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생생중국] 이러다 만리장성(萬里長城)이 한반도를 관통하겠네!!!
입력 2024-02-10 09:00  | 수정 2024-02-13 09:45
빠다링 장성의 풍경.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 바로 만리장성의 묘미다. / 사진 = MBN 촬영
- 진시황제가 완성한 만리장성…중원 한족과 북방 유목민족의 경계선
- 마오쩌둥 “장성 오르지 않으면 대장부 아니다”…중국인이 한 번은 꼭 오려는 곳
- 총 길이 6,300여km…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길어지는 만리장성
중국에 살면서 만리장성(萬里長城)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장성은 중국을 대표하는 곳이다. 만리장성은 말 그대로 만리(萬里)에 이르는 긴 성벽이라는 뜻이다. 혹자는 먼 옛날엔 만(萬)이라는 것은 숫자 1만의 만이라는 뜻도 있지만 ‘많다라거나 ‘끝이 없다는 의미로 쓰였다고 주장한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수천 년 전 사람들에게 만리장성은 ‘끝이 보이지 않는 성벽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마오쩌둥 만리장성을 오르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다”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빠다링(八達領) 장성은 베이징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약 6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표를 사고 입구를 지나 북쪽 능선으로 30분 정도 오르면 하오한스(好漢石)가 나온다. 영어로 'HERO STONE'이라고 안내된 이 돌은 현대 중국 건국자인 마오쩌둥(毛澤東)이 만리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다(不到長城非好漢)”라는 말을 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기자가 빠다링 장성을 방문했을 때가 설 연휴 직전 주말이었는데, 영하 10도 안팎의 쌀쌀한 날씨와 장성 위에 부는 세찬 바람에도 하오한스에서 사진을 찍고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중국인이 족히 수십 명은 넘어 보였다.

춘제를 앞둔 한겨울 강추위에도 장성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 사진 = MBN 촬영


14억 중국 사람들은 평생에 꼭 한 번쯤은 만리장성에 오르고 싶어 한다고 한다. 그래서 대륙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장성은 1년 내내 붐빈다. 반면, 실제로 장성을 올라본 사람들은 가도 가도 끝이 없고 똑같은 풍경 탓에 두 번 올 일은 없다”는 데 입을 모은다. 베이징이 고향인 중국 지인 역시 내 나이 50이 넘었는데, 학생 때와 젊은 시절 2번 올라본 뒤로는 장성 위에 올라간 일은 없다”고 말한다. 서울 사람이 남산을 한 번만 오르고 두 번은 잘 가지 않으려는 것과 비슷한 심리랄까.

죽의 장막 거둬낸 중국…요즘은 만리방화벽 세우고 인터넷 쇄국정책


1949년 공산화 이후 중국은 세계의 중심에서 멀어져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 지냈다. 그 시기를 ‘죽의 장막이라고 부른다. 그러다 1979년 미‧중 수교와 이어진 개혁개방으로 중국은 고도성장의 시대를 누리게 된다. 이런 중국이 요새는 제2의 ‘죽의 장막‘을 치고 있으니 바로 만리방화벽‘이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쉐이관(水关)장성.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무서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거의 없었다. / 사진 = MBN 촬영


중국 땅을 밟는 순간 외국인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것은 다른 나라와 달리 단절된 인터넷 공간이다. 중국에서는 외국 사이트가 원칙적으로 모두 차단된다. 우리나라 네이버나 다음, 카카오톡은 물론 구글, 페이스북, X(옛 트위터) 등도 마찬가지다. 틱톡(TIKTOK)도 중국에선 더우인(抖音)이라는 중국 버전만 사용이 가능하다.

여행 올 때 로밍을 해오면 로밍 데이터로는 외국 사이트를 볼 수 있지만, WIFI 등 중국 통신망을 쓰는 순간 모두 차단된다. 물론 가상통신망(VPN)을 써서 우회할 수는 있지만, 비용이 발생하고, 핸드폰과 노트북에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하는 등 여긴 귀찮은 게 아니다. 죽의 장막을 걷고 30년 동안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던 중국이 몇 년 전부터 인터넷 세상에선 오히려 쇄국정책을 강력하게 펼치고 있는 셈이다.

동북공정에도 만리장성 활용하는 중국…이러다 장성이 한반도까지 진출?


만리장성은 흔히 진나라의 시황제(秦始皇帝, 기원전 259~기원전 210)가 완성했다고 알려져있다. 하지만, 시황제 이전부터 곳곳에 있던 성벽을 이었던 것이고, 그 뒤로도 끊임없이 보강 공사가 이뤄져 왔다.

베이징 동북쪽 무톈위(慕田峪) 장성은 잘 보존돼 있으면서도 관광객은 많지 않다. / 사진 = MBN 촬영


현재는 대개 서쪽으로는 간쑤성(甘肅城) 자위관(嘉峪關)에서 동쪽의 허베이성(河北省) 산하이관(山海關)까지를 만리장성으로 보고, 길이도 6,352km 정도로 간주한다. 다만, 수천 년을 끊임없이 쌓고 무너지고 또 잇기를 반복하다 보니 만리장성의 경계를 정확하게 구분 짓기는 사실 어렵다.

중국은 오히려 이 점을 이용해 대륙 주변부의 역사를 모두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 특히나 동북쪽은 우리나라 역사와도 뒤섞여 있는 만큼 우리로서는 항상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중국이 수천 년 전부터 존재하던 성벽을 모조리 만리장성이라고 선언하고 그 테두리 안쪽은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나라의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역사도 중국의 역사가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09년 4월 중국 당국이 만리장성의 전체 길이와 위치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이때 동쪽 끝을 기존의 산하이관에서 랴오닝성(遼寧省) 단둥시(丹東市)의 후산(虎山)으로 변경했고, 길이도 종래 6,352km에서 8,852km로 무려 2,500km를 늘였다.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이 후산을 고구려 박작성(泊灼城) 유적지로 보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곳을 개축해서 후산장성으로 만들어버렸다.

심지어 2012년에는 중국 내 모든 장성을 다 합치면 전체 길이가 21,197km에 이른다고 발표를 하는가 하면, 2020년엔 중국 일각에서는 북한의 평양에 이르는 성벽까지 만리장성의 일부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머지않아 한반도에 있는 성벽들이 모조리 만리장성이라고 주장할 날도 올 것 같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겠다.

윤석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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