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주요 선거마다 2030세대를 갈라놓던 뜨거운 감자 '여성 징병제'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과 금태섭 전 의원이 손잡고 창당을 선언한 '새로운 선택'이 성별 갈등 해결책으로 남녀 병역 평등을 제안한 겁니다.
류 의원은 "보통 젠더갈등에 대해 일각의 커뮤니티에서 그냥 단지 화가 나서 여자도 군대 가라고 말씀을 하시곤 하는데 그런 취지에서 말한 건 아니"라며 "성평등을 얘기하는 정치 집단이라면 가사에서의 성평등도, 병역에서의 성평등도 논제로 꺼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진 = 새로운선택 제공 자료 캡처
'새로운 선택'은 덴마크의 저명한 정치학자 요스타 에스핑 앤더슨의 이론을 빌려 남성이 독점하던 노동시장에 여성이 참여하게 된 '제 1차 성평등'이 실현됐고, 현재 여성에게 떠맡겨진 육아·돌봄 같은 가사노동에 남성이 참여하는 '제 2차 성평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남성 독박 징병', '여성 독박 가사'라는 전통적 성 역할에서 탈피해야 성 평등이 실현된다는 얘기입니다.
챗GPT "여성 징병제, 성 평등 증진 역할"
사진 = 뤼튼 캡처(챗GPT4)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도 "여성 징병제는 여러 방면에서 성 평등을 증진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남성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군대에서 여성에게도 군사 훈련과 경험을 제공하고, 이로 인해 여성이 새로운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게 이유입니다.
챗GPT는 또 "성별에 따른 역할이 있다는 사회적 규범을 깨뜨리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며 "여성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줄이고 성 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공정성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챗GPT는 "남성에게만 부과되는 병역 의무는 사회적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도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아울러 ▲인구 감소에 따른 병역 자원 부족에 대비 ▲군대 내에서의 다양성 증진 ▲의료, 통신, 정보 분석 등 비전투분야에서의 역할 등을 통해 전반적인 국방력 증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여성, 체력적으로 불리해"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 자료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반면, 여성 징병제에 반대하는 이유도 설명했습니다.
먼저 챗GPT는 "여성과 남성의 물리적·생리적 차이가 여성 징병제 도입에 반대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라며 "여성의 경우 남성에 비해 체력적으로 불리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생리 주기와 관련된 특성을 고려하면 군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며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를 언급했습니다.
또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이 군대에 간다'는 게 여전히 낯선 개념이기 때문에 여성 징병제 도입이 쉽지 않을 수 있다"면서 "여성이 병역 의무를 이행하게 되면 결혼, 출산에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현재 남성 중심의 군사 시스템을 여성을 수용하기 위해 새롭게 바꾸려면, 국방 예산 부담이 증가한다고 봤습니다. 여성 징병제를 도입할 때 생길 현실적인 문제점을 지적한 겁니다.
실제로 여성 징병제가 도입된 경우 생긴 문제점을 물었더니 "일부 국가의 군대에서는 여성 복무자들이 성폭력을 당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성폭력 문제'와 "여성 복무자들이 동등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남성 복무자들보다 인정을 덜 받는 경우가 있다"며 '성차별 문제'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챗GPT는 각기 다른 질문에도 공통적으로 여성 징병제 도입이 실제 성 평등 증진에 도움이 되려면 군대 내에서의 성 평등 문화와 관련 정책이 함께 변화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여성 징병제' 실시하는 곳은?
지난 8일(현지시간) 가자시티에 모여 있는 이스라엘 군인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 사진 = 연합뉴스
전 세계적으로 여성 징병제를 실시하는 국가는 이스라엘과 북한,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10여 국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남성은 32개월, 여성은 24개월로 복무 기간만 다를 뿐 1948년 창군때부터 여성도 남성과 동일하게 병역의 의무를 다합니다. 전체 병력의 35%가 여성이며 전투병은 5% 정도입니다.
북한은 남성에 대해선 징병제를, 여성에 대해선 모병제 형태를 유지하다가 지난 2019년부터는 여성들에게도 의무적으로 군에 입대해야 한다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군 의무 복무 기간은 남성 10년, 여성 7년으로 징병제를 시행하는 국가 중 가장 깁니다.
북유럽 선진국에서는 군사적 목적보다는 성 평등을 목적으로 여성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여성을 포함한 보편적 징병제를 2018년부터 시행하고 있으며, 네덜란드도 역시 2018년 법을 개정해 여성 징병제를 도입했습니다.
노르웨이는 지난 2016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국 중 최초로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징병제를 시행했습니다. 당시 노르웨이 국방장관은 "군대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곳 중 하나인데 오직 남자에게만 열려 있다면, 이는 평등이라는 기본적 원칙에 위배된다"고 발언했습니다.
특히 노르웨이의 경우 남성과 여성이 생활관(내무반)을 같이 쓰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여성 징병제 도입에 따라 군대 내 성폭력을 줄이기 위해 남녀 공용 내무반을 운영하고 있는 건데, 이를 위해 노르웨이는 '여성과 남성이 같은 방을 쓰면 성별 의식이 희미해지고 동지애가 생긴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4월 총선 때 공론화될까
자료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군 복무 문제가 처음 공론화된 것은 지난 1999년 헌법재판소가 군 가산점제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입니다.
당시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여성은 지원에 의해 복무할 수 있다'는 병역법 3조 1항이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이 제기됐지만, 헌재는 남성 만을 병역 의무자로 정한 것이 자의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 여성 징병제 도입 시 발생하는 막대한 경제적 비용 등을 이유로 들어 합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후 여성 징병제를 두고 소모적 논쟁만 벌어질 뿐 공론장에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병역 의무를 여성도 이행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은 건 '새로운 선택'이 처음입니다.
다만 이들은 현행 징병제를 유지할지 또는 모병제로 전환할 것인지 등 구체적 대안은 내놓지 않았습니다.
저출생 여파로 '병력 절벽'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현역병 자원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는 20대 남성 인구는 지난 2020년 33만 3,000명대에서 지난해 25만 7,000명으로 급감했습니다.
입대 대상이 되는 남성 인구가 실제로 부족해지고 있는 가운데 여성 징병제 도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질지 주목됩니다.
[윤혜주 디지털뉴스 기자 heyjude@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