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오컬트 '파묘' 비수기에 곧 천만…"웰메이드의 힘"

오컬트 장르·극장 비수기 2월임에도 관객층 다양
예고편·소품·캐릭터 이름·해석 통해 흥행 탄력입어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가 개봉 약 한 달 만에 '천만 영화' 고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폭넓은 관객층을 확보하기 어려운 오컬트 장르인 데다, 통상 극장가 비수기로 여겨지는 2월에 개봉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라는 평입니다.

영화계에서는 기존 흥행 공식에 맞지 않는 영화라도 재미만 있다면 관객이 몰린다는 사실을 '파묘'가 재차 증명한 셈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오늘(23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파묘'는 개봉 30일째인 어제(22일)까지 누적 관객 수 약 970만명을 기록해 이번 주말 1,000만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지난달 22일 극장에 걸린 이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로 직행한 이후 한 차례도 정상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빠른 속도로 관객을 끌어모았습니다.

'파묘'는 거액을 받고 수상한 묘를 옮기게 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일을 그린 작품입니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 등으로 이른바 K-오컬트 장르를 개척한 장 감독의 신작인 만큼 상반기 기대작으로 꼽혔으나, 이 정도의 대흥행을 예상한 시각은 많지 않았습니다.

중·장년층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장르이고 개봉 시기 역시 일반적으로 관객 수가 적어지는 설 연휴 직후였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연말부터 한국 영화 히트작이 없었다는 점도 '파묘'의 흥행 전망을 어둡게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손익분기점인 330만명을 넘기기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영화 '파묘' 속 한 장면 / 사진=쇼박스 제공, 연합뉴스

'파묘'가 이 같은 예상을 깨고 흥행할 수 있었던 요인은 대중적인 스토리와 소재가 가장 먼저 거론됩니다.

장르만 놓고 보면 젊은 세대에 관객이 집중될 수 있는 오컬트지만, 이야기 자체는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매력이 있었다는 얘깁니다.

CGV에 따르면 '파묘'의 세대별 관객 비중은 20대가 25％, 30대 31％, 40대 22％, 50대 이상 17％ 등으로 고르게 나타났습니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파묘'는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관심 있어 할 만한 무속 신앙을 소재로 내세워 연령이나 성별과 상관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게 만든 영화"라며 "최민식, 유해진, 김고은, 이도현 등 배우진이 여러 세대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구성된 점도 흥행에 기여한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파묘'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회자하면서 흥행 기세에 탄력이 붙기도 했습니다.

개봉 전 예고편에 나온 김고은의 대살굿 장면이 화제가 됐고, 개봉 후에는 영화 속 '항일 코드'나 일본 귀신과 관련한 각종 게시물이 쏟아졌습니다. 소품과 캐릭터 이름에 숨겨진 항일 메시지를 해석하는 콘텐츠도 인기를 얻었습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요즘엔 영화가 흥행하려면 예비 관객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게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윤 평론가는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이 '파묘'를 좌파 영화라 주장하고, 관객들 사이에서는 일본 귀신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등 한 달간 여러 말들이 많이 나왔다"며 "이에 따라 '대체 뭐 어떻길래 그러나, 한 번 보러 가야겠다'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며 흥행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11월 개봉해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에 이어 2월 개봉작인 '파묘'까지 천만 고지를 밟게 되면서 극장가 성수기·비수기의 경계가 흐려졌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립니다.

'웰메이드' 작품이라면 여름 방학 기간이나 설·추석 연휴 등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흥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 사진=연합뉴스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서울의 봄'과 '파묘'는 관객의 기대감을 충족하는 영화는 비수기에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심어준 사례"라며 "성수기라고 해서 무작정 들어가 출혈경쟁을 하는 걸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 셈"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배급사 관계자 역시 "설 연휴에 개봉한 한국 영화 3편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냈지만, 그 이후에 나온 '파묘'는 1,000만 관객을 찍었다"며 "지금은 개봉 시기가 아니라 작품을 얼마나 잘 만들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해진 때"라고 말했습니다.

'파묘' 흥행에 따라 다음 달 24일 개봉하는 마동석 주연의 인기 시리즈 '범죄도시' 4편이 얼마나 많은 관객을 모을지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범죄도시' 2·3편은 여름 시장이 아닌 5월에 개봉해 연달아 천만 영화가 된 비성수기 흥행 신화의 원조 격입니다. 이번 해 나오는 4편은 이보다도 한 달을 앞당겨 개봉합니다.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보통 4월은 한국 영화보다는 할리우드 대작이 나오는 시기인데, '범죄도시 4'가 이 틈을 노려 개봉을 확정했다"며 "이 시리즈가 인지도와 인기가 워낙 높기 때문에 관객의 만족도만 높다면 1∼3편처럼 흥행하리라 본다"고 말했습니다.

[강혜원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ssugykk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