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GPT>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명작 · 주목할 만한 신간을 소개합니다. 스포일러에 예민한 분은 독서 후 읽기를 권장드립니다.
작년 여름, 여러 누리꾼의 마음을 울렸던 사진 한 장입니다. 폭우 속 수레를 끄는 노인에게 다가가 자신의 우산을 내밀고 속도를 맞춰 걷는 한 여성. 기울어진 우산 탓에 반대쪽 어깨와 장바구니는 꼼짝없이 젖었지만 노인은 그 호의 덕에 거친 비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라도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하지는 않는 일. 빗속에서 처음 마주친 타인에게 선뜻 자신의 몫을 내어준 이 여성은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도 "특별한 일도, 별다른 일도 아니다"라며 신분 밝히기를 극구 거절했다고 합니다.
나만, 내 주위만 무사하면 그만 같다가도 잰걸음을 늦추고 망설이게 하는 타인의 표정들이 있습니다. 기꺼이 필요 이상의 감정을 소비하게 되는 순간들. 우산 없이 비를 맞는 노인의 굽은 등 같은 것,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이런 풍경을 마주한 인간의 평범한 고뇌와 평범하지 않은 선택을 그려냅니다. 가던 길 잠시 멈추고 어디로 걸어갈 수 있는지, 걸어가야 하는지를 외면하지 않으려는 이의 용기는 역설적으로 하나도 사소하지 않습니다. 잠시 비 좀 더 맞는 것보다 훨씬 더 중대하고, 자칫하면 모든 걸 잃을지도 모를 결단으로 향하는 주인공의 내면이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역대 부커상 후보 중 가장 짧은 소설'로 꼽힌 이 작품은 저자의 절제와 암시에 기반한 간결한 문체가 특징입니다. 전작 이후 11년 만에 내놓은 이 신작 역시 110여 쪽 남짓의 적은 분량이지만, 책장을 덮을 때 다가오는 울림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작년 11월 국내에 첫 출간된 후 4달째 온라인 서점 소설 분야 10위권 내를 달리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고, 킬리언 머피 주연으로 영화화돼 올해 베를린 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크리스마스 무렵의 아일랜드 소도시. 주인공 빌 펄롱은 아내 아일린과 다섯 딸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임신한 펄롱의 엄마를 집에 들여 보살펴준 '미시스 윌슨' 덕에 그 집에서 부족함 없이 따뜻한 유년기를 보냈고 무사히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습니다.
야적장에서 일하는 펄롱은 매일 새벽부터 석탄, 목재 등을 필요한 집들에 가져다주고 퇴근 후엔 쓰러지듯 잠을 청하는 일상을 반복합니다. 불경기의 혹독한 시기지만, 어찌어찌 하루하루 먹고 살 만은 합니다. 그럴수록 그는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을 잘 키워 마을의 좋은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되뇝니다.
쳇바퀴같던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석탄 배달차 방문한 한 수녀원에서 수상한 광경을 목격하면서부터입니다. 그는 우연히 볼품없는 몰골의 아이들이 죽어라 바닥을 닦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중 하나는 제발 자신을 여기서 꺼내달라고 애원합니다. 또 한 번 방문한 수녀원에서 석탄광에 갇혀 있던 다른 소녀는 펄롱에게 '자신이 낳은 아이가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 줄 수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녀들의 몸에 밴 불행의 냄새에 펄롱은 마음이 무겁습니다. 아내에게 자신이 목격한 광경을 털어놓아도 보지만 반응은 차갑습니다. 아내의 말은 분명 틀린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하지만 만약 우리 애가 그중 하나라면?” 내 말이 바로 그거야. 걔들은 우리 애가 아니라고.”
자신과 어머니의 삶을 구원해 주었던 미시즈 윌슨의 이야기를 해봐도 아내의 입장은 강경합니다. 설상가상으로 펄롱은 이웃들이 이 사실을 결코 모르지 않는 '한통속'이며, 딸들을 보내고 싶어 했던 명문 학교를 포함해 '이 마을에 저 수녀원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들을 척지는 순간 딸들의 미래도 순탄치 않아질지 모릅니다. 펄롱은 그런 생각과 함께 수녀원 소녀의 부탁은 외면한 채 가족들과 크리스마스 미사에 가 이웃의 행복을 비는 자신이 위선적이라고 느낍니다.
복잡한 마음으로 유년 시절을 보냈던 집을 찾아간 펄롱은 어릴 적부터 함께 지냈던 농장 일꾼 네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빈주먹'으로 태어났던 자신이 그곳에서 대가 없이 누렸던 사랑을 돌아봅니다. 그도, 그의 어머니도 미시즈 윌슨이 없었더라면 바로 그 수녀원의 석탄광에 갇혀 있었을지 모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빌 펄롱은 다시 수녀원으로 향하고 자신의 아이를 찾아달라던 맨발의 여자아이를 구해 집으로 데려갑니다.
