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Book] 도서『3부작』 & 『유한함에 관하여 유머로 가득한 이별』
입력 2023-11-06 15:14 
욘 포세 지음 / 홍재웅 옮김 / 새움 펴냄
갈 곳 없이 떠도는 가련한 두 남녀를 비추며 이 소설은 시작한다. ‘21세기의 헨리크 입센 혹은 ‘21세기 사무엘 베케트라 불리는 욘 포세의 대표작 『3부작(Trilogien)』이 노벨문학상 소식 덕분에 개정판으로 출간됐다.
고독과 절망 속에서도 사랑과 예술을 그린 거장
『3부작』
아슬레와 알리다는 보따리와 바이올린 가방을 메고 몇 시간이나 벼리빈의 거리를 돌며 머물 곳을 찾고 있었다. 사람들은 미안하지만 우린 빌려줄 방이 없다고 말했고, 어디로 가야할지 두 사람은 알 수 없었다. 늦가을 추위와 어둠을 피할 방법은 없었고 알리다는 곧 출산을 앞둔 몸이었다. 사람들이 그들이 결혼을 하지 않아 떳떳한 사람들로 여기지 않아서는 아니었을 텐데, 열일곱 남짓의 두 남녀는 정체 없이 떠돌았고 늦가을의 어둡고 추운 밤은 저물고 있었다.
예수를 낳을 곳을 찾아 헤매다 마굿간에서 출산을 하는 요셉과 마리아를 즉각적으로 연상시키는 도입부부터 이 책의 독특한 성격은 드러난다. 21세기에 쓰인 소설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종교적 색채가 짙고, 19세기 빅토르 위고가 쓴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 『레 미제라블』을 연상시킬 만큼 처절하게 가난하고 힘겨운 삶의 조건에 내몰린 사람들이 등장한다.
제목 그대로 3부작인 이 책에는 세 편의 이야기가 담겼다. 1부인 ‘잠 못 드는 사람들은 연인이 집을 떠나 벼리빈을 방황하는 이야기, 2부인 ‘올라브의 꿈은 그들이 도망쳐 도착한 낯선 도시에서 겪는 이야기, 그리고 3부인 ‘해질 무렵은 두 사람으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한 세대 이후의 이야기로 건너뛴다.
아슬레는 집이 아닌 보트하우스에서 자랐고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가을 폭풍으로 바다에서 실종됐다.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16살에 바이올린 하나만 가진 채 완전히 혼자가 된 아슬레는 알리다를 떠올렸다. 자신이 사랑하는 유일한 소녀. 자신을 구박하는 어머니 아래에서 살며, 마음을 준 아슬레의 아이를 임신한 소녀였다.

아슬레의 유일한 거처였던 보트하우스는 아버지와 함께 바다로 나갔던 남자가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빼앗겨 버리고 만다. 아슬레는 배가 불러온 만삭의 알리다와 함께 고향을 떠나, 도시인 벼리빈으로 가기로 한다. 알리다는 어머니에게 도움을 받길 원하지만, 자신을 구박하는 어머니와 갈등만 일으키다 먹을 것과 돈을 훔쳐 달아난다.
도시로 갈 방법을 찾다 항구에 정착된 배를 훔쳐 항해를 하고 고단한 몸으로 잠든 알리다와 함께 아슬레는 잠 못 드는 밤을 경험하게 된다. 도시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들에게 방을 주지 않았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국 운명에 저항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작가 욘 포세는 알려준다. 욘 포세가 그리는 사랑은 죽음을 넘어서는 열정이며, 마치 자연처럼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이며 저항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느릿느릿 끝없이 펼쳐지는 북유럽의 대지를 걷는 듯한 리듬감이 느껴졌다. 그랬던 것이다.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쉬지 않고 추임새를 넣으면서, 마치 말하듯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300여 쪽에 가까운 소설 전체가 단 하나의 마침표도 없이 쉼표만으로 끝없이 반복되는 만연체의 문장, 그리고 마치 신이 불쌍한 인간들을 내려다보는 듯 들려주는 묵시론적인 이야기는 전례 없는 감각을 체험하게 해준다.
귄터 그라스는 그림에서 창작의 불씨를 얻었다
『유한함에 관하여 유머로 가득한 이별』
귄터 그라스 지음 / 장희창 옮김 / 민음사 펴냄
전후 독일 문학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귄터 그라스의 유고집이 나왔다. 삶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육체와 정신의 노쇠, 죽음에 대한 예감이 그라스 특유의 강건하고도 유머러스한 글과 드로잉에 담겼다. 장희창 전 동의대 교수가 우리말로 옮기고, 귄터 그라스 작품 세계와 유고집 사이에 다리를 놓는 해제를 덧붙여 책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귄터 그라스는 2012년부터 일종의 문학 실험으로 이 책을 기획하고 작업했으나 안타깝게도 출간 직전인 2015년 4월 8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책의 부제인 ‘유머로 가득한 이별은 작가가 30여 년 함께했던 출판사 슈타이들이 연 출판 기념회의 테마였다.
작가가 되기 전 뒤셀도르프 국립 미술 대학과 베를린 조형 예술 대학에서 시각 예술과 조각을 공부한 그라스는 자신의 모든 작품의 표지 그림을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에게 그림이란 언어보다도 본능적으로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켰던 장르로, 언제나 집필 전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그림을 완성한 후 다시 빠르게 글로 옮겨 적었다고 한다. 산문과 시, 그리고 그 두 장르의 경계에 걸쳐 있는 듯한 글 꼭지들에는 글의 핵심 주제를 담은 연필 드로잉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그간 표지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그라스의 그림을 만끽할 수 있다.
[ 김슬기 기자 사진 각 출판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03호(23.11.07) 기사입니다]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