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Travel] 동두천의 오랜 풍경 속을 걷다
입력 2024-03-17 17:46 
레트로 여행지로 뜨고 있는 동두천의 그라피티 작품들
시공간을 거슬러 한나절 여행
캠프 보산 그라피티 거리 SNS서 인기
동광극장으로 레트로 여행 떠나기
니지모리 스튜디오로 떠나는 료칸 여행

한때 동두천은 ‘강아지도 달러를 물고 다닌다는 곳이었다. 비록 전쟁이 남겨놓은 유산이었지만, 다시 일으켜 세우고 살아내야만 했던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일궈낸 빛나는 성과이기도 했다. 한편으론 ‘동두천 하면 곧바로 ‘기지촌과 등치시키는 선입견과 편견도 있었다.
동두천은 미군 주둔지로서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낸 강인한 땅인 동시에 척박한 환경을 일군 주민들의 헌신이 면면히 흐르는 곳으로,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이 공존하는 평화 지대이기도 하다. 이제는 ‘레트로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동두천을 가본다.”
동두천 캠프 보산
‘레트로의 이름으로 새로워지는 ‘캠프 보산
동두천의 중심에는 보산역이 있다. 한때 2만 명 이상 주둔했던 미군이 현재 4,000여 명 정도로 줄어들며, 현재의 보산역은 썰렁해졌다. 보산역을 나서면 ‘Culture & Art Market Place라고 명명한 ‘캠프 보산이 나타난다. 원래 외국인들의 발길이 잦았고 근래 이국적 느낌의 거리와 상가를 구경하러 오는 여행자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인근 상인들은 2007년 보산역 신설과 전철 개통으로 오히려 매출엔 타격을 입었다고 지적한다.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동두천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이 이태원이나 용산, 홍대 같은 곳으로 빠져나가면서 상권이 무너졌다는 것.
각종 그라피티가 눈에 띄는 캠프 보산
여행자에게는 그러나 캠프 보산이 특별한 곳이다. 보산역 1번출구로 나오면 캠프 보산 외국인관광특구로 이어지는데 건물과 벽, 교각 등에 그려진 그라피티가 이국적 분위기다. 눈에 띄는 건 철로를 떠받치는 거대한 기둥에 색색으로 새겨진 이방인의 얼굴들. ‘그라피티 거리라 부르는 이곳 작품들은 2015년부터 4년 동안 경기도미술관과 동두천시가 공동진행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결과물들이다.
이탈리아, 러시아, 태국, 덴마크 등 여러 나라의 작가들이 참여했는데 육대주 사람의 얼굴을 그린 프랑스 작가 호파레의 작품과 심찬양 작가의 ‘Royal dog은 특히 여행자들의 인증샷 배경으로 인기가 있다. 또 낡은 상가를 산뜻한 파스텔 컬러와 단순한 패턴으로 장식한 스페인 작가 안토니오 마레스트의 작품도 여행자들이 특히 좋아한다.
캠프 보산 교각 모습
외국인관광특구 골목골목은 온갖 종류의 상점들이 개성을 드러내고, 상점 사이사이에 독특한 외관의 클럽들도 있다. 출입문에 붙어 있는 ‘외국인 전용이란 문구가 이곳이 미군 부대 앞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골목에는 도예 갤러리를 비롯한 다양한 공방이 여럿 있다.
특이한 작품 덕에 이곳을 찾는 디자인 전문가나 미술 애호가들도 많다. 마치 박물관 거리를 걷는 듯한 캠프 보산의 골목 풍경은 낮과 밤의 풍경 차이가 극과 극이다. 다양한 문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아트 빌리지는 330여 개의 상가가 밀집해 있어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캠프 보산
Info 캠프 보산 위치 (커뮤니티센터)경기도 동두천시 중앙로361번길 19
동두천의 시그니처가 된 세계의 맛
그라피티 거리 옆 ‘월드푸드 스트리트에서는 한국과 미국을 비롯해 벨기에, 멕시코, 페루, 미얀마 등 9개국의 특별 메뉴를 즐길 수 있다. 3월부터 11월까지, 매일 저녁 6시부터 밤 11시까지 운영한다. 전국적으로 소문 난 맛집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 돋보이는 집이 오륙하우스다. ‘동두천에 가면 첫 번째로 가봐야지 하며 몇 년을 손꼽았던 곳. 마침내 그곳을 찾았다. 보산역에서 동두천역 방향으로 500m 정도만 가면 한미우호 광장 주차장이 있고 그 길 끝에 오륙하우스가 있다.
