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Overseas Trip] 카자흐스탄 알마티 여행 ①
입력 2024-06-24 18:48 
사티 마을 풍경
카자흐스탄 알마티...푸르른 녹색 도시의 위로

중앙아시아 여러 국가를 여행하고 마침내 도착한 알마티(Almaty)는 문명의 도시, 현대적인 옷을 차려 입은 도시로 새롭게 다가왔다. 소련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였던 이곳,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이자 산업의 중심지인 알마티에서 푸르른 문명을 따라 도시를 오롯이 품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국경검문소를 향해 엄지를 들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경계를 내 힘만으로 넘어서겠다고 결심한 것은 또 한번의 특별한 경험과 장소를 탐닉하기 위함이었다. 게다가 대다수의 여행자들이 시도하려 하지 않는 외진 곳에 위치한 국경검문소일수록 그 특별함은 배가 되는 법, 이런 마당에 국경까지 가는 길은 다소 복잡할지 몰라도 소중한 기회를 놓칠 수야 없는 노릇이지 않는가. 그렇게 카자흐스탄 남동부와 키르기스스탄 북서부를 잇는 ‘Kpp 카르키라-아브토도로즈니(Kpp Karkyra-Avtodorozhnyy) 국경검문소에서 알마티(Almaty) 여행을 시작했다.
히치하이킹을 통해 국경까지 이동, 카자흐스탄과 국경검문소로 가는 길
카라콜(Karakol, 키르기스스탄 동부에 위치한 도시)에서 국경검문소까지는 약 100km 남짓,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하는 수없이 히치하이킹을 택했다. 카라콜 도심에서 출발해 A363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티업(Tyup) 마을까지 이동한 다음, 서쪽 방향에서 시작하는 A362도로가 국경 인근까지 뻗어 있다.
좁다란 도로 주변 곳곳에 크고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차량의 출현이 적지 않았다. 더욱이 저만치 나타나는 차량마다 운전자들은 엄지를 치켜든 여행자 앞에 일단 멈춘 뒤 말을 걸어왔다. 여행자의 안위를 살피려는 현지인들의 친절은 여러 번 겪어도 매번 신선함과 감동을 준다.
Kpp 카르키라-아브토도로즈니 국경검문소 주변
국경까지 인적도 차량도 드물어 쉽지 않은 이동을 예상했지만 엄지의 위력은 빠른 결과를 냈다. 운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했다. 서너 명의 운전자를 연이어 만나고 난 뒤 간이휴게소처럼 생긴 작디 작은 규모의 국경검문소가 시야에 들어왔다. 또 한번의 경험은 그렇게 여행자의 것이 되었다. 규모가 작다 보니 국경 통과는 오히려 식은 죽 먹기에 가까웠고, 모든 과정이 눈깜짝할 사이 끝이 났다. 아쉬움을 달래주는 건 금세 바뀐 카자흐스탄 국토 위에 찍힌 발자국의 온기다.
일단 그 다음 내 동선은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 케겐(Kegen)을 목적지로 정했다. 너른 들판 사이에 조성된 2차선도로 위를 한참 동안 걷다 마침내 차량 엔진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다행히도 다시금 엄지가 제 역할을 해냈다.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에 닿다
(좌)알마티로 가는 길에 마주한 차린 캐년 입구 안내판 (우)알마티 도심에 자리한 독특한 컬러의 옛 건축물
육로로 국경을 넘은 목적은 한 가지 더 있었다. 여행동선을 나름 효율적으로 구성하고자 한 의도 때문이었다. 효율적인지 여부는 결과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애초 의도한 목적은 그랬다. 다시 말하면 케겐에서 동쪽으로 약 260km 떨어진 알마티까지 가는 동안 그 사이에 흩어져 있는 여러 국립공원이나 호수 등의 유명 관광지를 하나 둘씩 방문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케겐 도심에 도착한 뒤 그 판단은 희망사항에 따른 것이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지도를 너무 믿은 탓이었다.
