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주하의 '그런데'] 119가 심부름센터인가
입력 2023-11-21 19:56  | 수정 2023-11-21 19:59
지난 8월 인천소방본부 119 안전신고센터에 앰뷸런스를 보내달라는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열과 콧물로 힘들다"면서요.

전화를 받은 소방공무원은 바로 구급차량을 보내겠다고 했는데, 신고자의 다음 말에 뜨악했습니다.
"샤워를 하고 가야하니 30분쯤 뒤에 와달라"고 했거든요.

구조 요청이 왔으니 안 갈 수 없죠.
30분 뒤에 그러니까 요구한 시간에 맞춰 7년차 소방공무원이 도착했는데, 신고자는 "아직 씻고 있으니 기다리라"고 했고 결국 8~9분쯤 더 있다가 유유히 걸어 나와 구급차를 탔다고 합니다.

출동한 소방대원은 "이렇게 하면 응급환자가 구급차를 이용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신고자를 병원으로 옮겨줬지요.


그런데 그는 그 뒤 인천소방본부로부터 경고처분을 받습니다.

그 신고자가 "출동 대원이 친절하지 않았다, 모멸감을 느꼈다"며 여러차례 민원을 제기하자
소방본부가 받아들인 겁니다.

지난해 전국 119 구급대 출동 가운데 환자 이송 없이 복귀한 경우는 20만4천 건에 달합니다.
하루 평균 560건꼴입니다.

"짬뽕을 먹었더니 배가 아프다"고 신고해 출동했더니 "쿨피스를 먹어 괜찮다"며 허탕을 치게 하거나 전기면도기가 안 꺼진다며 우겨 119가 출동한 황당한 경우 등이었죠.

다른 나라에선 어지간해선 앰뷸런스를 부를 엄두를 못 냅니다. 불과 몇 분만 이용해도 수백만 원을 내야 하거든요.

2018년 4월 미국 뉴욕주에서 한 남성이 2마일, 3km 정도를 구급차로 타고 갔다가 2,700달러, 300만 원 정도를 냈는데

앰뷸런스의 기본요금과 거리당 요금, 청소 비용, 구급차 내에서 사용되는 기타 장비 비용은 물론, 구급 이송에 필요한 노동력과 준비 과정, 훈련 비용 등을 다 포함해 청구하기 때문입니다. 웬만한 비행기 왕복 요금이죠?

또한 미국에선 허위·장난으로 긴급신고를 하면 1년 이상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최대 3,200만 원 정도의 벌금형에 처합니다.

영국은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8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고, 국가에서 별도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합니다.

법이 얼마나 부실하면 거의 모든 나라에서 당연한 게 우린 기사가 되는 걸까요.

게다가 구급차를 마치 택시 호출하듯 부르는 몰지각한 시민에게 "다른 진짜 위급한 사람을 위해 이럴 땐 부르지 말라"고 바른 말을 한 소방대원을 되레 징계한 소방본부는 또 뭡니까.

저런 윗선 아래서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우리 소방대원들, 정말이지 대단하지 않습니까.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119가 심부름센터인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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