‘오륙하우스는 흔히 말하는 ‘경양식집이다. 1969년에 개업해 55년째, 대를 물려 운영하는 노포다. 요즘엔 워낙 유명해져서 식당 이름인 ‘오륙하우스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55년째 오륙하우스를 운영 중인 경양식집 ‘오륙하우스. 오 씨 성, 여섯 가족이 운영하는 돈가스집니다.
식당 주인인 오충호 씨의 성 오(吳)에, 그의 여섯 가족을 뜻하는 ‘육을 붙인 이름이 란다. 동두천 미군부대 셰프 아버지와 유명 호텔의 촉망받는 요리사였던 아들, 그리고 가족들이 대를 이어가는 식당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그니처 메뉴는 역시 돈가스. 이 밖에도 과거 경양식 집에서 유행하던 티본스테이크와 함박스테이크, 생선가스, 스파게티와 버거 등 온갖 메뉴들이 다 있다. 심지어 ‘살아 있는 랍스터 요리라는 메뉴도 있다. 돈가스, 생선가스, 함박스테이크 등 여러 가지가 조금씩 나오는 ‘오륙하우스 정식을 주문한다.
동두천의 야간 명소 월드푸드 스트리트
옛날식 스프와 빵이 먼저 나오고 멋지게 플레이팅된 정식이 뒤따른다. 오랜 옛 추억의 맛을 떠올리게 하는 경양식 집이지만, 오로지 그 맛 하나 때문에 동두천과 아무 상관 없는 젊은 청춘들이 일부러 찾아온다는 집이다.
Info
월드푸드 스트리트 위치 경기도 동두천시 평화로 2539(보산역 1번출구) 운영 시간 (3~11월)18:00~23:00
오륙하우스 위치 경기도 동두천시 상패로 210-9 운영 시간 11:30~21:00(수요일 휴무)
한국 대중예술의 최초 그리고 최후, 동두천
미군부대가 주둔한 도시가 그렇듯 동두천 역시 대중음악의 메카였다. 특히 동두천은 한국 록 음악의 발상지이자 한국 팝 태동지란 자부심을 갖고 있다. 신중현의 애드포와 키보이스 등 초창기 록 밴드들의 활동 무대가 동두천이었다는 것과 가수 조용필과 현미 등이 활동했으며 나미, 유현상, 인순이 등을 배출한 도시라는 이유다.
그런 까닭으로 동두천의 음악사랑은 유별나다. 1999년 처음 개최한 ‘동두천락페스티벌은 국내 최장기 록 음악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동두천락페스티벌은 신중현의 애드포가 국내에 처음 록 음악을 알린 ‘한국 록의 발상지라는 역사적 자산을 기반으로 만든 음악 축제로 매년 여름 소요산과 캠프 보산 일대에서 열린다. 동두천락페스티벌이 록 마니아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는 건 공연 전체가 록 음악만으로 이루어진 데다가, 무료 공연이라는 점.
음악의 메카 동두천의 두드림문화센터
동두천의 음악 역사를 더듬어볼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낡은 클럽 건물에 현대적 디자인을 입힌 두드림뮤직센터로 가본다. 건물의 외관은 폴리카보네이트 소재에 조명을 구축, 뮤직센터 공연장의 음악에 맞춰 움직이게 했다. 건물 1층에는 공연장이, 2층은 한국 밴드음악의 발자취 영상과 앨범 재킷 이미지, 과거 보산동 클럽에서 활동했던 음악가들의 인터뷰 영상 등을 볼 수 있는 홍보관으로 꾸몄다. 3층에는 녹음실과 연습실도 있다. 공간 내부에서는 LP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보산역 남쪽 시가지로 가보면 동두천 문화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는 동광극장이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다는 단관극장이다. 드라마 (2015)을 이곳에서 촬영했으며, 유튜브 채널 ‘와썹맨에 소개되며 화제를 모았다. 당시 상영한 영화가 였는데 이 때문에 영화 속 와칸다 왕국을 따 한동안 ‘와칸다극장으로 불렸다.
(좌로부터 시계방향) 레트로풍의 동광극장과 두드림뮤직센터
1959년에 문을 열어 아직까지 왕성하게 영화를 상영하는 동광극장은 살아있는 극장 박물관이다. 극장 간판은 낡고 오래돼 군데군데 칠이 벗겨졌고, 상영시간표는 손글씨로 적어놓았다. 극장 안으로 들어서면 옛날 다방에서 흔히 봤던 어항이 여러 개 놓여 있다.
