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신분증 요구했더니 집안으로 끌고가"…여성 배달원이 겪은 일
입력 2024-01-10 14:47  | 수정 2024-01-10 14:48
배달 라이더 자료화면,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 사진 = 매일경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신간 '일하다 아픈 여자들'에 실린 내용

"술을 시킨 미성년자에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집으로 끌고 가 두개골에 금이 갈 정도로 맞았습니다."

대학생 지수 씨가 겪은 사연입니다.

지수 씨는 학원 강사 일을 반년 정도 하다 학부모와의 상담, 학생 성적 향상 등에 대한 압박으로 그만두고 배달 일을 시작했습니다. 낮에는 공부를 하고, 자정부터 오전 8시까지 오토바이를 탔습니다.

1년 6개월간 배달일을 하며 지수 씨는 험한 일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미성년자에게 감금당해 맞는가 하면, 50대 남성이 음식값을 주지 않고서 줬다며 구타해 병원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지수 씨의 사연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기획한 책 '일하다 아픈 여자들: 왜 여성의 산재는 잘 드러나지 않는가?'에 실렸습니다.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등 저자 6명은 산재 위험에 노출된 여성 노동자 19명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관련 통계를 분석해 책에 담았습니다.

책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 6월까지 18~24세 청년의 산업재해 사망 1위 직종은 배달 라이더로, 전체 사망자 72명 중 44%를 차지합니다. 불안정한 고용조건, 건별로 책정되는 치열한 경쟁, 묶음 배달 등이 산재의 원인으로 분석됩니다.

그러나 여성 배달자들은 이런 산재나 공상처리(회사에서 치료비만 받는 것)를 받는 경우가 극히 드물고, 폭행 사건이 외부로 잘 알려지지도 않습니다.

여기에는 회사 측의 주도면밀한 '작업'도 있지만, 남성 동료에게 받는 배척도 작용한다고 합니다.

'여자 애들이 꼭 배달하다가 저런 사고 쳐서 그걸로 회삿돈 타 먹는다', '여자애들은 운전도 잘 못 하는데 왜 채용하는지 모르겠다' 등의 시선 때문에 눈치가 보여서 (산재나 공상처리 요구를) 잘 못 하게 된다는 게 지수 씨의 설명입니다.

객실 승무원 자료화면,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 사진 = MBN

객실 승무원 유진 씨의 사연도 담겼습니다.

26년 차 객실 승무원인 유진 씨는 일을 능숙해졌지만, 여기저기 관절이 좋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 더 큰 걱정으로 다가오는 것은 방사선 피폭입니다. 2010년 이후 우주방사선이 많은 북극지방을 통과하는 항로가 늘면서 승무원들의 불안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2020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발표한 '생활 주변 방사선 안전 관리 실태 조사 보고서'를 보면 객실 승무원 우주 방사선 평균 피폭선량은 2019년 평균 3.03mSv(밀리시버트)에 달합니다.

안전 관리 규정 수치(6mSv)를 넘지 않지만, 이는 1년 치 피폭선량만 조사한 결과입니다. 전체 근무 기간 누적 피폭선량은 선임의 경우, 기준치를 훌쩍 상회할 것으로 저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각종 연구에 따르면, 지속적인 누적 피폭선량은 주로 노년기 암 발생 빈도에 영향을 미칩니다. 유진 씨도 "방사선이 몸에 쌓이면 암 발생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합니다.

책은 이 외에도 장애 여성 노동자, 성소수자 노동자, 산재 피해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으며 '일하다 아픈 여자들'의 산재 문제를 짚었습니다.

저자들은 인터뷰를 통해 "여성 노동자의 산업재해가 아픈 몸이라는 자책과 쓸모없는 노동력이라는 사회의 낙인으로 주로 구성되었음을 확인했다"며 "여성 노동자의 건강에 자본과 국가의 책임을 다시 묻는 일"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최유나 디지털뉴스 기자 chldbskcjstk@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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