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Travel] MZ 열광하는 속초 서점 투어
입력 2024-02-16 17:24 
속초 앞바다 전경
책과 바다, 완벽한 오늘이다
작심삼일 실패 위로하는 책과 바다
동아서점, 문우당서림 등 MZ세대에게 어필

해가 바뀌면서 설계했던 계획들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새해 계획이 작심삼일로 끝났다고 해도 우울할 필요는 없다. 한적한 겨울바다에서 나를 돌아보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책과 바다가 있는 풍경. 책과 함께 진청의 동해 바다에서 마음을 다독여 보자.
오래된 서점, 책 보러 속초에 간다
서핑이 유입되면서 근래 들어 가장 핫해진 양양이나, 성큼성큼 트렌드에 물들어가는 고성의 바다도 그냥 ‘동해 바다로 인정되긴 하지만, 그래도 여행자들에게 속초의 바다만큼 ‘동해스러운 바다는 없지 않을까 싶다. 인구 8만 명 소도시에 하루 평균 5만 명 이상의 여행객이 방문한다는 건 여행지로서의 매력 아니고서는 딱히 설명할 길이 없다.
속초 앞 바다
속초는 한국전쟁 이후 고향으로 빨리 돌아가길 바라던 함경도 출신 실향민들이 모여 살다 정착한 아바이마을이 먼저 알려졌고, 반면에 한때 활발했던 수산업과 조선업에 종사하던 원주민들의 삶의 흔적은 낡고 피폐하게 스러져 있었다. 속초가 ‘국민관광지로 부상하게 된 건 설악산과 동해바다, 그리고 호수와 같은 천혜의 자연 환경 덕이 크다. 지금은 어떨까. 여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먹거리를 떠올려본다. 가자미식해와 물회, 그리고 순대, 닭강정 정도?
그랬던 속초가 여행자들의 감성을 사로잡는 인기 여행지가 된 배경은 이른바 ‘속초의 속살과 같은 것들이 하나둘씩 인식되면서다. 그중에는 이번 여행의 목적이 된 속초의 오래된 서점도 있다. 속초에는 두 곳의 유명 서점, 동아서점과 문우당서림이 있다. 두 곳 모두 대를 이어 수십 년의 역사를 일궈온 지역 서점들로 ‘백년가게로 선정된 곳이다.
속초 문우당서림
속초의 중심인 청초호 인근 교동에 이웃해 있는 두 서점은 오랜 역사 속에 리모델링을 거쳐 반듯하고 세련된 모양을 하고 있다. 외양으로만 보자면 노포라기보다 신식 문화공간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지만 속초의 문화를 면면히 잇고 진화시키는 문화 거점으로서의 아우라는 서점 곳곳에서 짙게 풍겨 나온다.
3대째 이어오는 동아서점
속초 동아서점 전경과 김영건 대표가 3대에 걸친 동아서점 이야기를 다룬 책『당신에게 말을 건다』(알마 펴냄)
간판 한쪽에 새겨진 ‘동아서점이란 로고와 그 아래 적힌 ‘一九五六이란 글자가 주는 기분 좋은 떨림이 있다. 간판에 쓰인 것처럼 1956년에 문을 연 동아서점은 당시 동아일보 속초 주재 기자였던 고 김종록 대표가 세웠다. 전쟁 이후 학용품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학생들을 위해 문구점으로 시작해 속초의 원조 책방이 됐다.
현재는 2대 김일수, 3대 김영건 부자가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동아서점의 따뜻함은 책을 진열하는 방식에서도 두드러진다. ‘강원을 읽는 시간이란 주제로 강원도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모아두는 등 책방지기의 정성과 안목으로 큐레이션한 책들을 주제별로 곳곳에 모여 놓아 ‘좋은 책을 찾는 손님들의 수고를 덜어준다.
