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Overseas Trip] 카자흐스탄 알마티 여행②
입력 2024-07-05 19:48 
‘자작나무 호수’라는 뜻의 카인디 호수
천 년의 시간이 퇴적된 자연의 보석을 만나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외곽에 흩뿌려져 있는 보석을 찾아 떠났다. 지진으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형성된 호수부터, 화산 용암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이 천천히 쌓여 형성된 협곡까지 신비롭고 장엄한 자연 풍경 앞에 절로 무릎을 꿇었다. 작은 배에 몸을 실은 채 호수를 가로지르고 험준한 좁은 골짜기를 두 발 꾹꾹 찍어 탐험해본다.
오프로드를 달려 자작나무 호수로
도깨비투어가 따로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도착한 사티 마을 홈스테이.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어렵사리 잠을 청할 수 있었는데, 체감상 불과 몇 분 만에 눈이 떠진 것 같은 피곤함이 머리를 짓눌렀다. 꿈일 거라 생각한 방문 노크 소리가 깨고 보니 홈스테이 주인의 친절한 모닝콜이었던 것. 잠깐 눈을 붙인 것 같았지만 그새 아침 7시, 그러고 보니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고, 투어 둘째 날의 시작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지난밤 출발해 이동에만 꼬박 시간을 다쓰고, 아직 투어라곤 제대로 시작도 안 한 셈인데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분주하고 바쁜 심신은 도깨비투어의 영향 때문이라 표현할 수밖에. 간밤 온통 검은색이던 마을 풍경은 새날과 함께 푸르른 초록과 새파란 하늘로 180도 반전을 이룬 모습이다. 여전히 꿈속에 있는 듯한 비현실적인 배경을 가로 질러 마을 입구에 주차된 투어 차량에 올랐다.
(위)사티 마을의 아침 풍경, (아래)오프로드에 최적화된 10인승 승합차
지난밤 타고 온 50인승 대형버스 대신 오프로드에 최적화된 10인승 승합차에 몸을 맡긴다. 사티 마을에서 남쪽으로 약 14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카인디 호수(Kaindy Lake)가 알마티 외곽 투어의 첫 번째 목적지다.
약 30여 분 달렸을까. 오프로드를 달리는 덜컹거리는 움직임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려는 찰나 차량 시동이 고요함에 이른다. 색깔과 사양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한 승합차가 나란히 줄지어 있는 곳에 차가 멈춰 서자 지난밤 같은 버스의 동행자들이 이미 도착해 하나둘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주차장에서부터 호수까지, 약 2km 구간은 도보 혹은 말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투어그룹이 절반으로 갈라졌다. 저마다의 매력이 있겠지만 나는 말의 힘 대신 두 발의 힘을 빌려 호수로 향하기로 했다.
1911년 지진으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형성된 카인디 호수
카인디 호수는 카자흐어로 ‘자작나무 호수를 뜻한다. 최대 길이 400m, 최대 깊이 30m로 해발 2,000m에 위치한 산악 호수다. 이곳 현지인들 사이에선 ‘산사태 호수라 불리기도 하는데, 1911년 지진으로 인해 대규모 석회암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천연 댐이 형성된 데에 따른 배경 때문이다. 천연 댐은 석회암 퇴적물로 인해 청록색을 띠는 데다 호수 표면 위로 솟아 오른 침수림이 장관을 이루며 카인디 호수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차가운 온도의 호숫물은 다양한 수생 식물로 자란 나무 줄기를 보존하는데 도움을 주며, 이곳 기후와 호숫물의 온도에 따라 나무 줄기 색이 변하는 특징이 있다. 마치 가시가 촘촘히 박힌 듯 공포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소름 돋는 호수의 첫인상은 보면 볼수록 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여기에 청록 빛깔의 호숫물이 신비로운 에너지를 뿜어내며 물속을 하염없이 들여다봐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신기한 기운이 느껴지는 경험임은 분명하다.
카인디 호수 주변 하이킹 코스
‘천산의 진주라 불리는 콜사이 호수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카인디 호수가 이 말을 들으면 섭섭해할지 모르겠지만 콜사이 호수(Kolsai Lake)에 닿자마자 이전에 갔던 카인디 호수는 애피타이저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챘다. 물론 제각기 특징과 환경, 조건이 다르지만 한 날 두 개의 호수를 연달아 방문하다 보니 ‘비교는 자연스레 따라붙을 수밖에 없었는데, 다른 요소를 자처하더라도 크기만 비교하면 콜사이 호수가 메인디시에 충분히 오를 만했다. 북동부 방향으로 약 30km를 이동해 ‘또 하나의 신비롭고 장엄한 풍경의 호수를 맞닥뜨렸다라고 표현해야겠다.
