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국에서 태어나 주민등록증 받고도 한국인 아니다?…대법원 "국적 줘야"
입력 2024-04-09 16:00  | 수정 2024-04-09 16:00
대법원 전경. 사진 = 연합뉴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주민등록증까지 있는 다문화가정 자녀에게 '한국 국적이 없다'고 하는 건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습니다.

오늘(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다문화가정 자녀 2명이 법무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적 비보유 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결정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원고들은 지난 1998년과 2000년 사실혼 관계인 한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각각 태어났습니다. 이들의 부모가 원고들이 태어나자마자 출생신고를 해서 주민등록번호도 받았습니다. 행정청은 남매가 17세가 되던 해에 주민등록증까지 발급했습니다.

그러나 법무부는 지난 2019년 이들 남매를 국적비보유자로 판단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 국적이 없다고 통보한 겁니다.


현행 국적법 2조는 부모 중 한명이라도 한국인이면 태어나자마자 한국 국적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태어날 때 한국인 아버지가 혼인신고를 하기 전이어서 법률상 친자관계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국적법 3조에 따라 미성년자일 때 한국인 부모가 인지 신고를 하면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법무부에서 2013년과 2017년 남매의 부모에게 '국적법에 따른 인지(신고)에 의한 국적 취득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안내했지만, 부모가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들 남매는 국적 취득을 하지 않은 채 성인이 됐는데, 성인이 된 뒤에는 별도로 귀화 신청을 해야만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습니다. 훨씬 복잡해진 겁니다.

남매는 이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간 주민등록증 등 한국 국적을 가진 것처럼 국가가 공적인 견해 표명을 해왔고,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믿어 왔기 때문에 성년이 되기 전 국적을 취득할 기회를 놓쳤다고 주장한 겁니다.

남매는 1심에서는 승소, 2심에서는 패소했지만, 대법원에서 이 주장을 인정받았습니다.

대법원은 행정청이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는 등 '공적인 견해 표명'이 있었고, 이런 행위가 없었다면 남매가 진작에 취득 절차를 밟았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미성년자일 때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는 신뢰를 부여하다가 성인이 되자 그에 반하는 처분이 이뤄진 결과, 갓 성인이 된 원고들은 더는 국적법에 따라 간편하게 국적을 취득할 기회를 상실했다"며 "평생 이어온 생활의 기초가 흔들리는 중대한 불이익을 입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부모가 충분한 안내를 받았으면서도 자녀의 국적 취득 절차를 밟지 않은 과실에 대해서는 "당시 미성년자였던 남매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 김한준 기자 / beremoth@hanmail.net ]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