결말은 소설로 보기에 아름답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마지막 장을 넘긴 우리에게 키건은 여러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펄롱이라면? 안온한 현실을 박차고 나와 내 가족에게 담보된 평화를 굳이 나눌 수 있는가? 당신이 펄롱의 딸들이라면? 그 용기는 모두에게 선인가? 그럼에도, 그럴 수 있는가? 그래야만 하는가?
펄롱이 내린 아름답고 순진한 결론에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면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내 어깨에 기댄 여자는 편안한 얼굴로 잠을 자고 있었다. 청명한 오후였다.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좋았다. 나는 내게 어깨를 빌려준 이름 모를 여자들을 떠올렸다. 그녀들에게도 어깨를 빌려준 여자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생각해 봅니다. 우리집과는 차원이 다른 경제적 여유가 '미시즈 윌슨' 의 선행의 원동력이었을 것이라고만 넘겨짚던 아내 아일린의 단언과는 달리, 그녀를 만든 것도 삶의 어느 순간 마주쳤던 또 다른 미시즈 윌슨, 그리고 빌 펄롱이었을 것이라고.
출판사는 '수월한 침묵과 자멸적 용기의 갈림길'이라고 펄롱의 고뇌를 표현했습니다. 침묵이 수월하게 느껴지는 건 그를 지키고 있는 다수의 암묵적 연대 덕일 것입니다. 하지만 펄롱처럼 자멸을 무릅쓴 용기로 기꺼이 주위를 돌보는 사람이 늘다 보면 그 용기는 점차 수월한 일이 되고, 타인의 불행에 눈감는 침묵이 실은 더 자멸적이라는 인식이 공유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순진하게 생각해 봅니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되뇌며 수녀원으로 향하는 주인공을 통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행운이 되어주려는 세상을 상상해 보게 됩니다.
소설은 실제의 인물을 기반으로 하지는 않은 허구지만, 이야기 속 수녀원은 실제 아일랜드에서 미혼모 보호 등을 명목으로 여성들을 유린해 온 '막달레나 세탁소'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1922년부터 가톨릭 교회와 정부가 함께 운영하던 이 시설은 1996년이 되어서야 완전히 그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그 수녀원에서 희생당한 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심가현 기자 gohyun@mbn.co.kr]
◇ 프롤로그
작년 여름, 여러 누리꾼의 마음을 울렸던 사진 한 장입니다. 폭우 속 수레를 끄는 노인에게 다가가 자신의 우산을 내밀고 속도를 맞춰 걷는 한 여성. 기울어진 우산 탓에 반대쪽 어깨와 장바구니는 꼼짝없이 젖었지만 노인은 그 호의 덕에 거친 비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라도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하지는 않는 일. 빗속에서 처음 마주친 타인에게 선뜻 자신의 몫을 내어준 이 여성은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도 "특별한 일도, 별다른 일도 아니다"라며 신분 밝히기를 극구 거절했다고 합니다.
나만, 내 주위만 무사하면 그만 같다가도 잰걸음을 늦추고 망설이게 하는 타인의 표정들이 있습니다. 기꺼이 필요 이상의 감정을 소비하게 되는 순간들. 우산 없이 비를 맞는 노인의 굽은 등 같은 것,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이런 풍경을 마주한 인간의 평범한 고뇌와 평범하지 않은 선택을 그려냅니다. 가던 길 잠시 멈추고 어디로 걸어갈 수 있는지, 걸어가야 하는지를 외면하지 않으려는 이의 용기는 역설적으로 하나도 사소하지 않습니다. 잠시 비 좀 더 맞는 것보다 훨씬 더 중대하고, 자칫하면 모든 걸 잃을지도 모를 결단으로 향하는 주인공의 내면이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역대 부커상 후보 중 가장 짧은 소설'로 꼽힌 이 작품은 저자의 절제와 암시에 기반한 간결한 문체가 특징입니다. 전작 이후 11년 만에 내놓은 이 신작 역시 110여 쪽 남짓의 적은 분량이지만, 책장을 덮을 때 다가오는 울림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작년 11월 국내에 첫 출간된 후 4달째 온라인 서점 소설 분야 10위권 내를 달리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고, 킬리언 머피 주연으로 영화화돼 올해 베를린 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나"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스틸컷
이야기의 배경은 크리스마스 무렵의 아일랜드 소도시. 주인공 빌 펄롱은 아내 아일린과 다섯 딸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임신한 펄롱의 엄마를 집에 들여 보살펴준 '미시스 윌슨' 덕에 그 집에서 부족함 없이 따뜻한 유년기를 보냈고 무사히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습니다.