호수가 위치한 콜사이 호수 국립공원은 카자흐스탄의 대표적인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천산산맥 북쪽 경사면에 위치해 있는 이 호수는 ‘천산(Tian Shan)의 진주라 불리며, 가파른 산비탈로 둘러싸인 세 개의 호수가 각 해발 높이에 따라 상부, 중부, 하부 콜사이 호수로 나뉜다. 하부 호수는 해발 1,800m, 중부 호수는 해발 2,250m, 상부 호수는 해발 2,800m에 위치해 있다. 도로로 접근이 가능한 하부 호수를 둘러보는 것이 여행자들의 일반적인 관광코스다.
(좌)콜사이 호수 보트 선착장, (우)보트 타기는 콜사이 호수 최고의 액티비티다.
아름다운 고산 풍경, 상록수 숲, 완벽한 청록색 바닷물처럼 느껴지는 호수 물 등 탁 트인 전망과 함께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기 제격이다. 트레킹과 캠핑애호가라면 호수 주변 숲속 깊숙이 자신만의 길을 닦고 시간을 즐기며 유유자적 한가로운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기도 하다. 일단 정해진 투어 프로그램 시간에 맞춰야 한다면 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잘 정비된 숲속 산책로를 따라 잠깐 동안 호수 주변을 둘러보는 일, 다른 하나는 보트를 타고 넓은 호수를 가로지르는 일이었다.
호숫물은 태양광선에 따라, 보트의 움직임에 따라 색의 변화가 끊임없이 이뤄졌다. 은은한 파란색부터 짙은 에메랄드 초록빛까지 한시도 틈을 주지 않는 분주한 변화의 움직임이 호수의 고요함을 무너뜨리기 충분했다. 자연의 놀라운 색상을 관찰하는 과정 속에서 마주한 호수는 같은 듯 다른 얼굴로 정체성을 분출해냈다.
(좌)투어의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인 캠프파이어, (우)‘달의 협곡이라 불리는 루나 캐년을 이루는 카인디 호수
모닥불의 열기 품고 험준한 좁은 골짜기로
투어의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은 바로 오늘밤에 있을 이벤트입니다.” 콜사이 호수 투어를 뒤로 하고 사티 마을 홈스테이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한껏 실려 있었다. 투어 일정표를 확인해보니 ‘캠프파이어가 오늘밤에 있을 이벤트의 중심이었다. 여기에 게임과 라이브 뮤직, 댄스타임 등이 덧붙여 나열되어 있었다. 가이드의 확신대로 지난밤의 뜨거운 열기와 여운은 투어가 끝난 이후에도 한동안 지속될 것만 같다.
일몰과 함께 다시 찾아온 산골 마을의 칠흑 같은 밤, 모닥불을 중심으로 강강술래하듯 둥그런 형태로 선 여행자들, 오싹할 만큼 한기가 느껴지는 밤의 추위는 거센 불길에 종적을 감췄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 댄스타임을 한바탕 치르고 나자 외투를 벗고 싶을 만큼 온몸에 차오른 땀을 감출 수 없었다. 다양한 게임을 연달아 겨루고 난 뒤 다음날의 일정을 고려해 자정 무렵 캠프파이어가 마무리되었고, 여행자들 각자 숙소로 향하는 발길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아쉬움의 불길이 번져갔다.
(위로부터)검은색으로 뒤덮인 깎아지른 바위가 특징인 블랙 캐년, ‘달의 협곡이라 불리는 루나 캐년, 블랙 캐년 사이로 흐르는 차린 강 풍경
국립공원 투어가 마치 수학여행으로 둔갑해버린 밤의 풍경은 호수의 장엄한 풍경을 한 순간 잊게 했다. 셋째 날 둘러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여러 곳의 협곡 풍경이 과연 이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여전히 귓가를 맴도는 음악 그리고 그에 맞춰 몸을 움직여야 할 것만 같은 긴 여운을 품은 채 첫 번째 협곡에 닿았다.
블랙 캐년(Black Canyon)은 사티 마을에서 동북부 방향으로 약 6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주변에 형성된 협곡 가운데 가장 역사가 깊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검은색으로 뒤덮인 깎아지른 바위가 수천만 년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힘을 강하게 내뿜는 곳, 협곡 사이로 흐르는 초록빛깔의 차린 강(Charyn River)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깊고 좁은 협곡과 우뚝 솟은 절벽이 신비감을 자아낸다.
블랙 캐년을 탐험하는 것은 낮과 밤의 시간대에 따라 차이를 나타낸다고 한다. 낮에는 협곡과 강, 주변 식물 등 각기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반면 일몰 이후 협곡을 드리운 그림자의 영향과 밤하늘을 밝히는 별의 불빛으로 인해 입체적인 풍경이 경외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 낮과 밤에 따라 바뀌는 두 얼굴의 블랙 캐년, 둘 중 어느 것을 보더라도 입을 다물 수 없는 경관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쯤에서 놀라긴 이르다.
