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15살 소년이 100여 명 살렸다...러시아서 '영웅 대접'
입력 2024-03-26 06:22 
사진=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축구팀에 초대된 할릴로프.스파르타크 모스크바 구단 텔레그램/연합뉴스
공연장 외투 보관소서 '알바'하다 반대편 건물로 대피시켜
축구팀 초대, 래퍼는 1,400만원 선물, 무슬림상 수여 계획도
끔찍한 모스크바 테러 현장에서 100명 이상을 구한 중앙아시아 이민자 소년이 러시아에서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습니다.

현지시간 24일 '가제타.루'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학생에 해당하는 15살 이슬람 할릴로프는 22일 모스크바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아르바이트 중 폭음을 듣고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을 반대편에 있는 안전한 건물 대피를 도왔습니다.

할릴로프는 키르기스스탄에서 러시아로 이주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자 2세입니다.

그는 뛰어가며 자신의 휴대전화 카메라로 영상을 찍었는데, "저쪽으로, 저쪽으로, 모두 저쪽으로 가세요!"라고 소리치며 사람들을 내보냈습니다.

이 영상은 부모님에게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찍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테러범들이 점령한 정문을 피할 수 있었던 비상구는 건물 카드로만 열 수 있었는데 그에게 마침 카드가 있었고, "총을 쏘고 있어요. 지나가게 해주세요"라고 외치며 사람들을 밀어내고 비상구 문을 열었습니다.

그는 테러범 중 한 명을 직접 봤다며 인터뷰에서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 한 명은 수염을 기른 채 녹색 작업복을 입고 자동소총을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사람들 뒤로 가서 아무도 남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마지막에 탈출했다"고 했습니다.

할릴로프는 건물 내부 구조와 출입구 위치를 잘 알았을 뿐만 아니라 채용 당시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고객을 어떻게 대피시키는지 사전 교육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어 "충격에 빠져 서 있으면 나와 수백명이 목숨을 잃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가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테러범들의 무차별 총격과 방화로 137명이 사망하고 180명 이상이 다친 이번 테러에서 이 소년의 침착과 용기가 아니었다면 희생자가 훨씬 많았을 수 있었던 셈입니다.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축구팀에 초대된 할릴로프.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구단 텔레그램/연합뉴스

그는 수업이 없을 땐 러시아 프로축구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유소년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 구단은 그를 홈경기장에 초청해 1군 선수들을 만나게 해주고 시즌티켓과 유니폼을 선물했습니다.

러시아 래퍼 모르겐시테른은 감사의 표시로 100만루블(약 1,400만원)을 전달했고, 러시아 무슬림 지도자인 무프티 셰이크 라빌 가누트딘은 29일 그에게 최고 무슬림상을 수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일각에서는 이슬람국가(IS)가 테러의 배후를 자처하고 테러범 중 일부가 타지키스탄 국적으로 알려지면서 러시아 내 무슬림과 중앙아시아 출신에 대한 반감이 커질 수 있는 상황에서 그의 용기가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오고 있습니다.

[오지예 기자/calling@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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