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세계-나는 정치인이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본 영상의 타이틀곡과 BGM의 저작권은 MBN에 있습니다
*인터뷰 인용 보도시 MBN 유튜브 <지하세계-나는 정치인이다> 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MBN에 있습니다.
[클립 4 ] 유영하 눈물 펑펑 쏟은 사연
박근혜가 감옥에서 준 쪽지 "덤으로 삶이기에 육신엔…"
◎ 앵커> 박근혜 대통령 건강은 많이 회복 되셨나요?
● 유영하> 일상생활 하실 정도의 건강은 회복되셨고요. 예전 건강이 100이라 그러면 한 90프로 이상은 회복되셨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열심히 하십니다. 운동도 하시고 재활도 열심히 하시고 스케줄 따라 정말 철저하게 자기관리가 철저하신 분이라서 뭐 저는 앞으로 생활하시는 데는 크게 뭐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다.
◎ 앵커> 이제 박 전 대통령 뵙는 게 조금 1주일에 횟수가 좀 줄어들겠네요. 그동안은 좀 어떻게 보셨어요?
● 유영하> 출마 선언하고 그날, 그 전날 아마 제가 잠깐 들어갔다 온 것 같습니다. 제가 내일 출마 선언합니다. 그렇게 말씀을 드리고 이제 혹시 인제 뭐 혹시 대통령님께 심부름 시킬 일 있으면은 제가 낮하고 평일 때는 조금 다녀야 되니까. 저녁 좀 늦게 들어와서 이렇게 뭐 말씀 주시면 와서 뵙겠습니다. 근데 그분 성격에 아마 제가 좀 늦게 출마 선언했고 또 선거 운동으로 좀 바쁠 거다 이렇게 생각하시면은 안 하실 겁니다. 제가 볼 때는. 오히려 제가 뭐 전화드려서. 왜냐면 스케줄 따라 이렇게 좀 챙겨드릴 부분이 제 머릿속에 기억되는 게 있거든요.
◎ 앵커> 뭐가 있어요?
● 유영하> 뭐 있습니다. 그냥 있는데, 그건 인제 제가 날짜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이건 어떻게 하셨냐 이렇게 여쭤볼 수 있겠죠. 그렇지만 먼저 저한테 전화해서 이거 이렇게 해주세요. 이렇게 말씀 말씀은 아마 대통령 성격상 저는 안 할 거라고 봅니다.
◎ 앵커> 그러면 출마 선언하시기 전에는 자주 일주일에 자주?
● 유영하 일주일에 두세 번 가기도 하고, 적을 때는 열흘에 한번 가지만, 거의 평균적으로 한두 번은 들어가 뵙죠. 그런데 이 지금 회고록 하면서는 좀 자주 들어갔었죠. 왜냐면은 대통령이 이제 구술하시고, 이제 구술을 정리한 걸 중앙일보에서 넘겨주면은 또 그게 오탈자도 좀 봐야 되고 또 내용 자체가 또 정확한 건지 뭐 자료도 좀 봐야 되고 이러니까. 좀 자주 들어갔던 거 같아요.
◎ 앵커> 회고록은 2월 5일 날 나오는 거죠?
● 유영하> 제가 듣기로는 하여튼 2월 초에 뭐 출간 초간이 나온다고 들었어요.
◎ 앵커> 근데 거기서 이제 박 전 대통령이 유영하 변호사를 접견했을 때 본인이 이제 감옥에서 잘 버티시다가 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한계에 부딪쳤을 때 쪽지를 하나 전달했다.
● 유영하> 쪽지가 아니고 A4 용지 정도 크기의 종이에 적어서. 아유 죄송합니다.
뭘 주셨죠 뭘 주셨는데 그 안에서는 제가 못 봤고.
◎ 앵커>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우셨을 것 같아요. 그 내용.
● 유영하> 그게 2016년 10월 말 11월 초. (눈물)
◎ 앵커> 그걸 보고 마음이 그렇더라고요. 그럼 A4 용지에 한 몇 줄 정도를 쓰신 거에요. 자필로?
● 유영하> 한 바닥 정도 되죠. 한 바닥 정도 되는데 이제 쭉 쓰시면서 마지막에 인제
어떤 말씀을 하셨어요. 별로 느낌이 안 좋았죠. 원래 강하신 분이고 또 한 번도 그런
뭐 약한 모습을 보여주신 적도 없고 그래서 할 방법이 생각이 안 났어요.
◎ 앵커> 막막하셨을 것 같아요. 그거 읽으셨을 때는.
● 유영하> 누구랑 뭐 상의를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그래서 그때 담당 교도관한테 제가 뭐 내용은 설명을 안 하고 ‘많이 힘들어하신다, 몸도 안 좋으시고 그래서 어떻게 병원에서 조금 이렇게 몸을 돌볼 그런 게 해줄 수 있냐 이렇게 이제 얘기를 건넸고 아마 구치소 측에서도 여러 가지 판단을 해서 교정본부에 건의를 했고요. 다행히 교정본부에서 그걸 받아들여서 그때 원래 성모병원에서 대통령께서 수술도 하셨고 또 중간에 한번 입원도 하셨는데 그때 인제 코로나 시절이라서 이제 성모병원에서는 교도관들이 인제 여자 교도관들이 오시면은 이제 병실에 같이 있어야 되니까.
그때 집행정지가 아니고 그냥 외부 진료니까 한 번 들어오시면 3일 동안 있고 나가야 된다. 그러니까 여자 교도관들 보니 인제 아이들 자녀들이 엄마가 집을 3일씩 비우면 아이들이 좀 힘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거기에 인제 난색을 좀 표하니까 뭐 그게 성모병원하고는 잘 절충이 안 됐고 저는 마음은 급하고 빨리 병원을 좀 가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뭐 지역에 있는 병원도 좀 알아봤는데 거긴 대통령이 경호상 조금 어려움이 있고.