케겐에서 차린 캐년(Charyn Canyon) 국립공원까지 거리는 약 50km에 불과하지만, 중요한 건 버스나 셰어택시가 없다는 점. 엄지의 위력을 또 한번 믿기에는 도로 주변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였다. 그렇게 다시 찾은 동선은 케겐 도심에서 셰어택시를 타고 알마티로 간 다음 그곳에서 국립공원이나 호수로 가는 교통편을 수소문하는 것.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서 자칫 이동의 반복이 발생하는 것 같지만 이것이 최선, 최고의 선택지임은 확실하다. 몸소 체득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린 바자 주변 전경
알마티는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카자흐스탄의 수도가 되었지만 1997년 12월 10일 아스타나(Astana)에 그 자리를 내어줬다. 하지만 여전히 알마티는 카자흐스탄의 금융, 과학, 문화, 역사 등을 아우르는 최대 산업 중심지로 일컬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1930년 알마티에 철도가 완공되면서 급속한 성장을 가져왔는데, 1926년 4만6,000명에 불과했던 도시의 인구수는 1939년 22만1,000명으로 대폭 증가한 데다 알마티에 수많은 식품 및 경공업 공장이 건설되면서 이룩한 탄탄한 도시 발전이 현대도시로서의 알마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구 소련 시기 건설된 낡은 건물과 아파트, 현대적인 빌딩이 뒤섞인 도시의 풍경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과거와 현재가 조화로운 모습을 자아내며 알마티의 정체성을 오롯이 나타낸다. 중앙아시아 국가 중 가장 현대적인 도시로 손꼽히는 알마티이기에 쭉 뻗은 높다란 빌딩에 자꾸만 시선이 묻힌다. 불과 한두 시간 전 허허벌판을 달리던 셰어택시의 풍경과는 180도 반전을 이룬 모습이다.
구 소련 시절 조성된 아파트의 모습
푸르른 문명의 도시를 산책하다
‘알마티는 문명의 도시다. 중앙아시아 여행 중 만난 한 여행자가 앞서 알마티를 다녀간 뒤 내게 전한 말이었다. 세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와 레스토랑, 각국의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는 화려한 식당이 도심에 빼곡히 들어차 있는 모습이 ‘문명을 뒷받침하는 배경이다.
한국에서 출발해 곧장 알마티에 닿았다면 모르겠지만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를 두루 여행한 뒤 마침내 도달한 이 도시는 먼저 경험한 여행자의 말마따나 문명의 도시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획일적일 수 있는 첫인상이 도시의 특색을 반감시키지만 도심 곳곳에 숨은 명소가 뜻밖에 볼거리와 재미를 안긴다.
(위로부터)판필로프 근위병 공원 추모 기념비, 1907년에 지어진 젠코브 성당 외부 전경, 만 그루 이상의 나무와 관목이 들어서 있는 도심 공원
그중 첫 번째 장소가 바로 광장과 공원이다. 알마티는 ‘녹색 도시를 표방한다. 도시 각 구역마다 자체 광장과 공원이 자리해 푸르른 빛깔을 뽐내고 있다. 가장 역사적인 도시 공원은 28 판필로프 근위병 공원(28 Panfilov Guardsmen Park)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모스크바에서 독일 탱크의 진격을 온몸으로 방어하다 숨진 알마-아타(Alma-Ata) 보병 부대 소속 28명의 군인을 추모하기 위해 공원이 세워졌다. 공원의 명칭은 당시 군인들이 소속된 316사단 부대를 진두지휘한 이반 판필로프(Ivan Panfilov) 장군의 이름에서 따왔다. 공원에는 1만1,000개 이상의 나무와 관목이 들어서 있어 나무 숲 사이를 산책하는 즐거움이 꽤 크다.
알마티 대표 쇼핑몰인 도스틱 플라자(Dostyk Plaza)
두 번째 장소는 대성당이다. 28 판필로프 근위병 공원 중심에 위치한 젠코브 성당(Zenkov Cathedral)은 알마티를 대표하는 일 순위 랜드마크다. 1907년에 지어진 이곳은 우크라이나-바로크 목조 양식의 러시아 정교회 성당으로 동화에서 볼 법한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 시선을 자극한다. 이 목조 건물은 실제로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고대 건축 기술에 따라 조성된 것이 특징.
종탑이 포함된 5개의 돔과 3개의 복도를 갖춘 성당은 높이 56m로 세계 목재 건축물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목조 교회로 알려져 있다. 성당 내부에는 수십 명의 성인들의 그림이 내벽을 장식하고 있으며, 장인이 만든 금속 장식이 곳곳에 자리해 화려함을 더한다. 1994년까지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며 굳게 문이 닫혀 있었던 성당은 이후 건물 내·외부 복원 작업을 거쳐 대중에 공개되어 현재에 이른다.
장인이 만든 금속 장식이 곳곳에 더해진 젠코브 성당 내부 전경, 젠코브 성당에서 기도하는 현지인들
1970년대 조성된 알마티를 대표하는 그린 바자와, 그린 바자의 명물로 꼽히는 팬케이크
마지막은 시장과 쇼핑몰을 꼽을 수 있다. 도시생활의 트렌드를 파악하기 좋은 대규모의 현대적인 쇼핑몰과 엔터테인먼트 센터가 알마티 중심부에 여럿 자리하며, 이와 함께 역사적인 전통시장인 그린 바자(Green Bazaar)가 위치해 있다. 그린 바자는 1970년대 조성된 알마티를 대표하는 재래시장이다. 2층으로 구성된 시장 내부에는 육류부터 치즈, 소시지, 향신료, 채소, 생선 등 중앙아시아 요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다양한 식재료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쇼핑을 위한 장소라기보다 식재료 박물관 탐험에 가까운 곳. 특히 이른 오전, 아침식사로 판매하는 팬케이크는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맛과 경험을 안겨준다. 이곳 팬케이크는 크레이프처럼 얇은 반죽이 특징으로 입안에 넣으면 부드러운 촉감과 버터 향이 어우러져 몇 장을 먹어도 성에 차지 않을 정도다.