동아서점 전경
한때 문을 닫을 위기까지 처하기도 했으나, 김영건 대표가 합류하면서 서가를 비롯한 서점 디자인 등을 정비하고 지금의 모습으로 바꾸었다. 3대에 걸친 지역 서점의 분투기 특히 3대째 가업을 잇는 김영건 대표가 동아서점에 ‘투신하는 이야기는 그가 쓴 『당신에게 말을 건다: 속초 동아서점 이야기』(알마 펴냄)에 흥미롭게 펼쳐져 있다.
카운터에 있던 김영건 대표가 조용히 말을 건넨다. 혹시 책에 사인해 드릴까요?” 겸연쩍어 하는 표정이 따뜻하다. 동아서점이 지역 주민들이나 여행자들 사이에서 ‘따뜻하다는 인상을 받는 이유를 짐작할 만했다. 속초를 닮은 가게, 속초를 닮은 사람. 지금 동아서점을 꾸미는 이미지들이다.
동아서점 위치 강원도 속초시 수복로 108운영 시간 09:00~21:00(일요일 휴무)
큐레이션 대가가 있는 문우당서림
문우당서림 ‘당신의 목소리 코너
문우당서림은 동아서점에서 청초호 방향으로 200m가 채 되지 않는 곳에 있다. 지난 1984년에 청학동사거리에서 5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시작한 문우당서림은 2003년 현재의 위치로 확장 이전, 이민호 대표와 그 가족들이 운영을 맡고 있다. 250평 규모의 2층짜리 대형 서점으로 성장한 문우당서림은 ‘글월 문, ‘벗 우, ‘집 당으로 이름을 짓고 ‘책과 사람의 공간이란 철학을 통해 지역과 공존한다.
독립출판물들을 발굴해 소개하고 독서모임방을 무료 대관하는 등 지역 문학인들의 사랑방 역할도 하고 있다. 모두 9만여 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으며, 1, 2층을 잇는 계단 한쪽에는 238권의 책 속 문장을 골라 꾸민 서가가 있다.
책 속 문장으로 조명을 꾸며놓았다.
문우당서림이 가장 잘 하는 건 무엇보다 ‘큐레이션이다. 일상 속에 존재하는 이슈와 소재에 주목해 키워드를 선정하고 그에 따라 꼼꼼하게 책을 진열한다. ‘238 서가뿐만 아니라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모아놓은 ‘작가의 방과 100쇄 이상의 도서들을 모은 ‘영예의 도서 기획전 등 서점을 꾸미는 노력도 세세하다.
문우당서림
1층 한쪽에 만들어놓은 ‘당신의 목소리 코너에는 그동안 서점을 다녀간 손님들이 적은 글귀가 방명록 50여 권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나에게 문우당서림은, 여행 중 처음으로 나를 불러 말을 건넨 곳 같은 글귀가 벽면에서 빛나고 있다. 서점 간판에 적힌 글귀 ‘문우당서림이 자라온 이야기를 담은 소란 또는 리듬의 공간이라는 표현이 더 이상 어울릴 수 없는 곳이다.