◎ 앵커> 혼자 다 알아보신 거예요?
● 유영하> 아니 그건 인제 병원은 구치소 쪽에서 알아보셨죠. 처음에는 당연히 성모병 해서 가실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그러니까 인제 제가 개인적으로 알아볼 수는 없고 이제 구치소 쪽에서 공식적으로 알아봐야 되는 거니까. 그러고 한 번은 삼성병원에서 그러면 삼성병원으로 가시면 어떻겠냐 그래서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 그래서 인제 삼성병원으로 인제 가시게 된 거고. 이제 가셔서 인제 삼성병원 주치의들이 굉장히 세심하게 대통령을 관찰하셨고 여러 가지 협진이라 그러죠. 그런 걸 통해서 캄다운(진정)을 하면서 차츰 안정을 찾으시게 됐고. 그래서 뭐 지금 생각하면은 뭐 참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그리고 그때 구치소 속에서 참 많은 노력을 해 주셨다 생각을 했죠. 그러면서 근데 대통령께서 그때 수감이 벌써 4년 7개월이 넘어가는 그런 기간이었고. 그래서 이 정도 시간이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되셔야 되지 않나 다른 걸 다 떠나서 그게 참 저희가 생각을 못 했습니다. 24일 날 그런 발표가.
◎ 앵커> 사면 발표가 났을 때.
● 유영하> 그리고 전날 기자분들이 몇 분이 전화를 주셨어요. 혹시 뭐 대통령 사면 된다는 얘기를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해서 저는 뭐 들은 적이 없었어요. 근데 밤늦게 제가 또 아는 분한테 혹시 대통령께서 사면 포함되신다는 뭐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도 긴가민가했어요. 긴가민가했고 아침에 이렇게 뭐 뒤척하다 잠이 깨서 인터넷 스마트폰 켜서 검색을 하는데. 동아일보에서 쓴 걸로 기억하는데 그게 단독으로 떴더라고요.
그래서 인제 그때는 뭐냐면 대통령께서 형이 인제 확정돼 기결수 신분이라서 일반 형사 변호사가 접견이 안 됩니다. 뭐 다른 고소 사건이나 또는 민사 형사 사건이. 민사 형사 사건이 인제 있으면은 민사 형사가 아니고 민사 뭐 행정 소송이 변호인 자격으로 주 1회 접견을 할 수 있도록 규정이 돼 있어요.
근데 그중에 구치소 소장이 필요하면 한두 번 정도 더 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근데 그리고 보통 한 달에 4번에서 6번 사이 적게 나오면 1주일에 딱 한 번 가거든요. 한번 가면 9시에 들어가면 한 11시 20분 정도까지 한 2시간 20분 정도 말씀을 나누고 오는데 그때 보면 이미 제가 네 번을 다 접견이 끝난 거에요.
가서 그날 아침에 이제 담당 직원께 인제 저희가 내가 빨리 들어가서 뵈야 될 일이 있으니까. 신청서를 넣을 테니까. 이거 좀 소장님한테 말씀을 좀 드려달라 그래놓고 팩스 보내고 저는 병원으로 들어갔고 근데 직원이 뭐 그게 팩스 보내서 그쪽에서 허락됐다 그래서 가서 근데 아마 대통령께 병원 이제 의사분들 중에 인제 보도를 아침에 보셨을 테니까. 미리 얘기를 드렸던 거 같아요.
제가 들어가니까 대통령께서 ‘혹시 이런 보도가 났는데 알고 있냐 그래서 안 그래도 저도 그것 때문에 들어왔다 근데 그러면서 어제 제 아는 사람이 이런 얘기도 있어서 혹시 사면이 됐을 수도 있다. 근데 발표가 있다고 그러니까 대통령님 인제 티비를 한번 보십시오. 병실에 티비가 있습니다. 있어서 키니까 YTN으로 제가 기억합니다. YTN이었는데 그때 바꾼 게 인장관께서 이렇게 발표하려고 연단에 서류를 만지고 하시는 장면이 잡히더라고요. 그래서 저기 사면 발표다 싶어서 이제 대통님과 같이 봤죠. 그래서 대통령께서 탁 키는데 저는 박범계 장관께서 하신 말씀보다 밑에 자막에 딱 이렇게 딱 뜨더라고요. 그래서 대통령 아마 사면 복권이 되신 것 같습니다. 뭐 담담하게 들으시더라고요. 저도 담담했어요. 하 이게 막상 탁 닥치니까 막 기쁘고 이래야 되는데 뭐라 그래야 되나 뭐 그냥 덤덤하더라고요. 그래서 인제 어쨌든 그럼 이제 사면 조건에 대해서 뭐 청와대 쪽에 혹시 전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의원님 그때 이철희 정무수석에게
◎ 앵커> 사면 얘기가 나왔을 때 당시 이철회 정무 수석한테 전화를 하셨는데 통화가 안 돼서 확인을 못 했다까지는
● 유영하> 아침에 제가 혹시 혹시나 싶어서 했더니, 전화기가 꺼져 있었어요.
◎ 앵커> 엄청 이제 확인 전화가 많이 와서 그랬나 보네요.
● 유영하> 그랬고 발표가 되고 제가 전화하니까 이철희 수석께서 전화를 받으시더라고. 그래서 그 대통령께서 감사하단 말씀이…좀 전해 드려다 드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 앵커> 문재인 대통령한테 전하는 말씀을 이철희 수석한테 먼저?
