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주하의 '그런데'] 산업스파이가 활개치는 이유
입력 2023-12-14 19:54  | 수정 2023-12-14 20:01
중국 국가안전부 요원 쉬옌쥔은 2013년 과학기술증진협회 인사로 위장하고 미국을 무대로 산업스파이 활동을 합니다.
미국인들을 초청해 환심을 사고, GE항공의 기술자를 매수해 첨단 제트 엔진 기술을 빼돌리려 하지만, 적발돼 오하이오주 연방법원에서 징역 20년형을 선고 받습니다.

실제 기술을 빼돌린 것도 아니고 시도만 했는데도 이런 중형이 내려진 건 1996년 제정된 경제스파이법 때문입니다.

이 법은 매우 엄격해 자국의 기술 유출로 인한 예상 피해액까지 다 따져 최대 33년 9개월의 징역형까지 내리게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아닙니다.
자원이 없어 그저 기술력에 의존하는데도 기술 유출에 참 관대합니다.

특허청 기술경찰이 2019년 3월 수사업무 개시 이후 지난 10월까지 전수 분석해 봤더니, 산업재산권 침해 사범 1천310명 중 벌금형 이상 처벌을 받은 피의자는 31명뿐. 그것도 달랑 4명만 징역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거든요.


법 자체도 산업스파이들이 우습게 여길 정도로 형량이 낮고 허술하지만, 법원은 이런저런 이유로 감경까지 해줍니다.

국가 핵심 기술을 유출한 경우만 봐도 형량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인데 법원은 초범이라서,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어서 등 가능한 모든 이유를 끌어와 형량을 낮춰줍니다.

심지어 피해를 당한 회사가 영업비밀 관리를 소홀히 했다거나 피해액을 정확하게 산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도 형량을 줄여줍니다.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미국이 아닌 한국으로 송환되길 바라지 않을까요?

왜냐고요, 미국에서 처벌을 받으면 개별 범죄마다 형을 매겨 합산하기에 최대 징역 100년까지 받을 수 있지만, 한국에선 대부분 경제사범들의 형량이 얼마 안 되거든요.

심지어는 하루 7,700만 원짜리 노역으로 벌금을 탕감해주는 일도 있었죠.

기술유출 뿐만이 아니라 사기범, 경제사범에게도 다 한국은 참 좋은 나라인 겁니다.
겁없이 범죄를 시도해 볼 만한 나라인 거죠.

좋은 나라는 선량한 사람이 법 없이도 살 수 있어야하건만 우린 범죄자들이 법이 있어도 활개를 칠 수 있으니 뭔가 잘못된 게 확실하죠.

대통령이 네덜란드까지 찾아가 세계 1위 반도체 장비 기업을 만나고 글로벌 반도체 공급 동맹을 맺으면 뭐합니까.

어렵게 확보한 핵심 기술이 새나가면 말짱 도루묵인 걸요.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산업스파이가 활개치는 이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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