야적장에서 일하는 펄롱은 매일 새벽부터 석탄, 목재 등을 필요한 집들에 가져다주고 퇴근 후엔 쓰러지듯 잠을 청하는 일상을 반복합니다. 불경기의 혹독한 시기지만, 어찌어찌 하루하루 먹고 살 만은 합니다. 그럴수록 그는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을 잘 키워 마을의 좋은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되뇝니다.
쳇바퀴같던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석탄 배달차 방문한 한 수녀원에서 수상한 광경을 목격하면서부터입니다. 그는 우연히 볼품없는 몰골의 아이들이 죽어라 바닥을 닦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중 하나는 제발 자신을 여기서 꺼내달라고 애원합니다. 또 한 번 방문한 수녀원에서 석탄광에 갇혀 있던 다른 소녀는 펄롱에게 '자신이 낳은 아이가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 줄 수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녀들의 몸에 밴 불행의 냄새에 펄롱은 마음이 무겁습니다. 아내에게 자신이 목격한 광경을 털어놓아도 보지만 반응은 차갑습니다. 아내의 말은 분명 틀린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하지만 만약 우리 애가 그중 하나라면?” 내 말이 바로 그거야. 걔들은 우리 애가 아니라고.”
자신과 어머니의 삶을 구원해 주었던 미시즈 윌슨의 이야기를 해봐도 아내의 입장은 강경합니다. 설상가상으로 펄롱은 이웃들이 이 사실을 결코 모르지 않는 '한통속'이며, 딸들을 보내고 싶어 했던 명문 학교를 포함해 '이 마을에 저 수녀원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들을 척지는 순간 딸들의 미래도 순탄치 않아질지 모릅니다. 펄롱은 그런 생각과 함께 수녀원 소녀의 부탁은 외면한 채 가족들과 크리스마스 미사에 가 이웃의 행복을 비는 자신이 위선적이라고 느낍니다.
복잡한 마음으로 유년 시절을 보냈던 집을 찾아간 펄롱은 어릴 적부터 함께 지냈던 농장 일꾼 네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빈주먹'으로 태어났던 자신이 그곳에서 대가 없이 누렸던 사랑을 돌아봅니다. 그도, 그의 어머니도 미시즈 윌슨이 없었더라면 바로 그 수녀원의 석탄광에 갇혀 있었을지 모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빌 펄롱은 다시 수녀원으로 향하고 자신의 아이를 찾아달라던 맨발의 여자아이를 구해 집으로 데려갑니다.
결말은 소설로 보기에 아름답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마지막 장을 넘긴 우리에게 키건은 여러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펄롱이라면? 안온한 현실을 박차고 나와 내 가족에게 담보된 평화를 굳이 나눌 수 있는가? 당신이 펄롱의 딸들이라면? 그 용기는 모두에게 선인가? 그럼에도, 그럴 수 있는가? 그래야만 하는가?
◇ 이처럼 위대한 것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ㅡ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펄롱이 내린 아름답고 순진한 결론에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면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내 어깨에 기댄 여자는 편안한 얼굴로 잠을 자고 있었다. 청명한 오후였다.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좋았다. 나는 내게 어깨를 빌려준 이름 모를 여자들을 떠올렸다. 그녀들에게도 어깨를 빌려준 여자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생각해 봅니다. 우리집과는 차원이 다른 경제적 여유가 '미시즈 윌슨' 의 선행의 원동력이었을 것이라고만 넘겨짚던 아내 아일린의 단언과는 달리, 그녀를 만든 것도 삶의 어느 순간 마주쳤던 또 다른 미시즈 윌슨, 그리고 빌 펄롱이었을 것이라고.
출판사는 '수월한 침묵과 자멸적 용기의 갈림길'이라고 펄롱의 고뇌를 표현했습니다. 침묵이 수월하게 느껴지는 건 그를 지키고 있는 다수의 암묵적 연대 덕일 것입니다. 하지만 펄롱처럼 자멸을 무릅쓴 용기로 기꺼이 주위를 돌보는 사람이 늘다 보면 그 용기는 점차 수월한 일이 되고, 타인의 불행에 눈감는 침묵이 실은 더 자멸적이라는 인식이 공유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순진하게 생각해 봅니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되뇌며 수녀원으로 향하는 주인공을 통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행운이 되어주려는 세상을 상상해 보게 됩니다.
소설은 실제의 인물을 기반으로 하지는 않은 허구지만, 이야기 속 수녀원은 실제 아일랜드에서 미혼모 보호 등을 명목으로 여성들을 유린해 온 '막달레나 세탁소'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1922년부터 가톨릭 교회와 정부가 함께 운영하던 이 시설은 1996년이 되어서야 완전히 그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그 수녀원에서 희생당한 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심가현 기자 gohyun@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