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생생중국] 사막과 초원…아무것도 없어서 오히려 가득 찬 느낌이 드는 곳
입력 2024-06-15 09:00 
후허하오터(呼和浩特)역에 내리니 모든 안내판에 중국어와 몽골어가 병행 표기돼 있다. / 사진 = MBN 촬영
중국은 세계에서 3번째로 국토 면적이 큰 나라(약 960만㎢)이다 보니 온갖 자연환경과 다양한 기후가 한 나라에 모여 있다. 한날한시에 봄/여름/가을/겨울이 동시에 나타날 정도로 말이다. 최근 다녀온 내몽골자치구(內蒙古自治區)도 그런 면에선 신기한 곳이다. 그곳에서 처음 사막과 초원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먼저 사막으로 가는 길목에서 중국의 어머니강으로 불리는 황허(黃河)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점이 있었다. 황허를 가로질러 길이 5천600여m의 황허 대교가 놓여 있는데, 실제 강폭은 100m 정도에 불과해 보였다.

현지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10년에 한 번꼴로 대홍수가 나 다리를 짧게 지어놓으면 오가는 길이 완전히 끊기기 때문에 이렇게 평소 강폭보다 훨씬 길게 지었다. 강 주변은 평소엔 농사를 짓는다.”고 설명한다.

황허 대교를 지나다 보면 황허보다는 논밭이 더 많이 보였다. / 사진 = MBN 촬영

황허를 지나 조금 더 가다 보면 쿠부치사막(庫布齊沙漠)의 샹사완(響沙灣) 지역이 나온다. 드디어 사막에 도달했다. 문명과 가장 가까운 사막이지만, 사막이란 곳이 어떤 곳인지 느끼기엔 충분했다.

사막의 초입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도착한 곳은 사막에 조성된 유원지였다. 조금이라도 더 사막 본연의 모습이 보고 싶던 기자는 유원지의 외곽을 벗어나서 정처 없이 떠돌았다.

사막 한가운데 낙타를 타고 가는 기자를 베이징 교민 한 분이 고맙게도 멋지게 촬영해주셨다. / 사진 = 독자 제공

아무리 유원지로 개발된 곳이라곤 하지만, 사막은 사막일 뿐. 이정표도 없고, 인적도 드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니 모래에 빠지면 아무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다는 좀 과한 걱정도 들긴 했다. 뜨거운 태양에 고개숙이고 걷다 잠시 앞을 바라보면 정말 보이는 건 모래언덕뿐이었다.

그렇게 1시간여를 떠돌다 또다시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바로 사막의 모래언덕 한가운데서 풀 한 포기가 수줍게 솟아있는 것이다. 뿌리를 내리기조차 힘겨워 보이는 모래밭에 어찌 이렇게 풀이 자라날 수 있었을까, 이 풀의 씨앗은 어디에서 왔을까 잠시 생각해본다.

동시에 항상 봄철이면 이곳 내몽골과 신장지역에서부터 시작되는 황사 때문에 고생하는 우리나라를 생각하니 이런 풀들이 많이 자라서 황사를 막아줄 수 있을까 하는 상상도 해봤다.

사막 한복판에 신기하게 홀로 솟아난 풀 한 포기. / 사진 = MBN 촬영

내몽골에서 사실 사막보다 더 유명한 건 드넓은 초원이다. 내몽골자치구는 중국의 행정구역 중 3번째로 넓은 곳이다. 자그마치 118만㎢로, 한반도 전체 면적의 6배에 가까운 곳이다. 그 대부분은 칭기스칸과 그 후예들이 말을 타고 누비던 초원이다.

사막을 벗어나 몇 시간을 다시 달려 도착한 시라무런초원(希拉穆仁草原)은 넓고도 넓었다. 낮은 언덕조차 귀하다 보니 어디에 서 있어도 지평선이 보인다.

정말 끝도 없이 펼쳐진 땅에 풀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국토 면적이 그리 크지 않은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부러운 마음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도대체 끝도 보이지 않는 이곳을 바라보고 있자니 약간은 부럽기도 했다. / 사진 = MBN 촬영

사막은 사람이 살 곳이 못 되지만 초원은 다르다. 그곳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이야기 중 어떤 것은 때때로 전설이 되어 사람과 사람 사이로 흘러 내려오곤 한다.

소군(王昭君)의 이야기가 그렇다. 소군은 한나라 시절 여성으로 서시, 양귀비, 초선과 함께 중국 4대 미녀로 꼽히곤 한다. 한나라 원제 때 궁녀로 황실에 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흉노족 군주의 부인이 되어 초원으로 오게 됐다.

소군이 죽고 난 뒤 그녀는 지금의 후허하오터 외곽에 묻혔다. 그녀 덕분에 60년 동안 한나라와 평화롭게 지낸 걸 감사해하는 흉노족 사람들이 그녀의 묘에 흙을 한 줌 한 줌 모아 쌓인 게 지금의 33m 높이의 소군묘가 됐다고 한다.

왕소군과 그의 남편의 동상 뒤로 보이는 소군묘. 산은커녕 언덕도 없는 초원 한복판에 유독 그녀의 묘가 높이 솟아있는 이유가 있다. / 사진 = MBN 촬영

원래는 소군묘 정상에 올라 후허하오터시를 조망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웬일인지 지난해부터 묘지 출입이 금지됐다고 한다. 그 이유를 현지 해설가가 설명해 준다.

천하의 미인 소군이 묻혀 있는 이 묘지의 흙을 퍼서 물에 달여 마시면 피부가 고와지고 얼굴이 예뻐진다고 해서 오는 사람마다 다들 흙을 퍼가는 바람에 작년부터 묘지 출입을 중단시켰어요. 실제로 묘지 높이도 33m에서 지금은 조금 낮아졌다고 해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설이 되어 내려왔고, 그것이 지금에 이르러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기막힌 전개가 아닐 수 없다.

해 질 무렵의 몽골 초원 모습. 저 멀리 몽골족 특유의 가옥인 게르가 보인다. / 사진 = MBN 촬영

초원에 왔으니 짧게나마 초원의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몽골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나이차도 마시고, 몽골 전통 의상도 입어봤다. 그리고 몽골사람들에겐 목숨과도 같은 말을 타고 초원도 거닐어봤다.

그럼 평상시 몽골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드넓은 초원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내몽골자치구에 사는 몽골사람들에게는 목민호구(牧民戶口)라고 해서 유목을 할 수 있는 면허를 중국 내에서 유일하게 발급해주고 있다고 한다. 2천300만 명의 내몽골자치구 인구 중 10%가 이 목민호구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몽골사람들은 전통적으로 5가지 색상을 귀하게 여긴다. 붉은색은 생명력, 흰색은 초원의 식량인 우유, 청색은 하늘, 녹색은 풀, 노란색은 토지를 각각 상징한다고 해서 이 다섯 가지 색을 바탕으로 모든 색상을 조화시킨다고 한다.

일생을 말과 함께 한 유목민족의 황금 안장과 박차. 아마도 왕족이나 귀족의 것이 아니었을까. / 사진 = MBN 촬영

사실 며칠 여행 삼아 돌아본 걸로 이렇게 사막과 초원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쓴다는 건 어찌 보면 섣부르고 건방진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들을 처음 본 느낌은 뭐랄까, 모래와 풀 말고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런 강렬하고 신기한 인상을 조금이라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성급히 글을 올렸다.

윤석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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