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시내에서 이동할 때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걸 좋아한다.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막힐 일이 없으니 일정을 맞추기 편하다. 소위 계산이 선다. 두 번째로 이동하는 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책을 읽을 수도 있고, 뉴스 검색을 할 수도 있고, 하다못해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세 번째로 다양한 인간군상을 직접 볼 수 있다. 저마다의 표정과 몸짓을 하는 사람들을 가까운 곳에서 보는 건 귀한 경험이다. 그래서 여기 중국에 와서도 틈만 나면 지하철을 타보곤 한다.
28년 전인 1996년 중국에 처음 왔을 때 베이징의 지하철은 내 기억에 한 개나 두 개 노선 정도만, 그것도 시내 중심가만 운행했었다. 당시 지하철은 말 그대로 지하로 다니는 기차 정도 수준이었다. 계단을 따라 어두컴컴한 지하로 내려가면 침침한 조명에 쓰레기와 각종 오물이 널브러진 더러운 위생 상태, 그리고 어쩔 땐 열차 문이 열린 채로 운행하는 아찔한 곳이었다. 그래서 당시엔 사람들이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주로 탔던 기억이 있다.
28년 만에 다시 만난 중국 지하철은 정말 내 상상을 한참 뛰어넘었다. 우리나라와 비교해도 크게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또 모두 25개에 이르는 노선이 베이징 전체에 방대하게 펼쳐져 있다. 상하이와 톈진, 항저우 등 직접 타봤던 다른 도시의 지하철 역시 꽤 훌륭했다.
중국 지하철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크게 4가지이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모든 지하철역마다 들어갈 때 보안 검색을 한다는 점이다. 역사에 설치된 검색대를 통과하면 보안요원들이 다시 몸을 수색한다. 짐이 있으면 짐도 엑스레이 검색대를 통과시켜야 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보안 검색이 생겼다고 한다. 이후 상하이 등 다른 도시의 지하철에까지 보안 검색이 퍼져나갔다. 물론 평소에는 큰 의미 없는 요식행위다. 보안요원들도 설렁설렁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하지만, 양회가 열리는 시기나 국제행사가 있을 때, 기타 특별한 지침이 내려오면 보안 검색을 정성 들여서 한다. 또 시내 중심지 역에서는 실탄을 장전한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역사 곳곳에 사복 경찰들이 불심검문까지 진행한다. 이 때문에 역사에 들어서서 개찰구까지 긴 줄이 형성되기도 한다. 시간이 없을 땐 짜증이 나는 게 사실이다.
두 번째로 지하철 객차 안에 물건을 올려두는 선반이 없다. 처음엔 내가 자주 타는 14호선과 1호선에만 없는 줄 알았다. 그래서 무거운 짐을 들고 탈 때면 계속 들고 있거나 바닥에 내려놓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하려고 무척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러다 베이징의 모든 지하철에 선반이 없는 것을 알게 됐다. 중국 현지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선반이 없는 이유를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없는 게 미관상 더 보기 좋지 않냐” 고 대수롭지 않게 답한다.
바이두(百度) Q&A에 그 이유를 물어보니 중국 지하철 승객들은 무거운 짐을 들고 타는 경우가 일본 등 다른 국가 지하철 승객들보다 많지 않기 때문에 설계상 수하물 선반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수하물을 들고 타는 경우가 많은 중국 고속철도는 수하물 선반이 설계에 반영된다”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추가로 보안의 사유도 고려된 게 아닐까 싶다. 누군가 위험한 물건을 선반에 두고 내려서 사고가 발생하는 걸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세 번째로 오래된 시내 중심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역에 열차 승강장에 화장실이 있다. 땅이 넓어서 지하철역도 넓게 만들어서 그런 건지. 어쨌든 이 승강장 안에 있는 화장실은 생각보다 훨씬 편리하다. 우리나라는 역 개찰구를 나가야 화장실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표를 끊고 들어왔다가 화장실을 가려면 역무원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해야 하는데, 중국에서는 급한 용무가 있을 때 승강장에서 바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세 번째 언급한 대목과 일맥상통하는데, 대국답게 지하철역이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거다. 일단 승강장 자체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지하철도 6량~10량으로 역시 우리와 비슷하고, 객차 안은 오히려 우리나라 지하철보다 약간 좁은 느낌이다.