차린 캐년 중앙에 난 길을 따라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
투어 셋째 날 방문하는 협곡이 총 3개인데, 이 세 개의 협곡은 알마티를 넘어 카자흐스탄을 대표하는 협곡이자 유명관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두 번째 협곡이 블랙 캐년에서 동쪽으로 약 20km 떨어진 ‘달의 협곡이라 불리는 ‘루나 캐년(Lunar Canyon)이다. 정식 명칭은 루나 캐년이지만 옐로우 캐년(Yellow Canyon)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협곡의 경사면이 노란색 퇴적물로 쌓여 있어 붙여진 별명이다. 루나 캐년은 주변에 조성된 협곡 가운데 관광지로서는 후발주자에 속한다. 그만큼 다른 협곡과 비교해 덜 알려진 곳으로 최근 들어 여행사들이 앞다퉈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차린 강과 쿨룩타우 산맥(Kuluktau Mountains) 가운데 위치한 루나 캐년은 지질학적으로 달의 풍경을 닮은 특별한 암석 지형의 영향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수천만 년에 걸쳐 물과 바람으로 형성된 독특한 바위 모양은 자연의 위대한 힘을 확인할 수 있는 경이로움 그 자체다.
(좌)예술의 조각품과도 같은 독특한 형태의 화산 용암 바위들, (우)차린 강 유역을 따라 약 80km에 걸쳐 형성된 차린 캐년
1,200만 년의 역사, 대망의 차린 캐년
이번 투어의 진짜 주인공을 만나러 갈 차례다. 역시나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맨 마지막에 나타나는 법. 투어 프로그램의 마지막 장소, 대망의 차린 캐년(Charyn Canyon)을 보기 위해 들뜬 마음이 머리끝까지 벅차 오른다. 여행 첫날, 케겐(Kegen)에서 셰어택시를 타고 알마티로 향하는 길목에 스쳐 지나가며 보았던 차린 캐년 국립공원 안내판 사인을 다시 마주했다. 마침내 국립공원 안으로 두 발자국을 찍었다. 알마티에서 동쪽으로 약 220km 떨어진 차린 캐년은 알마티 외곽의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평야의 정점을 찍는 자연의 놀라운 풍광을 선사하며 여행자를 뜨겁게 환영했다.
차린 캐년의 역사는 1,2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강이 주변 돌을 천천히 침식하기 시작한 것이 차린 캐년의 출발이었다. 협곡 바닥에 있는 가장 오래되고 어두운 층은 화산 용암 바위이며, 그 위에 세월의 흔적과 함께 화산 용암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이 천천히 쌓여 마치 예술의 조각품과도 같은 현재의 모습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협곡의 길이는 대략 154km에 달하며, 차린 강 유역을 따라 약 80km에 걸쳐 협곡이 형성되어 있다. 강의 총 길이가 393km인 것을 감안하면 약 4분의 1가량을 차린 캐년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차린 캐년 중앙에 난 길을 따라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
차린 캐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인 성 계곡(Valley of Castles)을 필두로 테미를릭 캐년(Temirlik Canyon), 레드 캐년(Red Canyon), 베스타막 캐년(Bestamak Canyon) 등의 협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주 먼 옛날 옛적, 물푸레나무가 광대한 숲을 이루며 차린 캐년이 자리한 주변 환경을 뒤덮고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숲은 시간 및 환경의 흐름과 맞물려 건조한 기후로의 변화를 이겨내지 못한 채 사라져갔고 사막화된 협곡만이 존재할 뿐이다. 도마뱀과 뱀, 대초원 산토끼, 여우 등이 자신의 놀이터마냥 협곡 곳곳에 흔적을 묻히며 살아간다.
협곡의 가장자리 혹은 중앙을 따라 하이킹을 즐기면서 차린 캐년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느끼는 것이 여행의 키 포인트다. 차린 캐년은 태양이 수평선 뒤로 사라지는 일몰 시 진홍색, 분홍색, 주황색으로 변한다. 붉은 절벽, 복잡한 구조의 암석은 위치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데 보고 또 보아도 마법을 부리듯 신기할 따름이다. 이때 절벽에 부딪혀 흔들리는 듯한 바람 소리가 협곡을 에워싼다. 물과 바람, 자연의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빚어내는 조화로움이 차린 캐년의 장엄한 풍경을 바로 세운다.
사실 차린 캐년 때문에 알마티 여행을 결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협곡의 높은 지점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 오르는 기분을 안겨준다. 그 곁에서 비로소 여행자의 사고도 바로 선다. 캐년의 가슴 설레는 풍경과 함께 이렇게 알마티 여행을 마무리해본다.
[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37호(24.07.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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