● 유영하> 처음에 먼저 간단하게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좀 있으니까. 기자들이 이미 알고 병실을 앞에 쭉 서서. 그런데 아는 기자들이 전화 와서 선배 이거 무슨 대통령 뭐 메시지 없습니까? 하고 계속 얘기를 하길래 대통령 기자들한테 아마 어떤 말씀은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그게 뭐 국민한테 드리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대통령께서 받아서 좀 적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제가 여기다 이렇게 받아 적고 그 다음에 수첩에다가 옮겼죠. 옮겨서 그래서 뭐 사면을 해주신 정부 당국에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빠른 시일 내 건강을 회복해서 뵙도록 하겠다. 뭐 하여튼 고런 취지로 인제 말씀을 드렸던 거고요.
그러고 30일 자로 된 거 아닙니까. 그 1주일 동안 교도관들이 계속 있었고, 0시 기준으로 교도관들이 철수하고 청와대 경호실에서 나와서 신병인수를 하니까 그때부터 조금 훨씬 더 인제 좀 심리적으로 조금 편해지셨다.
◎ 앵커> 사면이 된 시점에서 아까 살짝 울컥하셔서 제가 여쭤보기가 조금 더 그렇긴 한데 그때 감정이 얼마나 그러셨을까? 지금 생각이 드는데 그때 이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 쓰신 거는 내가 다 짊어지고 가면 된다.
● 유영하> 그렇죠. 마지막 문구가 ‘모든 건 당신이 지겠다. 그전에 ‘지충호 테러 이후에 삶은 덤으로 살았기 때문에 육신에 대해서는 뭐 더 이상 뭐 그런 게 없다. 이래서 제가 딱 문구 보면서 느낌이 싸했어요. 사실은. 근데 저는 대통령께서 강하시니까 이겨낼 수는 있다. 그런 믿음은 제가 갖고 있었어요. 그렇지만은 사람 일이란 게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렇다고 이걸 어디 가서 뭐 떠벌릴 수 있는 성격도 아니었고 답답했죠. 근데 그거를 그 다음 날 제가 들어가서 거기에 대해서 얘기 드리는 거는 오히려 더 대통령께 자극이 될 수 있다고 그래서 똑같이 했습니다. 아무 그걸 읽은.
◎ 앵커> 그 메모에 대해서 언급하진 않고.
● 유영하> 전혀 안 했죠. 안 하고 그냥 똑같은 얘기를 드리면서 대통령 반응도 조금씩 보면서 그러면서 우습게 얘기도 좀 하고 뭐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은 대통령께서 스스로 이렇게 캄다운(진정)을 하셔야 되지 이건 누가 어떻게 해서 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대통령 뒤에는 늘 대통령을 믿고 따르는 그리고 존경하는 많은 국민들이 있다라는 얘기 뭐 말씀을 드렸고 그러면서 걱정이 되니까. 하루라도 좀 빨리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그런 환경으로 모셔야 되겠다. 이 생각은 해서 그 기간이 한 보름 정도 됐는데 참 길었던 기간 같고요. 만에 하나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될까 이 생각을 저도 이렇게 좀 고민을 해 봤었어요. 그러니까 뭐 그렇다고 제가 어떤 그런 게 아니고 일어났을 때 만약 이게 일어나면 어떻게 일을 이거를 감당을 해야 되고 혼자 별 생각을 다 해봤는데 그건 기우였고 사실 기우였고. 대통령께서 뭐 담담하게 적으셨지만은 함부로 어떤 행동을 하실 분은 절대 아니니까. 그래서 그 긴 시간만 아니면은 저는 그런 불행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그런 믿음을 갖고 있었어요.
◎ 앵커> 회고록이 출간이 되면 이제 좀 더 얘기를 저희가 들어볼 수는 있을 텐데 대통령 박 전 대통령께서 회고록을 쓰시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될까요?
● 유영하> 회고록 쓰시면서 말씀하셨는데 보통의 회고록들은 전부 본인 치적만 얘기를 하세요.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근데 대통령께서는 당신이 뭐 열심히 해서 했던 일은 일대로 또 돌아보셨을 때 이 부분은 참 아쉬운 건 아쉬운 대로 어떤 거 참 후회스러운 일은 후회스러운 대로 그대로 낱낱이 당신 기억에 의존해서 쓰게 말씀하시겠다. 물론 그게 100% 온전하냐? 사람의 기억이면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의도적으로 있는 걸 없는 것처럼 없는 걸 있는 것처럼 말씀을 안 하셨다. 기억에 착각은 있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래서 그렇게 남겨놓으면은 그게 다음 사람들에게 하나의 교훈은 되지 않았을까? 이랬을 때 이런 부분은 이렇게 하면 좋겠다는 그런 거. 그때 당시 탄핵이 되고, 대통령께서 영어의 몸으로 되시면서 수많은 언론의 오버와 억척과 뭐 조롱과 있었지만 단 한마디 제가 변명하거나 거기에 대해서 설명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법정에서 검사님들하고 뭐 변론 과정에서는 치열하게 다퉜지만은 법정 밖에서 얘기를 해본 적이 없어요. 뭐 그거는 당연하다고 생각했고요. 변호사로서. 근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정말 너무 잘못 알려진 부분도 있으니까. 그런 부분 설명을 하시면 판단은 국민들께서 하실 거다 이게 옳다는 게 아니고 그때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이렇게 됐다. 그럼 몰랐다고 뭐 그게 변명이 되냐 이런 분들이 있는데 모른 걸 몰랐다 그러지 뭐 모르는 걸 안다고 얘기를 합니까? 몰랐기 때문에 몰랐다는 거다 그 몰랐던 것이 잘못됐다. 그것도 잘못된 거다 그럼 좀 그건 받아들이기 때문에 뭐 몰랐던 것이 잘못된 그것도 몰랐던 건 잘못된 거 아니에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죠. 몰랐던 것을 알았다고 말씀하실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 앵커> 이 질문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아요. 회고록 출판기념회가 사실 총선 두 달 앞두고 이제 나오는 바람에 총선 역할론 얘기가 지금.