238권의 책에서 찾아낸 명문들로 만든 문우당서림 서가
문우당서림 위치 강원도 속초시 중앙로 45운영 시간 09:00~21:00
‘책과 ‘쉼이 있는 속초의 북 스폿
롯데리조트속초 슬로우라운지
문우당서림과 롯데리조트 속초가 함꼐 만든 슬로우라운지
전망 좋은 해안에 들어선 리조트 로비에는 책이 가득했다. 2021년 3월에 오픈한 이곳은, MZ세대 사이에 관심이 높아진 속초 서점투어의 인기를 반영해 지역 서점인 문우당서림과 롯데리조트속초가 조성한 공간이다. ‘문우당라운지에서 지금은 ‘슬로우라운지로 이름을 바꿨다. 전 좌석 오션뷰에 오픈형 라이브러리로 꾸며져 있는, 근사한 공간이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 풍경을 감상하며 독서 삼매경에 빠지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비치된 책들은 모두 전문가의 안목으로 큐레이팅 되었고 책의 종류도 다양하다. 슬로우라운지는 속초 여행자들 사이에 아직 크게 알려지지 않았고 따라서 비교적 여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라운지는 카페도 겸하고 있다. 슬로우라운지 위치 강원도 속초시 대포항길 186
완벽한 날들
서점 겸 카페 그리고 북스테이를 겸하고 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시인 메리 올리버의 책에서 이름을 따온 ‘완벽한 날들은 속초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 있어 속초 여행객들 사이에 특히 인기가 높다. 1층에 있는 서점에는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베스트셀러보다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위주의, 오래 두고 또 같이 나누면 좋은 책들을 직접 선별해 갖춰놓는다.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는 이곳에서는 책을 매개로 한 모임과 세미나,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특히 지역사회에 대한 고찰과 애정이 듬뿍 담긴 인문학적 시도 덕에 꽤 많은 마니아를 만들어내고 있다. 18평 규모의 북스테이는 3개의 방과 거실, 욕실, 테라스, 옥상으로 구성되어 있고 독채로 이용할 수 있다. 완벽한 날들 위치 강원도 속초시 수복로259번길 7
동그란책
속초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핫플인 칠성조선소에 가면 저 집은 뭐지?” 하는 물음이 절로 나올 만한 예쁜 집 하나가 있다. 이 책방의 이름은 ‘동그란책. 놀랍게도 그림책방이다. 원래 1952년부터 칠성조선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살던 곳으로 당시의 집안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때문에 ‘칠성북살롱 혹은 ‘칠성조선소 북살롱으로도 불리는데, 다양한 종류의 그림책과 제로웨이스트 소품을 비치해놓고 판매한다.
한쪽 벽면에는 ‘우리 가족이 살았던 집이라는 설명과 함께 집의 평면도가 그려져 있다. 그림책을 보는 재미도 있고, 진열된 패션 소품들과 액세서리, 굿즈 등도 흥미롭다.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 한 그루와 청초호의 풍경도 일품이다. 동그란책 위치 강원도 속초시 중앙로46번길 45
설악산책
설악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복합 문화예술 공간으로 특히 1만여 권의 도서를 소장하고 있는 ‘산&책(이하 설악산책)은 웬만한 도서관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시설과 공간을 갖추고 있다. 1층에는 신간과 장르별 도서, 2층은 원서와 예술도서를 비치하고 있는데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1층에는 우리 농산물을 재료로 하는 한식당 ‘화반이 있고, 2층에는 명품 스피커와 진공관 앰프를 통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카페 소리가 있다. 설악산책의 작은 광장으로 나가면 설악산을 배경으로 꾸민 유럽식 정원을 만날 수 있다. 설악산책 위치 강원도 속초시 관광로 439
책과 함께 속초의 이곳!
영랑호
영랑호는 신라 화랑이었던 영랑이 노닐던 곳이다. 원래 바다였지만 모래가 쌓여 바다와 격리된 석호. 겨울에 만나는 영랑호는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한 계절의 정취를 보여준다. 속초 시민들의 근린공원으로 더욱 친근한 영랑호는 호수 둘레만 7.8km로 시시각각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으로 최고의 산책로로 꼽힌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 잘 만들어져 있고, 호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400m 길이의 부교 ‘영랑호수윗길도 명물이다. ‘아름다운 자전거길 100선에 선정된 영랑호 둘레길을 자전거로 돌며 속초의 역사와 문화, 자연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스토리자전거 투어도 매력적이다. 위치 강원도 속초시 장사동 418-16
청초호와 칠성조선소
청초호,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속초의 핫플들이 호수 주변에 널려 어 호수 둘레를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속초여행의 진수를 모두 느껴볼 수 있다. 칠성조선소도 청초호 서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1952년 문을 연 원산조선소를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든 칠성조선소는 속초를 여행하는 사람들 누구나 한 번쯤 들렀다 가는 핫플레이스.
