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피살된 줄 알면서 실종 발표…자진월북으로 결론 내려"
입력 2023-12-07 13:51  | 수정 2023-12-07 13:57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가 탑했던 어업지도선 자료, 감사원 외경 / 사진 = MBN
감사원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감사 결과 발표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9월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에서 국방부·해경·통일부 등 관계기관이 자진 월북 여부를 부당하게 판단하고, 미확인된 사실이나 은폐‧왜곡된 수사내용 등을 근거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감사원이 오늘(7일) 발표한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관련 점검' 주요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9월 서해에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가 사망한 것으로 언론에 발표된 이후 국방부 등은 공무원이 자진 월북한 것으로 결론을 내기 위해 군 첩보에도 없는 부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자진 월북 여부를 부당하게 판단·발표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020년 9월 22일 오후 5시 18분쯤 안보실은 북한 해역에서 이 씨가 발견된 정황을 합참으로부터 보고받고도 통일부 등에 위기 상황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통일부 A 국장은 이 씨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을 파악하고도 발견 정황 등을 장·차관에게 보고하지 않은 채 구조·생존 여부 파악 없이 오후 10시 15분쯤 퇴근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인 9월 23일 안보실은 국방부와 함께 "서해 공무원의 월북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피살 정보'를 전달받은 해경은 '보안 유지'를 이유로 국방부 등에 수색 구조에 필요한 협조 요청을 하지 않은 채 최초 실종 지점을 중심으로 수색 구조 활동을 지속했습니다.

이후 안보실과 국방부는 합참에 자진 월북 여부에 대한 정보 분석 보고서를 작성해 9월 24일 개최되는 관계장관회의에 보고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에 합참은 ▲북한에서 월북이라고 답변한 점 ▲CCTV 사각지점에서 가지런히 놓여 있는 신발 발견 ▲타 승선원과 달리 혼자 구명조끼 착용 ▲북한 해역서 발견될 당시 소형 부유물에 의지한 점을 근거로 '자진 월북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해 관계장관회의에 보고했습니다.

관계장관회의 당일 안보실과 국방부는 해경에서 월북 여부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인데도 관련 내용을 언론에 발표하도록 지시했으며, 국방부도 같은 날 국회에서 서해 공무원이 자진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언했다고 감사원은 밝혔습니다.

국정원은 합참이 제시한 네 가지 근거를 분석해 '자진 월북 여부 불명확'으로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관계장관회의에 보고하지 않은 채 언론 브리핑을 권고했습니다.

또 안보실이 국방부‧통일부 등에 '자진 월북으로 판단' 대응 방침을 하달한 것을 그대로 방치했습니다.

인천시 옹진군 소연평도 해상에 실종됐다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가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 사진 = 연합뉴스

이후 관계 기관은 미확인 사실이나 은폐‧왜곡된 수사내용 등을 근거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해경은 이 씨의 월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서해 공무원의 당시 심리상태에 대해 '구두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집하면서 긍정적인 정보는 제외한 채 '도박', '채무' 등 부정적인 정보만 제공해 월북 가능성을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일부 전문가의 답변을 임의로 짜깁기해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현실도피의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습니다.

아울러 이 씨가 입은 구명조끼에 한자가 기재돼 있었음을 확인하고도 이를 은폐한 채 '월북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당시 수사 중이던 인천해양경찰서가 '수사가 진행된 것 없다'며 발표를 거절했는데도 수사를 통해 월북을 판단한 것처럼 발표문을 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외에도 중간수사결과 발표에서 도박 규모, 도박 횟수 및 도박자금 흐름·출처 등 서해 공무원의 사생활을 부당하게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감사원은 "관계 기관은 서해 공무원 생존 당시 매뉴얼에 따른 신변 보호 및 구호 조치를 검토·이행하지 않았다"며 "서해 공무원의 피살·소각 사실을 인지한 뒤에는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비밀 자료를 삭제하고 부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자진 월북 여부를 부당하게 판단·발표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최유나 디지털뉴스 기자 chldbskcjstk@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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