● 유영하> 이게 참 저희가 처음에 이 회고록을 하기로 했던 게 지금은 인제 한 2년 전이 됐죠 벌써 2022년도 됐으니까. 그때 해서 조금 준비가 더뎠죠. 왜냐면은 어떤 형태로 회고록을 만들 건지 또 어떻게 대통령께서 아젠다별로 설명을 하실건지 시간 순서대로 설명하실 건지 그래서 또 자료도 찾아. 저희가 대통령께서 정상적으로 퇴임하셨으면 관련 자료들을 좀 일부러 갖고 계셨을 건데 그 정신없이 나오신 바람에 자료가 있을 수가 없죠. 그러니까 이제 사실 그때 청와대 일정표를 전부 출력을 해서 그때 당시에 있었던 일 순서대로 뭐 어떤 언론 기사도 찾고 대통령 기억도 되살리고 좀 집필 과정이 좀 많이 걸렸어요. 그런 데다가 이게 책은 출판사가 내지 우리가 어떻게 뭐 여기까지 마치자 이게 아니었거든요. 하다 보니까, 자꾸 분량이 좀 늘어나게 됐고.
◎ 앵커> 혹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원 유세는?
● 유영하> 아니요. 그거는 뭐 대통령께서 저 개인을 위해서 뭐 저는 사무실 개소식도
안 합니다.
◎ 앵커> 아 개소식 안 하세요?
● 유영하> 안 하고 뭐 저는 항상 공천 끝나고 후보 등록하기 전에 개소식을 했어요. 이번에도 그렇게 할 겁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할 거고. 개소식을 하더라도 대통령 모시지는 않을 거예요. 대통령 오신다 하면요 일대 교통 마비될 겁니다. 그리고 행사 진행보다 대통령 경호상 문제가 있어서 근데 있을 수도 없고요. 그냥 제가 행사하고 나중에 뭐 따로 이렇게 했습니다. 말씀드릴 수 있고 근데 이제 정치가 생물이니까. 제 걸 빼고 이거 제 거는 아닙니다. 빼고 인제 선거가 막판으로 갈수록 치열해지고, 또 뭐 여러 변수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때 뭐 여당 측에서.
◎ 앵커> 요청이 오면?
● 유영하> 혹시 뭐 대통령께 이런 요청 오면은 대통령께서 보시고 이건 내가 꼭 도와야 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들고 또 그래야만 이 나라를 위해서 이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시면은 뭐 하실 수는 있겠죠. 그렇지만 예전처럼 어느 지역 가서 이 후보를 당선시켜 주세요. 뭐 이렇게 하시는 건 체력상 문제가 있다. 메시지든 아니면 뭐 다른 뭐 그거보단 조금 약한 강도로 하실 수는 있겠죠.
◎ 앵커> 약한 강도가 뭐가 있을 수 있죠?
● 유영하> 뭐 예를 들면, 시장을 가시거나.
● 유영하> 그런 여지는 있을 수 있다. 제 개인 생각이지만은 그럴 수 있다는 거지 꼭 그렇게 된다는 건 아닙니다.
◎ 앵커> 네 박근혜 전 대통령이랑 윤석열 대통령 지난해 한 세 번 만나셨어요.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셨을 텐데 그때 어떤 인상을 좀 받으셨어요?
● 유영하> 그러니까 좀 두 분께서 서로에 대해서 되게 각별하게
◎ 앵커> 각별하게?
● 유영하> 각별한 깍듯하게 용어가 좀 근데 깍듯하게 그렇게 대하신다 느낌.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이 굉장히 세심하게 대통령께 대하신다 느낌은 받았습니다. 그럼 저뿐만 아니라 그때 뭐 있던 분들도 같은 느낌을 받았을 거에요.
◎ 앵커> 이준석 대표 잠깐 얘기를 할게요. 이준석 대표가 개혁신당 만들면서 특히 출마하시는 대구 지역은 본인들이 좀 되게 집중해서 좀 할려고.
● 유영하> 제가 그냥 다 말씀을 드리면은 그렇게 크게 영향은 없지 않겠나 보거든요. 개인에 대한 뭐 역량은 저는 높이 평가합니다. 이 대표에 대해서 뭐 여러 가지 뭐 다른 뭐 그런 걸 떠나서 좀 아젠다 선점하는 능력이나 이런 게 되게 뛰어났다고 제가 보고 있고요. 다만 지역구 출마는 이준석 대표가 하실지 모르겠는데 본인 혼자 하시면 본인의 역량은 어느 정도 있을 겁니다만 당선권에 들기는 좀 어렵겠다. 보고.
◎ 앵커> 본인도?
● 유영하> 예. 나머지 후보들에 대해서는 어떤 분이 나오실지 몰라서 제가 평가하기가 좀 어렵습니다만은 유의미한 득표율은 없지 않겠나하는.
◎ 앵커> 개혁신당의 번호를 달고 TK에서?
● 유영하> 아주 탁월한 정말로 뭐 눈이 번쩍 뜨인 후보가 있어서 개인 경영이 정말 탁월하다 그러면 모를까 뭐 그런 탁월한 분들이 개혁신당에서 몇 분이 가실지 모르겠지마는 설사 그런 분들이 오셨다 그래도 뭐 그렇게 유의미한 투표율은 없을거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 문제는 거기까지만.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본 영상의 타이틀곡과 BGM의 저작권은 MBN에 있습니다
*인터뷰 인용 보도시 MBN 유튜브 <지하세계-나는 정치인이다> 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MBN에 있습니다.
