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캠핑 안전 1편> 화마가 집어삼킨 텐트 [강세현의 재난백서]
입력 2023-10-07 13:00 
2015년 강화도 글램핑장 화재 현장 모습 (연합뉴스)

가을이 돌아왔습니다. 선선한 날씨 속에 캠핑을 떠나는 분이 많을 텐데요. 직접 텐트를 설치해 캠핑을 즐기시는 분뿐만 아니라 글램핑장을 찾거나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떠나시는 분들도 있죠.

밋밋한 일상의 탈출구가 되는 캠핑은 큰 즐거움을 주는 만큼 주의할 점도 많습니다. 특히 기온이 낮아지며 전열기를 쓰거나 모닥불을 피우는 일이 늘었는데요. 이번 재난백서에서는 두 편에 걸쳐 '캠핑 안전'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먼저 2015년 강화도 글램핑장 화재로 돌아가신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빌며 글을 시작합니다.


글림핑장 화재 상황이 담긴 CCTV 화면 (연합뉴스)
5명의 목숨을 앗아간 글램핑

30대 이 모 씨와 천 모 씨는 중학교 동창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두 사람은 세월이 흘러 가족을 꾸렸고, 아이들과 함께 캠핑을 떠날 계획을 세웁니다. 며칠 뒤 이 씨와 아들 3명, 천 씨와 아들 1명은 강화도 동막해변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텐트를 챙기지 않아도 캠핑을 즐길 수 있는 글램핑장을 찾았습니다.

2015년 3월 22일 새벽 2시 9분쯤,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일행이 잠들었을 무렵 텐트에서 불꽃이 튀는 모습이 근처 CCTV에 찍혔습니다. 불길은 순식간에 원뿔형으로 생긴 텐트로 번졌습니다.

불이 시작되고 3분이 지났을 무렵, 바로 옆 텐트에서 자고 있던 박홍 씨는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습니다. 밖으로 나가자 옆 텐트에서 불이 나고 있었습니다. 박 씨는 텐트로 달려가 문을 열었습니다. 문 바로 옆에서 남자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동창과 함께 캠핑장을 찾은 이 씨의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박 씨는 아이를 구조했습니다.

아이를 밖으로 옮긴 순간 불길은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번졌습니다. 관리인이 급히 소화기를 가져왔지만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박 씨와 주변에 있던 이들은 샤워장에서 양동이로 물을 퍼 나르며 불을 꺼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텐트는 소방대원들이 도착하기 전 완전히 불에 타버렸습니다.

이 화재로 이 씨와 아들 2명, 천 씨와 아들 1명이 숨졌습니다. 소중한 남편이자 아들이었을 이 씨와 천 씨 그리고 그들의 어린아이들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간 겁니다.


글램핑장 텐트 내부 모습 (연합뉴스)
불에 잘 타는 소재로 만들어진 텐트

불이 난 텐트 바닥엔 난방용 전기 패널이 깔려 있었습니다. 사고가 난 3월,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졌고 텐트 안에선 전기 패널을 틀고 잠을 자야 했습니다. 경찰은 패널에서 불이 시작됐다고 발표했는데, 텐트에 깔린 패널은 안전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이었습니다. 설치업자가 직접 패널을 제작해 설치했던 겁니다. 심지어 전기시설을 만들 때 설치해야 하는 화재 감지기도 달지 않았습니다.

불이 순식간에 텐트 전체로 번진 원인은 텐트 소재 때문이었습니다. 텐트는 면 캔버스 재질의 외피와 폴리에스테르 재질의 내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또 내피와 외피 사이엔 보온을 위해 비닐과 은박 매트를 채워 넣었습니다. 모두 불에 쉽게 타는 소재였습니다.

왜 이렇게 부실하게 관리가 됐던 걸까요?

불이 난 캠핑장은 군청에 야영장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영업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불이 나기 약 2달 전인 1월, 캠핑장을 비롯한 야영장은 등록기준에 맞춰 지자체에 신고하도록 시행령이 개정됐습니다. 하지만 유예기간이 5월 31일까지 였고, 업주가 신고하지 않은 건 불법은 아니었습니다. 뒤늦은 제도 개선이 화를 불렀단 비판이 나왔습니다.


외양간을 고친 정부

정부는 법 개정에 나섰고 2019년 3월 4일 본격적으로 시행됐습니다.


먼저 글램핑 시설의 텐트 소재에 대한 규정이 생겼습니다. 천막에 불이 쉽게 붙지 않고 빠르게 번지지 않는 방염 성능 기준에 적합한 제품을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얇은 포의 경우, 불이 붙고 3~5초 안에 연소가 그쳐야 하고 불꽃에 탄화된 면적이 30㎠ 이내여야 한다 등 여러 기준이 생겼습니다.

또 텐트 사이에는 최소 3m의 거리를 둬 불이 확산되지 않도록 했고, 야영용 천막 2개소 또는 100㎡마다 소화기를 1개 이상 비치하도록 했습니다. 사업자 외의 관리요원도 안전교육 참여를 의무화했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업주가 손해 배상을 하도록 책임 보험 가입을 의무화했습니다.


관리가 부실한 소화기 (서울시 캠핑장 및 유원·놀이시설 안전점검 결과보고)
여전히 미흡한 관리

지난해 말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서울시 관내 지차제가 관리하는 캠핑장 8곳을 대상으로 안전 상태를 점검했습니다. 2015년 안타까운 사건을 계기로 법이 개정된 만큼 이제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미흡한 부분이 다수 발견됐습니다.

강동구 모 캠핑장의 방염성능 시험성적서를 확인해 보니 기준 6개 가운데 4개의 측정값이 없었습니다. 또 중랑구의 모 캠핑장은 접수 번호, 문서확인 번호, 시험연구원 직인이 포함된 정식 시험성적서를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방염 성능이 확실한 텐트인지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텐트가 설치돼 있었던 겁니다.

소화기 관리도 문제였습니다. 마포구의 모 캠핑장을 포함한 여러 곳에서 보관함이 파손되거나 표면이 훼손되고 녹슬어 내용연수가 확인되지 않는 소화기가 발견됐습니다.

숯이나 장작을 처리하는 시설 관리도 허술했습니다.
야영장내 숯 및 잔불 처리시설을 별도의 공간에 마련하고 1개 이상의 소화기와 방화수를 비치해야 하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곳이 8곳 가운데 5곳이었습니다. 강동구의 캠핑장은 소화기를 두지 않았고 구로구의 캠핑장은 처리시설이 위치가 부적절했고 방화수도 비치하지 않았습니다.

적발된 캠핑장들은 감사 이후 조치를 완료했거나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은 지자체가 관리는 캠핑장이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할 수 없을 겁니다. 또 사설 캠핑장 가운데 안전 관리가 더 허술한 곳이 있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올가을 여러분이 찾을 캠핑장은 안전할까요?
이 질문의 대답엔 아직 물음표가 붙어 있습니다.

[ 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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