그런데 승강장을 제외한 역의 다른 부분들의 크기가 엄청나다. 사람이 많다 보니 출퇴근 시간에 몰리는 유동 인구를 모두 소화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또 환승역의 경우는 환승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정거장 한 개 정도 거리를 걸어가야 하는 수준으로 동선이 길다. 애초에 환
승을 고려하지 않고 역을 만들었다 나중에 환승역으로 바꿨기 때문일 걸로 추정된다.
기자가 자주 이용하는 14호선과 1호선 따왕루역(大望路站)만 해도 갈아타려면 성인 남성 걸음으로 5분 이상은 걸어가야 한다. 어떤 지하철역은 환승하려면 아예 육교를 통해 지상에서 왕복 8차선 도로를 건너서 10분 이상을 걸어가야 하는 곳도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에서 지하철을 이용할 때 유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중국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시기엔 역을 폐쇄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궈칭제(國慶節)나 춘제(春節) 등 인구 이동이 많을 때는 주요 관광지와 인접한 역을 아예 문을 닫아버리는 거다.
가령 2024년 1월 1일의 경우 첫 국기 게양식을 보기 위해 톈안먼(天安門) 광장으로 인파들이 몰릴 걸 대비해 광장 주변의 3개 역(天安門東/天安門西/前門)을 국기 게양식이 끝나는 오전 8시 40분까지 폐쇄했었다. 그래서 국기 게양식을 보려는 사람들은 그 전 정거장에 내려
서 톈안먼 광장까지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작년 궈칭제 때도 이를 사전에 숙지하지 못해서 어린이와 노약자와 함께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관광지에서 한참 전에 내려서 걸어가다 지쳐서 길바닥에 아예 눌러앉아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까먹고 다리를 주무르며 쉬는 광경을 기자는 심심찮게 목격했었다.
이런 독특한 상황이 있지만, 중국을 여행한다면 지하철을 타고 가다 아무 곳에서나 내려서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또 다른 낯선 곳으로 향하는 재미를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윤석정 베이징 특파원]
30년 전 타봤던 지저분한 베이징 지하철…이제는 서울과 버금가는 수준
28년 전인 1996년 중국에 처음 왔을 때 베이징의 지하철은 내 기억에 한 개나 두 개 노선 정도만, 그것도 시내 중심가만 운행했었다. 당시 지하철은 말 그대로 지하로 다니는 기차 정도 수준이었다. 계단을 따라 어두컴컴한 지하로 내려가면 침침한 조명에 쓰레기와 각종 오물이 널브러진 더러운 위생 상태, 그리고 어쩔 땐 열차 문이 열린 채로 운행하는 아찔한 곳이었다. 그래서 당시엔 사람들이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주로 탔던 기억이 있다.
28년 만에 다시 만난 중국 지하철은 정말 내 상상을 한참 뛰어넘었다. 우리나라와 비교해도 크게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또 모두 25개에 이르는 노선이 베이징 전체에 방대하게 펼쳐져 있다. 상하이와 톈진, 항저우 등 직접 타봤던 다른 도시의 지하철 역시 꽤 훌륭했다.
붓글씨로 멋지게 쓰인 역명(츠치코우잔/磁器口站)을 보는 것도 베이징 지하철을 타는 즐거움 중 하나다. / 사진 = MBN 촬영
중국에선 지하철 탈 때마다 보안 검색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
중국 지하철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크게 4가지이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모든 지하철역마다 들어갈 때 보안 검색을 한다는 점이다. 역사에 설치된 검색대를 통과하면 보안요원들이 다시 몸을 수색한다. 짐이 있으면 짐도 엑스레이 검색대를 통과시켜야 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보안 검색이 생겼다고 한다. 이후 상하이 등 다른 도시의 지하철에까지 보안 검색이 퍼져나갔다. 물론 평소에는 큰 의미 없는 요식행위다. 보안요원들도 설렁설렁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하지만, 양회가 열리는 시기나 국제행사가 있을 때, 기타 특별한 지침이 내려오면 보안 검색을 정성 들여서 한다. 또 시내 중심지 역에서는 실탄을 장전한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역사 곳곳에 사복 경찰들이 불심검문까지 진행한다. 이 때문에 역사에 들어서서 개찰구까지 긴 줄이 형성되기도 한다. 시간이 없을 땐 짜증이 나는 게 사실이다.