[클립 4 ] 유영하 눈물 펑펑 쏟은 사연
박근혜가 감옥에서 준 쪽지 "덤으로 삶이기에 육신엔…"
◎ 앵커> 박근혜 대통령 건강은 많이 회복 되셨나요?
● 유영하> 일상생활 하실 정도의 건강은 회복되셨고요. 예전 건강이 100이라 그러면 한 90프로 이상은 회복되셨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열심히 하십니다. 운동도 하시고 재활도 열심히 하시고 스케줄 따라 정말 철저하게 자기관리가 철저하신 분이라서 뭐 저는 앞으로 생활하시는 데는 크게 뭐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다.
◎ 앵커> 이제 박 전 대통령 뵙는 게 조금 1주일에 횟수가 좀 줄어들겠네요. 그동안은 좀 어떻게 보셨어요?
● 유영하> 출마 선언하고 그날, 그 전날 아마 제가 잠깐 들어갔다 온 것 같습니다. 제가 내일 출마 선언합니다. 그렇게 말씀을 드리고 이제 혹시 인제 뭐 혹시 대통령님께 심부름 시킬 일 있으면은 제가 낮하고 평일 때는 조금 다녀야 되니까. 저녁 좀 늦게 들어와서 이렇게 뭐 말씀 주시면 와서 뵙겠습니다. 근데 그분 성격에 아마 제가 좀 늦게 출마 선언했고 또 선거 운동으로 좀 바쁠 거다 이렇게 생각하시면은 안 하실 겁니다. 제가 볼 때는. 오히려 제가 뭐 전화드려서. 왜냐면 스케줄 따라 이렇게 좀 챙겨드릴 부분이 제 머릿속에 기억되는 게 있거든요.
◎ 앵커> 뭐가 있어요?
● 유영하> 뭐 있습니다. 그냥 있는데, 그건 인제 제가 날짜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이건 어떻게 하셨냐 이렇게 여쭤볼 수 있겠죠. 그렇지만 먼저 저한테 전화해서 이거 이렇게 해주세요. 이렇게 말씀 말씀은 아마 대통령 성격상 저는 안 할 거라고 봅니다.
◎ 앵커> 그러면 출마 선언하시기 전에는 자주 일주일에 자주?
● 유영하 일주일에 두세 번 가기도 하고, 적을 때는 열흘에 한번 가지만, 거의 평균적으로 한두 번은 들어가 뵙죠. 그런데 이 지금 회고록 하면서는 좀 자주 들어갔었죠. 왜냐면은 대통령이 이제 구술하시고, 이제 구술을 정리한 걸 중앙일보에서 넘겨주면은 또 그게 오탈자도 좀 봐야 되고 또 내용 자체가 또 정확한 건지 뭐 자료도 좀 봐야 되고 이러니까. 좀 자주 들어갔던 거 같아요.
◎ 앵커> 회고록은 2월 5일 날 나오는 거죠?
● 유영하> 제가 듣기로는 하여튼 2월 초에 뭐 출간 초간이 나온다고 들었어요.
◎ 앵커> 근데 거기서 이제 박 전 대통령이 유영하 변호사를 접견했을 때 본인이 이제 감옥에서 잘 버티시다가 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한계에 부딪쳤을 때 쪽지를 하나 전달했다.
● 유영하> 쪽지가 아니고 A4 용지 정도 크기의 종이에 적어서. 아유 죄송합니다.
뭘 주셨죠 뭘 주셨는데 그 안에서는 제가 못 봤고.
◎ 앵커>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우셨을 것 같아요. 그 내용.
● 유영하> 그게 2016년 10월 말 11월 초. (눈물)
◎ 앵커> 그걸 보고 마음이 그렇더라고요. 그럼 A4 용지에 한 몇 줄 정도를 쓰신 거에요. 자필로?
● 유영하> 한 바닥 정도 되죠. 한 바닥 정도 되는데 이제 쭉 쓰시면서 마지막에 인제
어떤 말씀을 하셨어요. 별로 느낌이 안 좋았죠. 원래 강하신 분이고 또 한 번도 그런
뭐 약한 모습을 보여주신 적도 없고 그래서 할 방법이 생각이 안 났어요.
◎ 앵커> 막막하셨을 것 같아요. 그거 읽으셨을 때는.
● 유영하> 누구랑 뭐 상의를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그래서 그때 담당 교도관한테 제가 뭐 내용은 설명을 안 하고 ‘많이 힘들어하신다, 몸도 안 좋으시고 그래서 어떻게 병원에서 조금 이렇게 몸을 돌볼 그런 게 해줄 수 있냐 이렇게 이제 얘기를 건넸고 아마 구치소 측에서도 여러 가지 판단을 해서 교정본부에 건의를 했고요. 다행히 교정본부에서 그걸 받아들여서 그때 원래 성모병원에서 대통령께서 수술도 하셨고 또 중간에 한번 입원도 하셨는데 그때 인제 코로나 시절이라서 이제 성모병원에서는 교도관들이 인제 여자 교도관들이 오시면은 이제 병실에 같이 있어야 되니까.
그때 집행정지가 아니고 그냥 외부 진료니까 한 번 들어오시면 3일 동안 있고 나가야 된다. 그러니까 여자 교도관들 보니 인제 아이들 자녀들이 엄마가 집을 3일씩 비우면 아이들이 좀 힘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거기에 인제 난색을 좀 표하니까 뭐 그게 성모병원하고는 잘 절충이 안 됐고 저는 마음은 급하고 빨리 병원을 좀 가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뭐 지역에 있는 병원도 좀 알아봤는데 거긴 대통령이 경호상 조금 어려움이 있고.
