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M 트렌드 허브] 무대에서 함께 잠들기…퍼포먼스 공연 ‘Zzz’ 현장 리뷰
입력 2023-11-03 15:48 
‘Zzz’ 공연 스케치(사진 서울문화재단 제공, ⓒ오석근)
‘극장에서 누워 자도 좋은 공연이 있다? 공공장소인 극장에서 관객들이 자거나 눕는 행위는 금기시되어온 것이었다. 퍼포먼스 공연 ‘Zzz(지지지)는 이 같은 금기를 깨고, ‘자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극은 별다른 대사 없이 움직임과 소리만으로 3시간을 가득 채우며, 관객들을 색다른 잠의 세계로 초대한다.
사적인 영역 ‘잠을 공유하다
매일 오후 2시, 극장에서 누워 자도 좋습니다”라는 공연 소개 문구 하나에 호기심이 일어 ‘Zzz(지지지) 공연장을 찾았다. 공연 시작 5분 전, 객석 오픈에 맞춰 입장을 했다. 평소라면 극장 안내원(하우스 어셔)들이 공연 관람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 안내를 해 주었겠지만, 이 공연의 안내는 조금 상이하다. 신발을 벗고 입장을 해주세요. 지하 2층으로 내려가셔서 객석의 구분 없이 편히 자리해주시면 됩니다.”
‘Zzz에는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다. 공연이 진행되는 대학로극장 쿼드는 블랙박스 극장 형태로, 무대와 객석을 가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구조이다. 관객은 신발을 벗고 극장에 입장해 매트리스가 깔린 무대 위에서 각자 집중하고 싶은 감각에 몰입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기자 역시 무대 위 놓여진 베개와 담요를 하나씩 챙긴 채 벽면 중앙에 자리했다. 편하게 앉거나 누운 순간 관람 준비 완료. ‘이렇게 있어도 될까? 조금은 불안하기도, 배덕한 마음도 들지만 공연 시작 안내와 함께 몸을 좀 더 아래로 편히 늘어뜨려 본다.
‘Zzz 연습 스케치(사진 서울문화재단 제공, ⓒ오석근)
군더더기 없는 잠의 초대
공연 시작 시간인 오후 2시, 점심시간이 지나며 한차례 식곤증이 몰려 오는 시간이다. 무대에는 관객들만이 입장한 채 공연 시작을 알렸다. 객석 입장 전, 스마트폰과 개인 짐을 안내 데스크에 전부 맡겨야 하기 때문에 별다른 행동을 할 것이 없었다. 집에서 잠을 잘 때처럼 휴대전화로 시간을 보낼 수도 없이, 오롯이 이 시간과 이 공간을 공유 중인 나와 다른 관객들의 행동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조금씩 조명이 어두워지고 큰 관심을 끌지 않는 백색 소음(사운드)이 켜졌다. 주변 관객들의 느릿한 움직임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덧 손목시계가 오후 3시를 가리켰다. 지하 1층에 퍼포머들이 등장해 있었다. 약간의 음향 소리와, 조명만이 존재하는 극장 안에서 그들은 정적인 움직임을 반복한다. 앞뒤로 움직이고, 계단의 손잡이를 잡은 채 내려올 듯 말듯한 제자리 운동이 마치 메트로놈처럼 느껴진다. 방향도, 모양도 정해진 것 없이 제각각이지만 퍼포머도, 관람객들도 그 순간의 감각에 몰입해본다.
‘Zzz 연습 스케치(사진 서울문화재단 제공, ⓒ오석근)
내 주변의 또 다른 퍼포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음향 소리에 맞춰 퍼포머가 몸을 움직인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10보 내외의 움직임 끝에 멈춤. 마치 잠을 자듯 눈을 감고 서 있다가, 다시 소리가 들려오면 커다란 움직임 없이 천천히 몸을 돌려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무대 위 곳곳에 잠을 자거나 앉아 있는 관객들 사이를 마치 유영하듯 흘러간다.
