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병원들 '축소 운영'…'병동 통폐합', 응급실·직원 줄인다
입력 2024-03-06 15:08  | 수정 2024-03-06 16:03
어제(5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학생회관에 버려져 있는 가운과 의사국가시험 서적 / 사진=연합뉴스
진료·수술·입원환자 급감에 '병동 통폐합' 나서
응급실은 '파행' 수준 축소…진료대상 대폭 줄이고, '요일제 운영'까지
간호사 등 직원들엔 "무급휴가 떠나라"…'강제 무급휴가' 피해도 잇달아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보름을 넘기면서 전국 주요 병원들이 본격적인 축소 운영에 들어갔습니다.

전공의들의 대규모 이탈로 진료와 수술 건수 등이 크게 줄면서 입원환자가 급감한 데 따른 조치입니다. 운영 병상 수를 대폭 줄인 것은 물론 '병동 통폐합'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각 병원 응급실은 진료 대상을 대폭 제한한 데 이어, 응급환자 접수가 불가능한 요일을 공지하는 등 '파행' 수준으로 운영이 축소되고 있다.

매출과 수익 급감에 직면한 병원들은 간호사 등 직원들로부터 '무급 휴가' 신청을 받고 있는 곳들도 있습니다.

어제(5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응급실에 주차되어 있는 구급차들 / 사진=연합뉴스

오늘(6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공의 집단 이탈로 진료와 수술, 입원환자 등이 모두 급감한 주요 병원들이 병상수 축소에 이어 병동 통폐합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은 의료진 부족으로 정신과 폐쇄병동 운영을 잠정 중단하고, 정신과 응급환자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순천향대 부천병원도 오는 8일부터 정형외과 병동 2곳을 통합할 예정입니다.

전남대병원은 이날부터 입원환자가 급감한 2개 병동을 폐쇄하고, 해당 병동 의료진을 응급·중환자실과 필수의료과 등에 재배치했습니다. 부산대병원은 환자 수가 급감하면서 1천172병상의 가동률이 50%까지 떨어지자 유사 진료과끼리 병동을 통합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부산대병원 관계자는 "2개 진료과를 한 병동에서 운영하는 방식으로 현재 6개 병동이 비어 있다"고 전했습니다. 충북대병원도 간호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위해 환자 수가 적은 입원병동 2곳을 폐쇄하고, 환자들을 다른 병동으로 옮겼습니다. 제주대병원은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인해 최근 간호·간병서비스통합병동을 2개에서 1개로 통폐합했습니다.

서울의 상급종합병원들인 '빅5' 병원들도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병동 통폐합은 불가피한 수순으로 보고 있습니다. 빅5 병원 관계자는 "병동 통폐합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는 건 사실"이라며 "환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다 보니 이들의 관리를 위해서라도 불가피하게 해야 하는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환자 수가 줄어들다 보니 효율적인 진료와 관리를 위해 병동 축소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서울대병원은 이미 암 단기병동 등 일부 병동을 축소 운영하고 있습니다. 암 단기병동은 암환자들이 항암치료 등을 위해 단기 입원하는 병동을 말합니다.

어제(5일) 서울의 한 병원 전공의 전용공간 앞 / 사진=연합뉴스

전공의들의 이탈로 응급실은 중증환자 위주로 재편됐습니다.

최근에는 중증 응급환자마저도 인력 부족으로 인해 전부 수용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응급실 운영이 축소되고 있습니다. 응급실이 '유명무실'해진 병원들도 속출하는 실정입니다.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은 가장 위중한 응급환자에 속하는 심근경색, 뇌출혈 환자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응급 투석 환자도 인력 부족으로 인해 일과시간인 오전 8시∼오후 6시만 가능하다고 공지했습니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도 내과계 중환자실(MICU)은 더 이상 환자 수용이 불가능하다고 공지했습니다.

지역 병원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습니다. 경북대병원 응급실은 매주 수, 목요일 외과 진료가 아예 불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영남대병원 응급실도 외과 의료진 부재로 추적관찰 환자 외 신규 환자 수용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계명대 동산병원 응급실도 의료진이 부족해 호흡곤란 및 호흡기계 감염 환자를 받을 수 없습니다. 충남지역의 유일한 상급병원인 천안 단국대병원도 의료진 부족으로 소아과·이비인후과·비뇨기과 응급실 진료가 중단됐습니다.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대해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 7천여명에 대해 면허 정지 등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발송한 어제(5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을 걸어가고 있는 의료진 / 사진=연합뉴스

주요 병원이 본격적인 '축소 운영'에 들어가면서 병동에서 근무하던 간호사나 사무·보건·기술직 등은 무급휴가를 써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경희대병원이 간호사 등을 대상으로 무급휴가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삼성서울병원도 현재 검토 중입니다. 서울시내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환자가 줄어들다 보니 병원의 적자가 어마어마하다"며 "무급휴가 신청을 받는 병원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상당수 병원을 무급휴가 신청 접수와 함께 간호사 등을 대상으로 연차휴가 사용도 독려하고 있습니다.

대한간호협회는 '무급휴가 강요'로 인한 피해 신고가 전국에서 계속 접수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27일 부산의 한 대학병원 내 비어 있는 병상 / 사진=연합뉴스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인한 병원들의 축소 운영은 환자들의 피해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따르면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이 시작된 지난달 19일부터 전날까지 누적 상담 수는 916건으로 1천건에 육박합니다. 환자들의 피해신고 접수 건수는 388건입니다.

수술지연이 290건으로 가장 많았고, 진료 취소가 47건, 진료거절 36건, 입원지연 15건 등이었습니다.

'빅5' 병원 등 서울 주요 병원이 수술 건수를 50% 수준으로 축소한 데 이어 전남대병원 등 일부 지방병원은 수술 건수를 평소의 30% 수준까지 줄였습니다.


전공의 집단 이탈한 사태가 길어지자 남은 의료진들은 체력적으로 버티는 데 한계에 이른 상황입니다.

대전 한 대학병원 교수는 "중증이 아닌 환자들은 다른 병원으로 옮기고, 입원환자와 외래환자를 줄였다"며 "그런데도 전공의 4명이 서던 당직을 혼자서 하며 버텨야 하는데 체력과 정신력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한 달이 고비"라며 "환자를 보고 싶어도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전북에서는 전날 도내 13개 종합병원 원장이 모여 의료 공백 최소화를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서일영 원광대병원장은 "한 교수는 지금 60시간 연속 당직을 서고 있다"며 "완전 번아웃이 됐다"고 성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윤도진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doloopp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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