◎ 앵커> 혼자 다 알아보신 거예요?
● 유영하> 아니 그건 인제 병원은 구치소 쪽에서 알아보셨죠. 처음에는 당연히 성모병 해서 가실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그러니까 인제 제가 개인적으로 알아볼 수는 없고 이제 구치소 쪽에서 공식적으로 알아봐야 되는 거니까. 그러고 한 번은 삼성병원에서 그러면 삼성병원으로 가시면 어떻겠냐 그래서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 그래서 인제 삼성병원으로 인제 가시게 된 거고. 이제 가셔서 인제 삼성병원 주치의들이 굉장히 세심하게 대통령을 관찰하셨고 여러 가지 협진이라 그러죠. 그런 걸 통해서 캄다운(진정)을 하면서 차츰 안정을 찾으시게 됐고. 그래서 뭐 지금 생각하면은 뭐 참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그리고 그때 구치소 속에서 참 많은 노력을 해 주셨다 생각을 했죠. 그러면서 근데 대통령께서 그때 수감이 벌써 4년 7개월이 넘어가는 그런 기간이었고. 그래서 이 정도 시간이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되셔야 되지 않나 다른 걸 다 떠나서 그게 참 저희가 생각을 못 했습니다. 24일 날 그런 발표가.
◎ 앵커> 사면 발표가 났을 때.
● 유영하> 그리고 전날 기자분들이 몇 분이 전화를 주셨어요. 혹시 뭐 대통령 사면 된다는 얘기를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해서 저는 뭐 들은 적이 없었어요. 근데 밤늦게 제가 또 아는 분한테 혹시 대통령께서 사면 포함되신다는 뭐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도 긴가민가했어요. 긴가민가했고 아침에 이렇게 뭐 뒤척하다 잠이 깨서 인터넷 스마트폰 켜서 검색을 하는데. 동아일보에서 쓴 걸로 기억하는데 그게 단독으로 떴더라고요.
그래서 인제 그때는 뭐냐면 대통령께서 형이 인제 확정돼 기결수 신분이라서 일반 형사 변호사가 접견이 안 됩니다. 뭐 다른 고소 사건이나 또는 민사 형사 사건이. 민사 형사 사건이 인제 있으면은 민사 형사가 아니고 민사 뭐 행정 소송이 변호인 자격으로 주 1회 접견을 할 수 있도록 규정이 돼 있어요.
근데 그중에 구치소 소장이 필요하면 한두 번 정도 더 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근데 그리고 보통 한 달에 4번에서 6번 사이 적게 나오면 1주일에 딱 한 번 가거든요. 한번 가면 9시에 들어가면 한 11시 20분 정도까지 한 2시간 20분 정도 말씀을 나누고 오는데 그때 보면 이미 제가 네 번을 다 접견이 끝난 거에요.
가서 그날 아침에 이제 담당 직원께 인제 저희가 내가 빨리 들어가서 뵈야 될 일이 있으니까. 신청서를 넣을 테니까. 이거 좀 소장님한테 말씀을 좀 드려달라 그래놓고 팩스 보내고 저는 병원으로 들어갔고 근데 직원이 뭐 그게 팩스 보내서 그쪽에서 허락됐다 그래서 가서 근데 아마 대통령께 병원 이제 의사분들 중에 인제 보도를 아침에 보셨을 테니까. 미리 얘기를 드렸던 거 같아요.
제가 들어가니까 대통령께서 ‘혹시 이런 보도가 났는데 알고 있냐 그래서 안 그래도 저도 그것 때문에 들어왔다 근데 그러면서 어제 제 아는 사람이 이런 얘기도 있어서 혹시 사면이 됐을 수도 있다. 근데 발표가 있다고 그러니까 대통령님 인제 티비를 한번 보십시오. 병실에 티비가 있습니다. 있어서 키니까 YTN으로 제가 기억합니다. YTN이었는데 그때 바꾼 게 인장관께서 이렇게 발표하려고 연단에 서류를 만지고 하시는 장면이 잡히더라고요. 그래서 저기 사면 발표다 싶어서 이제 대통님과 같이 봤죠. 그래서 대통령께서 탁 키는데 저는 박범계 장관께서 하신 말씀보다 밑에 자막에 딱 이렇게 딱 뜨더라고요. 그래서 대통령 아마 사면 복권이 되신 것 같습니다. 뭐 담담하게 들으시더라고요. 저도 담담했어요. 하 이게 막상 탁 닥치니까 막 기쁘고 이래야 되는데 뭐라 그래야 되나 뭐 그냥 덤덤하더라고요. 그래서 인제 어쨌든 그럼 이제 사면 조건에 대해서 뭐 청와대 쪽에 혹시 전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의원님 그때 이철희 정무수석에게
◎ 앵커> 사면 얘기가 나왔을 때 당시 이철회 정무 수석한테 전화를 하셨는데 통화가 안 돼서 확인을 못 했다까지는
● 유영하> 아침에 제가 혹시 혹시나 싶어서 했더니, 전화기가 꺼져 있었어요.
◎ 앵커> 엄청 이제 확인 전화가 많이 와서 그랬나 보네요.
● 유영하> 그랬고 발표가 되고 제가 전화하니까 이철희 수석께서 전화를 받으시더라고. 그래서 그 대통령께서 감사하단 말씀이…좀 전해 드려다 드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 앵커> 문재인 대통령한테 전하는 말씀을 이철희 수석한테 먼저?