중앙에 놓인 소파에는 관람객인지 마실 온 손님인지 모를 어르신들이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낡고 커다란 영사기다. 영화관이 디지털 장비로 교체되면서 수십 년간 필름을 돌렸던 영사기를 버리지 않고 로비에 전시하고 있다.
동광극장의 역사를 말해주는 영사기(좌)와 티켓 오피스
극장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과 딴판이다. 오랜 세월의 자취가 잔뜩 묻어 있지만, 요즘 관객들의 취향에 맞추려 노력한 흔적도 역력하다. (퀄리티는 차이가 있지만) 요즘 멀티플렉스 특별관에나 있는 리클라이너도 있고 일부 좌석에는 테이블과 보조 받침대까지 갖췄다.
하나둘 모은 듯한 좌석은 종류가 다양해 오히려 재미있다. 앞뒤 간격도 넉넉해 생각하기에 따라 관람 환경은 멀티플렉스가 부럽지 않다. 누구나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인 자유석에다 9,000원의 관람료로 최신 개봉작까지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시네마 천국이다.
Info
두드림뮤직센터 위치 경기도 동두천시 상패로216번길 42 운영 시간 09:00~18:00(토·일요일 휴관)
동광극장 위치 경기도 동두천시 동광로 33
<구미호뎐> <펜트하우스> 촬영지...니지모리스튜디오
동두천에서 즐기는 일본 여행
동두천의 동남쪽, 칠봉산 자락에는 지금 가장 핫한 여행지인 ‘니지모리스튜디오가 있다. 일본의 에도시대를 고스란히 재현해놓은 마을로 최근 젊은 여행자들의 SNS를 통해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곳이다. 한국말로 옮기자면 ‘무지개 숲 정도로 표현되는 니지모리스튜디오는 오픈 세트장인 동시에 테마파크다.
당초 촬영용 대여 공간으로 기획된 니지모리스튜디오의 아이디어 제공자는 사극 연출의 대가 김재형 감독. 〈용의 눈물〉, 〈여인천하〉 등을 만들었던 그가 원활하면서도 지속적인 촬영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니지모리스튜디오가 완공된 후 TV드라마 〈구미호뎐〉과 〈펜트하우스〉, 넷플릭스 드라마 〈범인은 바로 너〉 등이 촬영됐고, 특히 이동욱과 조보아가 출연한 드라마 〈구미호뎐〉의 촬영 장소가 일본이 아니라 이곳이었다는 게 알려지면서 ‘한국 속 일본 여행지로 떠올랐다.
일본의 마을 하나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한 니지모리스튜디오. 붉은색 도리이(신사에 세우는 문)를 지나 입구로 들어가면 잡화점과 기념품 숍 등 상점들이 양 옆으로 길게 이어지고 그 앞으로 작은 호수가 펼쳐진다. 칠봉산 계곡물로 조성된 호수인데, 언덕 위로는 여러 채 료칸이 자리 잡고 있다. 그밖에 식당과 카페, 다도실, 책방, 음악감상실 등도 있다.
호수를 중심으로 계단을 따라 둥글게 한 바퀴를 도는 동선이 기본 코스인데,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일본 전통의상을 입고 손님을 맞이한다. 기모노를 빌려 입은 채 게다(나막신)를 신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걷는 관광객들도 보인다. 기모노를 비롯한 일본 전통 의상은 1층에 있는 모리의상실에서 빌려 입을 수 있는데 기모노와 머리 장식을 포함한 기본 의상 세트 대여 비용은 3만 원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잠깐 들렀다 가는 관람객들이지만 일본식 온천 숙박시설인 료칸을 즐기려는 이들도 많다. 하루 숙박비가 최소 50만 원에 달하지만 주말에는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인기다. 객실 모두가 다다미와 히노키 욕조로 꾸며져 있어 일본 료칸 여행의 느낌을 만끽할 수 있다.
니지모리스튜디오에서는 엔카 공연도 펼쳐진다. 매주 금요일과 토·일요일 하루 두 차례씩 펼쳐지는 공연은 구성진 엔카를 한국 가수가 불러준다.
Info 니지모리스튜디오 위치 경기도 동두천시 천보산로 567-12
운영 시간 (10~5월)11:00~21:00(연중무휴)
[글과 사진 이상호(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2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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