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세계약 만료를 앞둔 지인으로부터 고민 전화가 왔습니다. 살고 있는 빌라의 전세 시세가 4~5천만 원 정도 내려갔는데, 집주인이 목돈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며 하락분을 역으로 월세로 드리면 어떻겠느냐고 했다는 겁니다.
계약이 종료돼도 제때 돈을 돌려받진 못할 것 같고, 반환보험에는 가입돼 있지만 막상 청구하는 절차 역시 골치아픈 일이니 주인 말대로 할까 고민하던 찰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고 합니다. 역월세로 집주인과 재계약을 해도 반환보험이 연장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 HUG에 확인한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현 시세보다도 보증금을 낮춰야 반환보험 가입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전세사기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지난 5월 전세금 반환보증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요건을 강화했습니다. 반환보험에 들어준다며 집값과 비슷하게 전세계약을 맺는 방법으로 수십채, 수백채를 무갭투자한 사례가 속출했기 때문입니다, 주택가격의 100%까지 해주던 것을 90%로 낮추면서 매매거래가 많지 않은 빌라는 공시가격의 150%를 매매가격으로 인정해오던 걸 140%로 내렸는데, 이게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 기존 공시가격의 150%까지 인정되던 빌라 전세금 반환보증 가입 기준이 126%로 대폭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 전세사기 이슈로 빌라 가격까지 급락하면서 공시가격은 더 내려갔습니다. 직전 전세금보다 1억 가까이 낮춰야 반환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겁니다.
지난 2월 발표된 전세사기 예방 및 피해 지원방안. 출처: 국토교통부
전세금 반환 대출을 받으면 되지 않을까요? 이 역시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은행들이 통상 혹시나 살고 있을 소액 임차인에게 가장 먼저 돌려줘야할 돈, 일명 방공제를 제외하고 대출을 해주는데, 서울의 경우 5,500만 원입니다.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얼마 안 되는 겁니다.
빌라 임대인들은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전세사기 이슈가 커지면서 반환보증 안 된다고 하면 세입자들이 집을 보지도 않는다는데 가입 가능 금액까지 낮출 여윳돈은 없고, 집을 팔아도 시세가 떨어져 어딘가에서 더 돈을 융통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기존 세입자와 역월세로 재계약한 뒤 해결책 찾는 건데, 역시 보증금을 내리지 않으면 반환보증 가입이 안 되니 기존 임차인도 싫다고 합니다.
물론 갚을 능력 없으면서 무갭투자로 수백채를 사들이고 잠적한 악성 투기꾼들은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파트 살 돈 없어서 빌라 샀고, 이런저런 이유로 전세 주고 다른 곳에서 전세 살고 있는 사람들까지 곤경에 빠뜨리는 건 가혹하다고 임대인들은 아우성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들이 제때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대다수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열심히 살아보려는 빌라 임차인이라는 것입니다.
2021~22년 높은 금액으로 체결된 전세계약의 만기가 휘몰아쳐 오는데, 기존 임차인과의 연장 계약이라도 전세금 반환보증 요건을 더 낮춰서 시장의 혼란을 줄여야 하지 않을까요? 정책당국의 고민과 결단이 시급합니다. 지금까지 부동산 핵심클릭이었습니다.
HUG 주택도시보증공사 카드뉴스. 출처: 홈페이지
[ 김경기 기자 goldgame@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