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강세현의 재난백서] 후지산 하늘에서 만난 지뢰, 난기류
입력 2024-05-26 09:00 
난기류와 만난 싱가포르 항공 여객기 내부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주 싱가포르항공의 SQ321편 여객기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승객 211명과 승무원 18명을 태우고 런던을 떠나 싱가포르로 향하던 여객기는 미얀마 상공에서 강한 난기류를 만났습니다. 항공기의 고도는 순식간에 떨어졌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비행기 안은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좌석 벨트를 매지 않고 있던 승객과 승무원이 위로 솟구쳐 천장과 충돌했고 물건이 여기저기로 날아다녔습니다. 정상적인 운항이 어렵다고 판단한 기장은 비행기를 급히 태국 방콕에 비상 착륙을 시켰습니다.

이 사고로 비행기는 크게 파손되지 않았지만,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76세 영국 국적의 남성 승객이 숨졌습니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추정됩니다. 부상자도 속출했습니다. 6명이 두개골과 뇌를 다쳐서 치료를 받았고, 척추를 다친 사람도 22명에 달했습니다.


하늘길의 지뢰, 난기류

난기류(亂氣流)는 대기가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현상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공기의 불안정한 흐름으로 비행기가 이 흐름을 만나면 심하게 흔들리거나 빠르게 급하강하게 됩니다. 제대로 자세를 잡지 못하고 안정된 기류층이 나올 때까지 빠르게 추락할 수도 있는데, 이때 비행기 안에 있는 승객은 말 그대로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게 되죠.

난기류가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합니다. 먼저 상공 고도마다 기류의 강도나 방향이 달라 층의 경계에서 강한 소용돌이가 발생하며 난기류가 일어납니다. 지형의 영향으로 난기류가 생기기도 합니다. 높은 산이 기류의 흐름을 불안하게 만들어 높은 상공에까지 영향을 줘 난기류가 발생합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어느 정도는 난기류를 감지하거나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난기류를 감지하는 건 아직은 불가능합니다. 특히 이번 사고처럼 맑은 하늘에서 난기류가 갑자기 발생하면 감지하기가 더 어렵죠. 또 난기류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감지해도 난기류의 강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날개가 부러져 추락하는 BOAC 항공기 (자료 : Admiral Cloudberg)
후지산의 비극

실제로 강한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가 추락한 사례가 있습니다. 비극은 1966년 3월 5일에 일어났습니다. 영국해외항공(BOAC) 여객기는 도쿄국제공항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승객 탑승과 연료 충전까지 준비는 착착 진행됐고, 잠시 뒤 항공기는 113명의 승객과 승무원 11명을 태우고 홍콩을 향해 이륙했습니다.

문제는 여객기가 공중에 떠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했습니다. 이륙하고 20분이 지났을 때쯤 비행기는 후지산 위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당시 후지산 상공에는 보이지 않지만 강한 난기류가 휘몰아치고 있었습니다. 난기류와 마주친 비행기는 크게 흔들렸고, 버티지 못한 기체가 하나하나씩 파괴되기 시작했습니다. 꼬리 날개가 먼저 찢어졌고, 이 영향으로 비행기가 갑작스럽게 기울었습니다. 자세가 틀어지며 여객기는 구조적 한계에 내몰렸습니다. 날개에 달린 엔진이 떨어져 나갔고 결국 날개까지 부러집니다.

공중 분해된 여객기는 죽음의 나선을 그리며 빠르게 곤두박질쳤습니다. 비행기는 후지산에 추락했고 승객과 승무원 124명이 모두 숨졌습니다. 당시 비행기의 잔해는 추락 지점뿐만 아니라 후지산 여기저기서 발견됐습니다. 비행기가 상공에서 분해가 되며 잔해가 강한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간 겁니다.

비교적 최근에도 난기류로 인해 비행기가 추락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2018년 이란 아세만 항공사의 3704편 항공기는 수도 테헤란을 이륙해 가던 산에 충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승객 59명과 승무원 6명이 전원 사망했습니다. 후지산 사고처럼 여객기가 산 위를 지나다 난기류를 만나 고도를 잃고 추락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비상착륙한 싱가포르 여객기 (로이터, 연합뉴스)
추락 가능성은 낮아

그렇다면 비행기를 탈 때마다 난기류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해야 할까요? 전문가들은 난기류로 추락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설명합니다. 지금 하늘을 나는 여객기의 안정성과 기상 관측 기술은 후지산 사고가 일어난 1966년보다 훨씬 발전했습니다. 비행기는 더 안전하게 만들어지고 있고 항로 역시 최대한 안전한 항로를 파악해 운항합니다. 만약 난기류와 만나서 빠른 속도로 하강한다고 해도 안정적인 기류가 있는 고도까지 내려오면 다시 자세를 잡고 안정적으로 날아갈 수 있습니다.

2018년 이란 사고 역시 난기류뿐만 아니라 항공기를 제대로 정비를 못 한 게 사고 원인으로 꼽힙니다. 이란은 핵무기 개발 이슈 때문에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 항공기 부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사고가 난 여객기는 1993년 제조된 구형 기종으로 부품을 구하지 못해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난기류를 만났을 때 가장 걱정해야 하는 일은 천장이나 주위 물체와 부딪혀 다치는 일입니다. 다치는 일을 막으려면 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답답하더라도 꼭 좌석 벨트를 착용하고 있는 게 안전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만약 난기류를 만나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면 충격을 방지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합니다. 머리를 손으로 감싼 뒤 눈앞에 보이는 의자의 등받이 쪽으로 숙입니다. 만약 베개나 쿠션 같은 게 있다면 이를 이용해 머리를 감싸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 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 ]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