푸른 언덕에 올라 알마티를 가슴에 품다
현지인들 사이에서 주말나들이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 바로 콕 토베(Kok Tobe) 언덕이다. 도심에서 남동쪽으로 약 7km 떨어져 있는, 남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콕 토베 언덕은 카자흐어로 ‘푸른 언덕을 뜻한다. 때문에 과거에는 콕 토베라는 이름보다 ‘블루 힐(Blue Hill)이라 일컫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해발 1,130m 언덕 꼭대기에서 알마티 도심 전역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장소라는 점이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는 이유다.
언덕 꼭대기에는 다채로운 엔터테인먼트가 구성된 공원이 자리한다. 1960년대 알마티 지도자들에 의해 시민들을 위한 휴양지로 조성되기 시작한 이 공원은 1967년 도심과 언덕을 잇는 케이블카 건설이 완료됨과 동시에 개장했다. 이곳의 케이블카는 중앙아시아 국가 가운데 최초로 건설되었으며, 케이블카의 길이는 1,620m, 높이는 약 250m다.

가느다란 줄에 매달린 케이블카가 상승곡선을 그리며 올라갈수록 차창 밖 도심 풍경은 장관을 이루지만 동시에 가슴이 철렁하며 긴장감이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 봤자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짧디 짧은 케이블카 탑승은 풍경과 긴장 모두 떠안으며 즐기는 수밖에 방도가 없다. 내리고 나면 금세 후회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언덕 꼭대기에 도달하지 않아도 이미 케이블카에서 바라다보는 주변 산의 탁 트인 경치는 푸른 언덕의 진가를 실감하게 했다.
도심에서 언덕 꼭대기까지는 차량이나 도보로도 닿을 수 있는 거리지만 하늘을 가로지르듯 오르는 케이블카는 마치 알마티 풍경을 가슴에 오롯이 품은 것처럼 뜨거운 추억을 만들어준다. 그것의 온기는 케이블카에서 내려 공원과 대관람차, 전망대, 놀이시설, 미니 동물원, 알마티 TV타워, 상점 등 콕 토베의 명소를 차근차근 둘러보는 동안 식지 않고 여행자를 감쌌다.
투어버스 타고 다시 초원으로 향하다
알마티에서 출발해 외곽에 위치한 국립공원이나 호수로 가는 버스와 셰어택시가 전무하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첫날 케겐에 도착해 차량을 수소문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 하지만 알마티는 케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를 가진 현대적인 도시가 아닌가. 대체 알마티 사람들은 혹은 알마티에 여행 온 사람들은 어떤 경로로 외곽으로의 이동을 실행한단 말인가. 그렇게 찾은 결말은 여행사의 투어상품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알마티 외곽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소인 차린 캐년을 포함해 카자흐스탄 남동부에 위치한 여러 호수와 국립공원, 마을 홈스테이 등이 투어상품의 골자를 이룬다. 대다수의 여행사가 거의 동일한 항목과 장소, 루트 등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비용이나 이용 가능 일정 여부에 따라 선택이 이뤄진다. 숙소에서 만난 한 여행자의 추천으로 알게 된 여행사를 통해 2박3일 일정의 외곽 투어 상품을 예약했다.
한데 2박3일이라고 해 봤자 1일 차 일정의 첫 시작이 저녁 9시다. 금요일 저녁 퇴근 후 출발해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풀로 즐기는 투어다. 물론 평일에도 투어상품은 이용 가능하지만 투어의 세부내용이나 시간 설정은 주말여행에 더 최적화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저녁 9시 집합, 그로부터 30분 뒤 출발한 투어버스는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신나게 내달렸다. 차창 밖으로 날이 훤히 비쳤다면 허허벌판의 풍경을 감상했겠지만 그마저도 이미 케겐에서 알마티로 향할 때 봤던 풍경이라 아쉬움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밤의 이동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어두컴컴한 차창 밖이 새로운 영감을 선사하는 깊은 밤이었다.
5시간을 꼬박 어둠과 함께 달렸다. 그 끝에 이르러서 새벽 2시 30분경, 사티(Saty) 마을에 버스가 정차했고, 홈스테이 가족들이 버스에서 하차하는 여행자들을 반갑게 맞았다.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35호(24.06.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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