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건강
한겨울에도 서핑, 합니까? [양양을 꼬치꼬치]
입력 2024-02-04 11:23 
2021년 12월 31일, 양양 기사문 해변, 겨울 서퍼들을 위한 방한돔

"요즘에도 바다 들어가?" 취미가 서핑이라고 하면 이맘때쯤 항상 듣는 질문입니다.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고 칼바람이 부는데, 심지어 눈까지 오는 한겨울에 바다에 들어가는 게 말이 되나. 뉴스에서 북극곰 수영이라고 한강이나 바다에 맨몸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떠올리고 하는 말 같습니다. 금새 살이 빨갛게 부어오르고 하얀 입김이 절로 나오는 장면을 생각하면 겨울 바다에 보드를 가지고 들어가 파도를 탄다는 게 상상이 안 될 수 있습니다.

2022년 1월 1일, 겨울 서핑 중에 사망한 남편의 보드

저도 원래는 겨울 서핑을 하는 남편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머리카락에 고드름이 걸려 덜렁거리는데도 몇시간씩 바다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면서 왜 시키지도 않은 고생을 사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춥지 않다는 말은 날 꼬드기기 위한 거짓말로만 들렸습니다. 바닷바람을 맞고 해변가에 서있기만 해도 몸이 떨리는데 물에 들어가 있는다는 건 미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겨울에도 서핑을 할 수 있을까요?
정신력이 어마어마한 사람만 할 수 있을까요?
아니 가능하더라도 굳이 이 추운 겨울에 물에 들어가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서퍼 두 사람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김호수 씨, 30대 남성, 8년차 주말 서퍼
주로 찾는 서핑 스팟은 양양 기사문 해변]

Q. 첫 겨울 서핑은 언제였습니까?

6~7년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첫 강습을 받은 서핑샵에서 겨울 서핑 캠프를 열어 듣게 됐습니다. 한여름에는 일일 강습생으로 바다도 셔핑샵도 가득 차서. 비교적 손님이 없는 겨울철에 캠프를 운영합니다. 소규모로 한 두 달씩 레벨업 강습을 듣는데. 그때가 마침 겨울이라 어쩌다 보니 겨울 서핑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Q. 정말, 안 추운 게 맞습니까?

12월까지는 정말 안 춥습니다. 크리스마스때 서핑한다면 사람들이 진짜 안춥냐고 계속 물어보는데. 잘 모르지만 수온은 바깥 계절보다 한 계절씩 늦게 온도가 변한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1월 중순은 지나서 오히려 3~4월이 제일 춥습니다. 12월까지는 바깥 바람이 좀 차더라도 바닷물 속은 정말 따뜻합니다.


Q. 그래도 인간적인 온도는 아니지 않나요? 왜 굳이 겨울에 합니까?

우리나라 계절 절반이 겨울이잖아요. 이때 안 하면 반 년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취미가 서핑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 같아요. 한국은 파도가 좋은 날이 손에 꼽고, 주말 서퍼라면 토요일 일요일 운이 좋게 좋은 파도가 들어와야 하는데. 허탕을 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래서 파도가 좋으면 어느 정도 추위도 감수하고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5mm 두께 정도 되는 두꺼운 웻수트를 입고, 장갑이랑 부츠 모자까지 단단히 쓰면 두어 시간은 참을만 합니다.

Q. 결국 추운 걸 참고 버틴다는 건데,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요?

일단 옷이랑 장갑이 두꺼워서 파도를 잡기 위한 패들링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패들 실력이 더 느는 것 같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체력이 금방 떨어집니다. 일단 물 밖에 나와 있는 손이 제일 춥고, 한번씩 바다 속에 아예 빠지면 머리통이 깨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릴 수 없는 맨얼굴에 바람이 세게 불면 죽을 것 같습니다.
겨울 서핑을 위한 두꺼운 수트, 장갑, 모자, 부츠

미리 계획을 잘 세우고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 또 어렵습니다. 여름에는 파도가 마음에 안들면 잠깐 밖에 나왔다고 밥 먹고 쉬었다가 들어가면 되지만. 겨울 수트는 벗는데 굉장히 오래 걸리고 힘들어서 시간을 잘 맞춰서 바싹 타고 나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옷만 입고 추위에 떨다가 이제 막 재밌어질 때쯤 체력이 방전되서 밖에 나와야 합니다.

