제출된 통화 내용에 비춰보면 임 전 사단장이 자신의 거취에 관해 송 씨와 안부를 묻는 것 이상의 대화를 나눈 것으로 의심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임 전 사단장이 사의에 대해 "그건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반응했다고 전한 대목도 본인의 그간 해명과는 엇갈리는 내용입니다. 임 전 사단장은 지난해 7월과 8월 거듭 사의를 밝혔다며 자리에 연연한 적 없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이와 별개로 송 씨가 임 전 사단장과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파악되고 있습니다.
공수처는 송 씨와 임 전 사단장이 2022년 6월 해병대 골프장(덕산대 체력단련장)에서 함께 골프를 친 사실 등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송 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2022년 5월경 안부 통화 중 곧 사령부를 떠날 수 있다고 해 운동 한 번 하자고 했고 다행히 티가(예약이) 잡혀 운동했다"며 "6월경 골프를 친 건 사실이지만 이후 현재까지 같이 운동한 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8월 2일 임 전 사단장에게 위로 문자를 보낸 것 외에 따로 연락한 적이 있느냐는 문의에는 "없다"고 답했습니다.
임 전 사단장은 "제가 2022년 6월 송 선배님과 골프를 같이 친 사실이 최근 논란이 되는 로비 의혹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잘 이해가 안 된다. 로비설의 실체가 있는지는 저도 궁금하다"며 "저에게 구명의 뜻조차 없었는데 그런 저를 위해 누가 저도 모르게 구명 로비를 했을까 싶다"고 밝혔습니다.
당사자들이 구명 로비 의혹을 적극 부인하고 있는 만큼, 실제로 임 전 사단장이 채상병 순직에 관한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 및 인사조치 되지 않도록 구명 활동을 벌인 이들이 있는지, 실제로 로비가 작동했는지 등은 공수처 수사로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핵심 인물인 이 전 대표는 어제 JTBC 인터뷰에서 "제가 VIP라고 한 건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님을 제가 지칭하는 것"이라면서 "제가 (VIP에게 구명 로비를) 한 것처럼 부풀려서 얘기한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민아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jma11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