무대 위 조명도 서서히 어두워지고, 조금 남은 빛에 기대 손목시계를 응시했다. 오후 4시쯤 된 시각, 어느덧 무대 위에는 6~7명의 퍼포머들이 저마다 천천히 몸을 움직이고 있다. 1시간 전의 반복적인 동작 대신 웅크리던 몸을 마치 기지개를 펴듯 움직이다가도, 다시금 느린 걸음을 걷거나 몸을 움츠린다. 동시에 내 눈꺼풀도 한층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 때쯤, 퍼포머들이 마치 잠에 빠져들 듯 무대 위에 몸을 누인다.
낯설지만 자유로운, 공연이되 공연이 아닌
‘Zzz 연습 스케치(사진 서울문화재단 제공, ⓒ오석근)
대학로극장 쿼드 제작공연 ‘Zzz는 황수현 안무가의 신작이다. 안무가 황수현은 ‘이 시대의 춤 공연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안고, 이를 토대로 한 작업을 선보여왔다. 주요 안무작인 ‘카베에(caveae), ‘음---, ‘검정감각,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 ‘우는 감각 등을 통해 황수현 안무가는 ‘퍼포밍과 ‘관람 사이에서 작동하는 감각-감정-신체의 관계성에 주목하며, 새로운 감각과 낯선 신체 경험의 잠재성을 집중적으로 탐구해왔다.
다리를 계속 들고 있거나, 호흡을 들이마시거나 멈추고, 웃거나 휘파람을 부는 퍼포머를 통해 관객들의 근육에 저장된 근 감각적 반응을 유도해보기도 하고(‘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 2019), 4명의 퍼포머들이 눈을 감은 채 목소리로 사운드를 만들어 청각 정보와 촉감을 이용해 서로 소통해보기도 하는(‘검정 감각, 2019) 등 실험적인 콘텐츠에 이어, ‘Zzz에서는 극장 안에서 지극히 사적인 영역인 ‘잠을 자는 행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공동의 감각을 구성하는 퍼포먼스에 동참하게 한다. 황수현 안무가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잠자는 행위의 취약성, 무방향성, 무형성, 비가시적 특성에 주목했다.
황수현 안무가(사진 ⓒBAKi 국립현대무용단)
기존에 ‘관객 참여극은 다양했지만, 이처럼 낯설면서도 자유로운 형태의 공연은 없었다. 극장에 누워 조명이 꺼진 천장을 바라보고, 이내 깊은 잠에 빠지는 행위는 낯설지만 자유로운 경험. ‘Zzz가 진행되는 3시간 동안 퍼포머와 관객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 지극히 사적 영역의 행위인 잠은, ‘함께 잠자기의 공동 경험을 통해 사회적 행위로 확장될 수 있다.
종잡을 수 없었던 공연의 말미, 잠에서 깨어난 순간, 그 후에는 지속적인 질문이 내 안에 남는다. ‘이것은 공연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3시간 동안 잠을 푹 자고 일어났다면 그 사람은 공연을 본 것일까? 안무가의 말을 빌려보자면, 이런 의구심도 공연의 일부분에 가깝다. 이 작업은 선택하는 방향에 따라 다른 한쪽의 질문과 궁금증이 지속해서 발생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잠자기를 유도하며 작품을 만들었지만 관객이 아무도 잠에 들지 않고 재밌게 관람했다면 이 작품은 성공일까? 실패일까? 반대로 작품의 의도대로 잠이 들었다면 그것은 안무에 의한 결과일까? 아니면 관객의 생리적 상태에 따른 결과일까?”(-황수현 안무가 인터뷰 中 발췌)
공연의 영역은 어디까지이고, 공연의 힘은 무엇일까. 이 또한 춤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질문이 질문을 낳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이 공연에 대해 묻는다면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다. 3시간 동안 잠의 세계 자체를 적극 즐겨보길 바란다”고.
‘Zzz 포스터(사진 서울문화재단)
Info ‘Zzz(지지지)
기간 ~2023년 11월12일(일)
시간 평일 및 주말 14:00(*월요일 공연 없음)
장소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
관람연령 14세 이상(중학생 이상 관람가)
[글 시티라이프부 이승연 기자(lee.seungyeon@mk.co.kr)]
[사진 및 참고자료 서울문화재단 / 사진 ⓒ오석근]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0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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