지하철을 타려면 엑스레이 검색대를 통과하고 보안요원의 몸수색을 받아야 한다. 짐이 있으면 왼쪽의 짐 검사대에 올려놓아야 한다. / 사진 = MBN 촬영
두 번째로 지하철 객차 안에 물건을 올려두는 선반이 없다. 처음엔 내가 자주 타는 14호선과 1호선에만 없는 줄 알았다. 그래서 무거운 짐을 들고 탈 때면 계속 들고 있거나 바닥에 내려놓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하려고 무척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러다 베이징의 모든 지하철에 선반이 없는 것을 알게 됐다. 중국 현지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선반이 없는 이유를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없는 게 미관상 더 보기 좋지 않냐” 고 대수롭지 않게 답한다.
바이두(百度) Q&A에 그 이유를 물어보니 중국 지하철 승객들은 무거운 짐을 들고 타는 경우가 일본 등 다른 국가 지하철 승객들보다 많지 않기 때문에 설계상 수하물 선반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수하물을 들고 타는 경우가 많은 중국 고속철도는 수하물 선반이 설계에 반영된다”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추가로 보안의 사유도 고려된 게 아닐까 싶다. 누군가 위험한 물건을 선반에 두고 내려서 사고가 발생하는 걸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물건 올려두는 선반이 없는 중국의 지하철. / 사진 = MBN 촬영
승강장 안에 설치된 화장실…급할 땐 생각보다 편리해
세 번째로 오래된 시내 중심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역에 열차 승강장에 화장실이 있다. 땅이 넓어서 지하철역도 넓게 만들어서 그런 건지. 어쨌든 이 승강장 안에 있는 화장실은 생각보다 훨씬 편리하다. 우리나라는 역 개찰구를 나가야 화장실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표를 끊고 들어왔다가 화장실을 가려면 역무원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해야 하는데, 중국에서는 급한 용무가 있을 때 승강장에서 바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지하철 대부분은 이렇게 승강장에 화장실이 함께 설치돼 있다. / 사진 = MBN 촬영
넓은 나라답게 지하철 역사 크기도 엄청나…환승하려고 10분 이상 걷기도
네 번째는 세 번째 언급한 대목과 일맥상통하는데, 대국답게 지하철역이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거다. 일단 승강장 자체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지하철도 6량~10량으로 역시 우리와 비슷하고, 객차 안은 오히려 우리나라 지하철보다 약간 좁은 느낌이다.
그런데 승강장을 제외한 역의 다른 부분들의 크기가 엄청나다. 사람이 많다 보니 출퇴근 시간에 몰리는 유동 인구를 모두 소화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또 환승역의 경우는 환승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정거장 한 개 정도 거리를 걸어가야 하는 수준으로 동선이 길다. 애초에 환
승을 고려하지 않고 역을 만들었다 나중에 환승역으로 바꿨기 때문일 걸로 추정된다.
기자가 자주 이용하는 14호선과 1호선 따왕루역(大望路站)만 해도 갈아타려면 성인 남성 걸음으로 5분 이상은 걸어가야 한다. 어떤 지하철역은 환승하려면 아예 육교를 통해 지상에서 왕복 8차선 도로를 건너서 10분 이상을 걸어가야 하는 곳도 있다.
왕푸징역(王府井站)에 설치된 베이징 지하철의 역사 홍보물. 왕푸징역은 중국에서 가장 먼저 개통된 지하철역 중 한 곳이다. / 사진 = MBN 촬영
마지막으로 중국에서 지하철을 이용할 때 유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중국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시기엔 역을 폐쇄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궈칭제(國慶節)나 춘제(春節) 등 인구 이동이 많을 때는 주요 관광지와 인접한 역을 아예 문을 닫아버리는 거다.
가령 2024년 1월 1일의 경우 첫 국기 게양식을 보기 위해 톈안먼(天安門) 광장으로 인파들이 몰릴 걸 대비해 광장 주변의 3개 역(天安門東/天安門西/前門)을 국기 게양식이 끝나는 오전 8시 40분까지 폐쇄했었다. 그래서 국기 게양식을 보려는 사람들은 그 전 정거장에 내려
서 톈안먼 광장까지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작년 궈칭제 때도 이를 사전에 숙지하지 못해서 어린이와 노약자와 함께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관광지에서 한참 전에 내려서 걸어가다 지쳐서 길바닥에 아예 눌러앉아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까먹고 다리를 주무르며 쉬는 광경을 기자는 심심찮게 목격했었다.
이런 독특한 상황이 있지만, 중국을 여행한다면 지하철을 타고 가다 아무 곳에서나 내려서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또 다른 낯선 곳으로 향하는 재미를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해당 역(東西站)에 얽힌 유래를 설명해주는 곳도 있다. / 사진 = MBN 촬영
[윤석정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