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작가 주호민 씨 자녀를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를 받는 특수교사가 1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이번 재판에서는 주 씨 측이 교사 발언을 몰래 녹음한 파일이 증거로 인정될 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최근 대법원이 또 다른 아동학대 혐의 사건에서 몰래 녹음된 파일을 증거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법원은 주 씨 사건과 비슷한 사례를 두고 "피해 아동의 부모가 몰래 녹음한 피고인의 수업시간 중 발언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 녹음'에 해당한다"며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재판을 맡은 수원지방법원은 몰래 녹음한 파일을 증거로 인정했습니다.
주 씨가 몰래 녹음한 교사의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녹음'에 해당된다고 인정하면서도, '위법성 조각 사유'가 존재한다고 본 겁니다. 즉 불법 행위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위법이 아니라는 판단입니다.
장애인 자녀의 학대 정황을 확인하기 위한 부모의 행위가 정당했을 뿐만 아니라 학생 보호 이익이 교사의 사생활 침해보다 더 크다고 봤다는 게 수원지방법원의 설명입니다.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교사의 일부 발언이 피해자에게 미필적으로나마 정서 학대를 하려는 고의를 인정할 수 있고, 교사로서 피해 아동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데도 짜증 섞인 태도로 정서적으로 학대해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봤습니다.
이 특수 교사가 '연음 읽기' 수업을 하던 중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너를 얘기하는 거야. 아휴 싫어 싫어 죽겠어, 싫어 너 싫다고 나도 너 싫어 정말 싫어"라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 재판부는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표현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덧붙여 "그 의미와 피고인의 부정적 감정 상태가 그대로 피해자에게 전달돼 정신건강과 발달을 저해할 위험이 존재하고 피고인의 미필적 고의도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특수 교사에 대해 벌금 200만 원의 선고를 유예했습니다. 선고유예란 가벼운 범죄에 대해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2년 동안 특별한 일이 없다면 사실상 없던 일로 해주는 판결입니다.
학부모들이 선처를 희망하고 있는 점, 실제 해당 발언들로 피해자에게 얼마나 해를 끼쳤는지 명확하지 않는 점 등이 고려됐습니다.
자료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특수 교사 측은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습니다.
몰래 녹음한 파일이 증거로 사용될 경우 교사와 학생 사이에 신뢰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반면, 주 씨는 "얼마 전 대법원에서 '몰래 한 녹음은 증거 효력이 없다'는 판결을 해 굉장히 우려했었는데,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자기 의사를 똑바로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녹음 장치 외에 어떤 방법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상반된 입장을 내놓으면서 앞으로 '몰래 녹음한 파일'의 증거 인정 여부를 두고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윤혜주 디지털뉴스 기자 heyjude@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