과거에 배를 수리하던 공간은 조선소의 역사를 아카이빙한 전시실로 쓰이고 있고, 가정집이었던 공간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살롱으로 꾸몄다. 벽돌이 그대로 드러나는 노출 콘크리트 건물에 호수 쪽으로 커다란 통창을 내 청초호와 동해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살롱 밖 조선소의 흔적들과 청초호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 좋은 뷰 포인트가 많다. 위치 강원도 속초시 중앙로 46번길 45
바다향기로
외옹치에 롯데리조트속초가 들어서면서 불거졌던 자연 환경 훼손에 대한 실망감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린 게 아름다운 바다 산책길 ‘바다향기로다. 외옹치해변에서 외옹치항까지,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만들어진 바다향기로는 다이내믹한 바다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산책로다. 지난 60여 년 동안 군사시설로 인해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됐던 곳인 만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천혜의 비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해안과 산기슭을 오르내리기 편하게 나무 데크를 만들어놓아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다. 롯데리조트 외곽 해안을 도는 890m의 외옹치 구간이 바다향기로의 백미. 특히 이른 아침의 한적한 해안 산책로를 걷는 묘미는 속초 여행의 진짜 매력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위치 강원 속초시 대포동 656-14
‘책과 ‘바다가 있는 강원도의 북 스폿
고성 북끝서점 북끝서점은 고성8경 가운데 2경인 천학정 인근, 교암해변과 문암항 사이 7번국도 변에 자리 잡고 있다. 도무지 책방처럼 생기지 않은 건물은 닫혀 있었고, 문에는 ‘책 끝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라는 글귀가 그곳이 서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덧붙여, ‘휴가중이라는 글과 ‘견문을 넓히고 돌아오겠습니다란 메시지가 책방지기의 외유를 짐작게 한다.
북끝서점이라는 이름에는 독자들이 자신이 고른 책의 끝까지 닿길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 ‘우연히 마주친 여행길의 옆모습 정도로 남는 책방을 꿈꾼다는 이곳은 고성의 어느 바닷가 마을과 그럴 듯하게 어울리는 책방 풍경이었다. 위치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교암길 78-1 운영 시간 11:00~16:00(화요일 휴무)
양양 P.E.I Coffee와 헤밍웨이길 양양에도 문학을 테마로 한 공간이 있다. 물치항 인근에 만들어진 베이커리 카페 ‘P.E.I Coffee다. 물치해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전망 좋은 카페로 ‘P.E.I는 『빨간 머리 앤』을 지은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캐나다의 아름다운 섬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의 첫 글자를 땄다.
작가가 평생 그리워했을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의 바다를 이곳 물치해변에서 발견했고, 작가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만든 공간으로 정해진다. 카페 안에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초상과 작품집들이 전시되어 있다.
양양 물치해변에서 후진항 초입의 몽돌소리길 전망대까지, 바다 옆으로 나란히 나 있는 ‘헤밍웨이길도 문학의 숨결을 느끼며 걸어볼 만한 아름다운 산책로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알려진 이 길은 전체 길이 2.3㎞ 정도로, 소설 속 ‘산티아고와 ‘마놀린 이름을 단 배 두 척과 원목 그네, 해먹 등으로 꾸며 놓고 여행자들을 소설 속으로 안내하는 헤밍웨이파크도 있다. 위치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동해대로 3539 운영 시간 10:00~20:00
양양 카페 로그 하조대 해변 인근에도 책이 있는 힐링 스폿이 있다. 7번국도 건너편 야트막한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카페 로그다. ‘솔향기언덕이란 이름의 한국검인정교과서협회 연수원 안에 있는 카페로 마음껏 꺼내 읽을 수 있는 책이 1만 권 이상 비치돼 있고, 멋진 음악도 감상할 수 있다. 연수원 안에 있는 공간이라 뒤늦게 소문이 났지만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책과 바다를 좋아하는 여행자들 사이에 핫플이 되었다. 편안한 소파에 앉아 책을 읽거나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고,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거나, 건물 루프톱에 올라 바라다보는 동해 바다의 풍경 또한 일품이다. 위치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송이로 86-32 운영 시간 09:00~20:00
[글과 사진 이상호(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1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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