● 유영하> 처음에 먼저 간단하게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좀 있으니까. 기자들이 이미 알고 병실을 앞에 쭉 서서. 그런데 아는 기자들이 전화 와서 선배 이거 무슨 대통령 뭐 메시지 없습니까? 하고 계속 얘기를 하길래 대통령 기자들한테 아마 어떤 말씀은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그게 뭐 국민한테 드리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대통령께서 받아서 좀 적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제가 여기다 이렇게 받아 적고 그 다음에 수첩에다가 옮겼죠. 옮겨서 그래서 뭐 사면을 해주신 정부 당국에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빠른 시일 내 건강을 회복해서 뵙도록 하겠다. 뭐 하여튼 고런 취지로 인제 말씀을 드렸던 거고요.
그러고 30일 자로 된 거 아닙니까. 그 1주일 동안 교도관들이 계속 있었고, 0시 기준으로 교도관들이 철수하고 청와대 경호실에서 나와서 신병인수를 하니까 그때부터 조금 훨씬 더 인제 좀 심리적으로 조금 편해지셨다.
◎ 앵커> 사면이 된 시점에서 아까 살짝 울컥하셔서 제가 여쭤보기가 조금 더 그렇긴 한데 그때 감정이 얼마나 그러셨을까? 지금 생각이 드는데 그때 이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 쓰신 거는 내가 다 짊어지고 가면 된다.
● 유영하> 그렇죠. 마지막 문구가 ‘모든 건 당신이 지겠다. 그전에 ‘지충호 테러 이후에 삶은 덤으로 살았기 때문에 육신에 대해서는 뭐 더 이상 뭐 그런 게 없다. 이래서 제가 딱 문구 보면서 느낌이 싸했어요. 사실은. 근데 저는 대통령께서 강하시니까 이겨낼 수는 있다. 그런 믿음은 제가 갖고 있었어요. 그렇지만은 사람 일이란 게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렇다고 이걸 어디 가서 뭐 떠벌릴 수 있는 성격도 아니었고 답답했죠. 근데 그거를 그 다음 날 제가 들어가서 거기에 대해서 얘기 드리는 거는 오히려 더 대통령께 자극이 될 수 있다고 그래서 똑같이 했습니다. 아무 그걸 읽은.
◎ 앵커> 그 메모에 대해서 언급하진 않고.
● 유영하> 전혀 안 했죠. 안 하고 그냥 똑같은 얘기를 드리면서 대통령 반응도 조금씩 보면서 그러면서 우습게 얘기도 좀 하고 뭐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은 대통령께서 스스로 이렇게 캄다운(진정)을 하셔야 되지 이건 누가 어떻게 해서 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대통령 뒤에는 늘 대통령을 믿고 따르는 그리고 존경하는 많은 국민들이 있다라는 얘기 뭐 말씀을 드렸고 그러면서 걱정이 되니까. 하루라도 좀 빨리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그런 환경으로 모셔야 되겠다. 이 생각은 해서 그 기간이 한 보름 정도 됐는데 참 길었던 기간 같고요. 만에 하나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될까 이 생각을 저도 이렇게 좀 고민을 해 봤었어요. 그러니까 뭐 그렇다고 제가 어떤 그런 게 아니고 일어났을 때 만약 이게 일어나면 어떻게 일을 이거를 감당을 해야 되고 혼자 별 생각을 다 해봤는데 그건 기우였고 사실 기우였고. 대통령께서 뭐 담담하게 적으셨지만은 함부로 어떤 행동을 하실 분은 절대 아니니까. 그래서 그 긴 시간만 아니면은 저는 그런 불행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그런 믿음을 갖고 있었어요.
◎ 앵커> 회고록이 출간이 되면 이제 좀 더 얘기를 저희가 들어볼 수는 있을 텐데 대통령 박 전 대통령께서 회고록을 쓰시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될까요?
● 유영하> 회고록 쓰시면서 말씀하셨는데 보통의 회고록들은 전부 본인 치적만 얘기를 하세요.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근데 대통령께서는 당신이 뭐 열심히 해서 했던 일은 일대로 또 돌아보셨을 때 이 부분은 참 아쉬운 건 아쉬운 대로 어떤 거 참 후회스러운 일은 후회스러운 대로 그대로 낱낱이 당신 기억에 의존해서 쓰게 말씀하시겠다. 물론 그게 100% 온전하냐? 사람의 기억이면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의도적으로 있는 걸 없는 것처럼 없는 걸 있는 것처럼 말씀을 안 하셨다. 기억에 착각은 있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래서 그렇게 남겨놓으면은 그게 다음 사람들에게 하나의 교훈은 되지 않았을까? 이랬을 때 이런 부분은 이렇게 하면 좋겠다는 그런 거. 그때 당시 탄핵이 되고, 대통령께서 영어의 몸으로 되시면서 수많은 언론의 오버와 억척과 뭐 조롱과 있었지만 단 한마디 제가 변명하거나 거기에 대해서 설명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법정에서 검사님들하고 뭐 변론 과정에서는 치열하게 다퉜지만은 법정 밖에서 얘기를 해본 적이 없어요. 뭐 그거는 당연하다고 생각했고요. 변호사로서. 근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정말 너무 잘못 알려진 부분도 있으니까. 그런 부분 설명을 하시면 판단은 국민들께서 하실 거다 이게 옳다는 게 아니고 그때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이렇게 됐다. 그럼 몰랐다고 뭐 그게 변명이 되냐 이런 분들이 있는데 모른 걸 몰랐다 그러지 뭐 모르는 걸 안다고 얘기를 합니까? 몰랐기 때문에 몰랐다는 거다 그 몰랐던 것이 잘못됐다. 그것도 잘못된 거다 그럼 좀 그건 받아들이기 때문에 뭐 몰랐던 것이 잘못된 그것도 몰랐던 건 잘못된 거 아니에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죠. 몰랐던 것을 알았다고 말씀하실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 앵커> 이 질문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아요. 회고록 출판기념회가 사실 총선 두 달 앞두고 이제 나오는 바람에 총선 역할론 얘기가 지금.
