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우연히 드러난 '튀르키예 최초의 한국인 묘지'…안타까운 '두 살 아이'의 사연
입력 2023-11-13 10:22  | 수정 2023-11-13 10:39
튀르키예 앙카라 공원묘지 한켠에 놓인 '코렐리' 묘비/사진=연합뉴스
1964년 현지 한국대사관에 부임했던 국방무관 백 모 씨의 아들
여러 차례 갈아타야 하는 비행기·이슬람 문화 등 숨겨진 사연 있을 것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튀르키예에서 그간 현지 한인사회에 알려지지 않았던 낡은 묘비가 발견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원익 주튀르키예 한국대사는 주튀르키예 폴란드 대사로부터 "지금 방금 찾은 건데요"(I've just found)라는 짤막한 메시지와 함께 앙카라 한복판 공원묘지에서 산책하다 우연히 찍게 됐다는 한 장의 사진을 전송받았습니다.

큼지막한 태극기와 십자가 두 개, 그리고 이름 위 튀르키예어로 '코렐리'(한국인)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낡은 묘비였습니다.

한편 이 묘비는 그간 현지 한인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묘비였습니다.


1963년에 태어난 고인은 1965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이는 튀르키예 한인 이민사가 시작됐다는 1970년대보다도 앞선 시기입니다.

게다가 만 두 살 생일을 불과 열이틀 앞두고 세상을 뜬 것으로 새겨져 있어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묘비의 존재를 알게 된 대사관은 묘지관리소를 통해 매장 시기 등 간단한 자료를 추가로 파악했지만 충분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연고를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이 대사를 찾아온 이들이 기억을 더듬어 한 조각씩 이야기를 전해주자 불과 일주일 사이에 영영 수수께끼로 남을 듯했던 퍼즐이 맞춰져 갔습니다.

고인은 1964년 현지 한국대사관에 부임했던 국방무관(외교공관에서 주재관으로 근무하는 군 장교) 백 모 씨의 아들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백 씨는 당시 갓 태어난 아이와 함께 타국에 도착했고 교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외교관으로서 '고군분투'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게 됐고, 몇 년 뒤 임기를 마친 백 씨는 아이를 이곳에 묻은 채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해졌습니다.

정확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당시에는 서울에서 튀르키예 앙카라로 가는 직항은 없었으며 대만과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UAE) 등을 거쳐 3~4번은 비행기를 갈아타야만 했습니다.

또한 이슬람 문화는 영혼의 안식처가 소멸한다며 화장을 허용하지 않으니, 시신이 든 관을 운반하기가 물리적으로도, 절차적으로도 여의찮았을 것입니다.

주튀르키예 한국대사관은 사실상 튀르키예 최초의 한국인 묘지로 추정되는 이 무덤에 매년 꽃을 들고 찾아가 고인을 추모하기로 했습니다.

이 대사는 어제(12일) "알아보니 고인의 부친도 작년 작고했다고 한다"며 "이제 두 분이 두 살과 젊은 아빠의 모습으로 하늘나라에서 반갑게 만나셨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장나영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jangnayoungn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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