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생생중국] 악비‧서호‧알리바바…아시안게임, 그 이상의 이야기를 간직한 항저우
입력 2023-10-08 13:00 
항저우 국제공항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건 중국 전통 뱃놀이이자 아시안게임 종목이기도 한 롱촨(龍船/龍舟라고도 한다)이다. / 사진 = MBN 촬영

오늘(10월 8일)로 항저우(杭州) 아시안게임은 막을 내린다. 대회 전에 중국인들은 하나같이 기자에게 걱정스럽게 말하곤 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중국에서 처음 치러지는 국제대회인데, 이를 계기로 코로나로 지쳤던 중국 사람들이 다시 흥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남송 명장이자 한족의 영웅 위에페이 묘 인파로 북적여


지난 6월 아시안게임 D-100 취재 이후 3개월여 만에 다시 찾은 항저우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찾아보려고 했고, 그래서 결정한 첫 방문지는 위에왕먀오(岳王廟)였다.

이곳은 중국 남송의 명장 위에페이(岳飛)를 모시는 사당이다. 중국 사람들에게 위에페이는 삼국지의 명장 꽌위(關羽)와 더불어 중국 역사에서 최고 명장으로 꼽는데, 우리로 치면 성웅 이순신 장군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런지 위에왕먀오는 이곳 항저우에만 있는 게 아니다. 베이징 중심가에도 뚱위에미야오(東岳廟) 즉, 동쪽의 악비 묘가 있다.

입구를 지나면 사당 안에 위에페이 좌상이 있고, 그 위에는 환워허샨(還我河山)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우리의 강산을 돌려달라는 의미인데, 금나라에게 빼앗긴 송나라 영토를 되찾고 싶은 그의 의지가 담겨 있는 듯하다.

위에페이 좌상 위에 환워허샨 네 글자가 크게 적혀 있다. / 사진 = MBN 촬영


사당 뒤쪽으로 가면 위에페이 묘가 나오고, 묘의 앞쪽엔 그에게 누명을 씌워 처형시킨 친훼이(秦檜) 일당들이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동상이 보인다. 이들은 국가의 영웅을 죽인 간신배의 대명사가 돼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중국인들에게 욕을 먹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기편의 뒤통수를 친 배신자는 영원히 그 죄를 씻을 수 없는 것 같다.

관광객들이 위에페이를 처형시킨 일당들의 동상에 침을 뱉거나 욕설을 하다 보니 경비원이 지키고 서 있는 게 재미있다. / 사진 = MBN 촬영


흥미로운 건 위에페이에 대한 평가가 현대 중국에서는 오락가락한다는 점이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14억 인구를 이루는 민족은 56개다. 대부분이 한족이지만, 55개 소수민족 역시 1억 5천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신장위구르자치구 같은 소수민족 자치지역도 많다.

이들의 분리독립 운동을 막고 하나의 중국으로 통합을 하기 위해서 소수민족의 정서를 지나치게 건들지 않는 게 공산당의 정책이다. 때문에 근대 들어서 한족에겐 영웅이지만 금나라를 세운 여진족과 그 후예인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에겐 지옥의 화신이었던 위에페이에 대해 의도적으로 평가를 낮추는 경향이 엿보인다고 한다. 자국의 영웅마저도 깎아내리길 주저하지 않는 공산당의 통치 기술이 새삼 놀랍다.

역사상 최고 경제 대국 송대의 수도 항저우…지금은 중국 최대 IT 기업 알리바바의 고향


중국 7대 고도(古都) 중 한 곳인 항저우는 남송(南宋) 시대 수도였다. 추정 기관마다 편차는 있지만, 12세기 무렵 송나라는 전 세계 인구의 25%, GDP는 40% 정도를 차지한 역사상 최고의 경제 대국 중 1, 2위로 항상 꼽힐 정도이다. 그 거대한 경제권의 심장이 바로 항저우였던 것이다.

청나라 때도 번영했던 항저우엔 청나라 최고 거상인 후쉐옌(胡雪巖)의 고택이 있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막대한 재산으로 청나라 말기 외세 침략에 시달리던 조정을 적극 도와서 상인으로는 최초로 1품 관직에 오르기도 했다.

중국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재물의 신이라고 부르는데,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은지 후쉐옌 고택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베이징에서 온 20대 중국인은 엄마가 항저우에 가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후쉐옌 고택을 다녀오라고 했다”고 귀띔한다.

후쉐옌 고택의 출구엔 벽과 천장을 각종 중국 화폐들로 장식을 해놨다. 재물의 신이 머물던 곳의 기운이 느껴진다. / 사진 = MBN 촬영


지금의 항저우는 중국 IT기업의 대명사격인 알리바바를 품고 있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알리바바의 계열사이자 중국 최대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인 알리바바클라우드(ALIBABA CLOUD)를 통해 역대 아시안게임 최초로 클라우드 인프라를 통한 중계방송 지원을 실현했다.

알리바바클라우드는 대회 기간 최대 68개의 고화질(HD)‧초고화질(UHD) 피드로 5,000시간 이상의 라이브 영상을 전송했다. 이전 대회까지 방송사들은 라이브 영상을 자국으로 전송하기 위해 고비용의 전용 국제 광통신망을 사용해야 했는데, 클라우드 시스템을 통해서 그 절차를 대폭 간소화한 것이다. 비용도 줄일 수 있고, 특히나 전력 사용량이 크게 줄면서 탄소 배출도 대폭 절감해 친환경 스마트 아시안게임을 구현했다는 평가다.

알리바바클라우드 시스템을 통해 56개 경기장과 미디어센터 등 주요 시설들의 데이터를 통합 관리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조직 운영의 효율을 높였다. / 사진 = 알리바바클라우드 제공


쑤동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천하 명소 시후


항저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건 역시 시후(西湖)다. 당송팔대가 중 한 명인 시인 쑤동포(蘇東坡)가 시후를 중국의 4대 미인 중 한 명인 시스(西施)와 비유했을 정도로 시후는 항저우 사람들에겐 큰 자랑거리라고 한다.

시인으로 유명했지만, 쑤동포는 행정가였다. 그가 시후에 남긴 건 아름다운 시뿐 아니라 백성들의 어려움을 풀어낸 지혜도 있다. 송나라 철종 때 쑤동포가 항저우 지사로 부임했다. 이때 가뭄으로 고생하는 농민들을 보고는 시후 바닥의 진흙을 모두 파내게 해서 그 뒤로는 가뭄이 들어도 논에 물을 대기가 훨씬 수월해졌다고 한다. 이 제방은 나중에 그의 성을 따서 쑤띠(蘇堤)라고 불리게 됐다고 한다.

해가 질 무렵의 시후와 나룻배…쑤동포가 탄성을 자아내며 유려한 시구를 쏟아냈던 그 풍경과 같을까? / 사진 = MBN 촬영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짧은 시간 동안 두 번이나 항저우를 방문하게 됐다. 물론 오랫동안 이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만큼이야 못하겠지만, 그래도 2주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항저우에 머물면서 참으로 매력적인 도시라고 느꼈다. 그것은 역사가 함께 숨 쉬며 발길 닿는 곳마다 이야기가 흘러내리는 곳의 매력이기도 했다. 중국인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샹요티엔탕 샤요쑤항(上有天堂 下有蘇杭). 하늘 위에 천당이 있다면 하늘 아래 쑤저우(蘇州)와 항저우가 있다.

[윤석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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