● 유영하> 이게 참 저희가 처음에 이 회고록을 하기로 했던 게 지금은 인제 한 2년 전이 됐죠 벌써 2022년도 됐으니까. 그때 해서 조금 준비가 더뎠죠. 왜냐면은 어떤 형태로 회고록을 만들 건지 또 어떻게 대통령께서 아젠다별로 설명을 하실건지 시간 순서대로 설명하실 건지 그래서 또 자료도 찾아. 저희가 대통령께서 정상적으로 퇴임하셨으면 관련 자료들을 좀 일부러 갖고 계셨을 건데 그 정신없이 나오신 바람에 자료가 있을 수가 없죠. 그러니까 이제 사실 그때 청와대 일정표를 전부 출력을 해서 그때 당시에 있었던 일 순서대로 뭐 어떤 언론 기사도 찾고 대통령 기억도 되살리고 좀 집필 과정이 좀 많이 걸렸어요. 그런 데다가 이게 책은 출판사가 내지 우리가 어떻게 뭐 여기까지 마치자 이게 아니었거든요. 하다 보니까, 자꾸 분량이 좀 늘어나게 됐고.
◎ 앵커> 혹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원 유세는?
● 유영하> 아니요. 그거는 뭐 대통령께서 저 개인을 위해서 뭐 저는 사무실 개소식도
안 합니다.
◎ 앵커> 아 개소식 안 하세요?
● 유영하> 안 하고 뭐 저는 항상 공천 끝나고 후보 등록하기 전에 개소식을 했어요. 이번에도 그렇게 할 겁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할 거고. 개소식을 하더라도 대통령 모시지는 않을 거예요. 대통령 오신다 하면요 일대 교통 마비될 겁니다. 그리고 행사 진행보다 대통령 경호상 문제가 있어서 근데 있을 수도 없고요. 그냥 제가 행사하고 나중에 뭐 따로 이렇게 했습니다. 말씀드릴 수 있고 근데 이제 정치가 생물이니까. 제 걸 빼고 이거 제 거는 아닙니다. 빼고 인제 선거가 막판으로 갈수록 치열해지고, 또 뭐 여러 변수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때 뭐 여당 측에서.
◎ 앵커> 요청이 오면?
● 유영하> 혹시 뭐 대통령께 이런 요청 오면은 대통령께서 보시고 이건 내가 꼭 도와야 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들고 또 그래야만 이 나라를 위해서 이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시면은 뭐 하실 수는 있겠죠. 그렇지만 예전처럼 어느 지역 가서 이 후보를 당선시켜 주세요. 뭐 이렇게 하시는 건 체력상 문제가 있다. 메시지든 아니면 뭐 다른 뭐 그거보단 조금 약한 강도로 하실 수는 있겠죠.
◎ 앵커> 약한 강도가 뭐가 있을 수 있죠?
● 유영하> 뭐 예를 들면, 시장을 가시거나.
● 유영하> 그런 여지는 있을 수 있다. 제 개인 생각이지만은 그럴 수 있다는 거지 꼭 그렇게 된다는 건 아닙니다.
◎ 앵커> 네 박근혜 전 대통령이랑 윤석열 대통령 지난해 한 세 번 만나셨어요.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셨을 텐데 그때 어떤 인상을 좀 받으셨어요?
● 유영하> 그러니까 좀 두 분께서 서로에 대해서 되게 각별하게
◎ 앵커> 각별하게?
● 유영하> 각별한 깍듯하게 용어가 좀 근데 깍듯하게 그렇게 대하신다 느낌.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이 굉장히 세심하게 대통령께 대하신다 느낌은 받았습니다. 그럼 저뿐만 아니라 그때 뭐 있던 분들도 같은 느낌을 받았을 거에요.
◎ 앵커> 이준석 대표 잠깐 얘기를 할게요. 이준석 대표가 개혁신당 만들면서 특히 출마하시는 대구 지역은 본인들이 좀 되게 집중해서 좀 할려고.
● 유영하> 제가 그냥 다 말씀을 드리면은 그렇게 크게 영향은 없지 않겠나 보거든요. 개인에 대한 뭐 역량은 저는 높이 평가합니다. 이 대표에 대해서 뭐 여러 가지 뭐 다른 뭐 그런 걸 떠나서 좀 아젠다 선점하는 능력이나 이런 게 되게 뛰어났다고 제가 보고 있고요. 다만 지역구 출마는 이준석 대표가 하실지 모르겠는데 본인 혼자 하시면 본인의 역량은 어느 정도 있을 겁니다만 당선권에 들기는 좀 어렵겠다. 보고.
◎ 앵커> 본인도?
● 유영하> 예. 나머지 후보들에 대해서는 어떤 분이 나오실지 몰라서 제가 평가하기가 좀 어렵습니다만은 유의미한 득표율은 없지 않겠나하는.
◎ 앵커> 개혁신당의 번호를 달고 TK에서?
● 유영하> 아주 탁월한 정말로 뭐 눈이 번쩍 뜨인 후보가 있어서 개인 경영이 정말 탁월하다 그러면 모를까 뭐 그런 탁월한 분들이 개혁신당에서 몇 분이 가실지 모르겠지마는 설사 그런 분들이 오셨다 그래도 뭐 그렇게 유의미한 투표율은 없을거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 문제는 거기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