Q. 앞으로도 계속 하실 겁니까?

네 할 겁니다. 재밌어서.

Q. 겨울 서핑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합니까?

추천 안 합니다. 저 혼자 할 거니까. 더 오지 마세요.

양양 기사문 <펀서프>

[우태훈 씨, 40대 남성, 16년차 로컬 서퍼
양양 기사문 해변 서핑샵 ‘펀서프 사장님]


Q. 겨울 서핑 언제 시작하셨나요?

양양에서는 2008년도 봄에 기사문에서 시작했는데, 봄 바다가 제일 차가우니까 그냥 원래 바다는 추운 줄 알고 시작했어. 그때는 해외에서 서핑 해보고 온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동호회 만들어서 몇 명씩 탔는데. 그때 강릉에 놀러 왔다가 외국인 친구가 파도 타는 모습 보고 관심이 생겨서 강릉 경포에서 첫 서핑 했던 거 같아. 그 다음 알음알음 소개 받아서 기사문으로 오게 됐는데 2018년부터는 서핑샵 운영 시작했지. 주말 서퍼 10년 채우고 아예 내려와서 정착한 셈이네.
우태훈 사장님이 직접 찍은 겨울 서핑 풍경 https://www.youtube.com/watch?v=xubDy81cRIs

Q. 가장 최근에 한 겨울 서핑은 언제인가요?

나? 올해 아직 한 번도 안 들어갔는데?

Q. 서핑샵 사장님이신데 겨울 서핑 안하시나요?

주말 서퍼일 때는 파도만 좋으면 기를 쓰고 들어갔는데. 악조건이어도 무조건 타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었고. 그런데 지금은 바닷가 앞에 사니까 잘 안 들어가.

Q.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양양이 겨울 서핑으로 유명한 이유가 뭔가요?

일단 기본적으로 겨울 바다는 북쪽에서 내려오는 해류, 스웰이 강해. 그런데 포항, 제주에 비해서는 양양이 제일 북단에 있으니까. 그 해류를 가장 직접적으로 세게 맞아서 파도가 힘이 좋아. 북동향 해변이라서 양양이 평균적으로 파도가 더 크고 강하게 들어오는 거지. 적도 위에 있는 바다들은 다 똑같아. 겨울에는 북스웰, 여름에는 남스웰

Q. 추울수록 파도 힘이 좋다고 느껴지는 게 기분 탓이 아니었네요?

그렇지. 북쪽 차가운 공기가 더 많이 내려올수록 해류가 더 강하게 밀려 내려오는거니까. 추워질수록 파도는 더 강해져. 전날보다 기온이 확 떨어지고 추워지면 파도가 확 커지는 거지. 반대로 온도가 올라서 따뜻해지면 파도가 각아지는 거지. 위쪽 대류가 강하게 내려올수록 날씨도 추워지고 파도도 북스웰이 좋은 방향으로 내려오는거.

Q. 그래도 옛날에 겨울 서핑 열심히 하던 때를 잘 떠올려보면 어땠나요?

보통 양양은 진짜 기온이 많이 떨어져도 영하 14도로 하루 이틀 정도야. 그 며칠 빼고는 온화한 편. 겨울 서핑은 기본적으로 여름이랑 느낌이 달라. 파도 힘이 강하게 느껴져 파도 자체는 같은 사이즈라고 해도 더 힘이 느껴져. 대체로 그래. 난 12월까지는 겨울 수트 안입고 그냥 타.

Q. 힘들어도 겨울 서핑을 해야 실력이 는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렇다고 생각해. 그 긴 겨울 공백동안 아예 안 들어가는 것보다 낫지. 상급자가 되면 더 난이도 있는 파도를 타야 하는데 겨울 서핑을 하면 스킬적으로 향상이 되고. 겨울에 좋은 파도가 더 크게 자주 많이 들어오니까.

[한 줄 결론 : 우리나라에서 겨울 서핑은 피할 수 없으니 즐기는 것 (따뜻한 발리 가고 싶다)]

[민지숙 기자/knulp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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