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어지는 아파트들은 대체로 평면이 좋습니다. 거실 등 아파트 전면부 쪽 공간을 '베이'라고 하는데, 전용면적 84㎡는 물론 59㎡에서도 4베이 평면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모든 방이 거실과 방향이 같아서 채광이 좋고 쓸모가 있다는 게 살아본 사람들의 평가입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습니다. 바로 재개발, 재건축 등 도심에서 정비사업으로 지어지는 아파트들입니다. 사업이 길어지면 최신 트렌드에 맞게 설계도 손봐야 하는데, 총회 의결을 거쳐야 해 만만치가 않습니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조합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조합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고, 사업시행계획서의 작성 및 변경이나 관리처분계획의 수립 및 변경을 위한 총회는 전체 조합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심지어 정비사업비가 100분의 10 이상 증가하면 전체 조합원의 '3분의 2 이상' 동의가 있어야 의결됩니다.
정족수만 까칠(?)한 게 아닙니다. 총회를 하려면 조합원을 모아야 하죠. 모두 해당 지역에 살고 있을까요? 유감스럽게도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분도 있을 거고, 투자자도 있을 겁니다. 해외에 거주 중일수도 있습니다. 일일이 연락해 한 자리에 모으는 작업이 보통 일이 아닌 겁니다. 또 조합원이 수백 명, 많게는 수천 명인 곳도 있을텐데, 의견은 얼마나 다양하겠습니까? 재개발재건축 아파트에서 최신 트렌드 평면으로 바꾸는 일은 지자체 인허가 받는 것만큼 힘든 작업입니다.
그나마 추석 직전 발표된 9·26 공급대책 덕분에 이런 '철 지난' 평면으로 지어지는 아파트가 조금은 줄어들 것 같습니다. 국토교통부가 정비사업 기간을 앞당기기 위해 총회 개최와 출석, 의결에 온라인(모바일)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한 자리에 모이지 않아도 되니 비용이 절감되고, 소집의 어려움이 줄어들겠죠. 자연스럽게 최신 트렌트 평면을 보유한 재개발‧재건축 아파트도 늘어날 겁니다.
그런데 왜 이 얘기부터 하느냐고요? 이번 공급대책에서 '그나마'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인허가와 착공, 분양 등 주택공급 지표가 전년 대비 수개월째 급감하는 등 공급부족 우려가 부각되자 정부가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이라는 제목으로 대책을 내놨는데, 시장에 영향이 있을만한 내용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3기 신도시 물량 확대와 신규 택지를 늘리는 등의 방법으로 5.5만호를 추가 공급하고, 공공택지 전매제한 완화, PF대출 보증 확대, 인허가‧정비구역 지정 등 사업 절차를 일부 개선하기로 했지만,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오히려 표준계약서를 통해 공사비 증액 기준을 마련하고, 정비사업에서 공사비가 일정 수준 이상 상승한 경우 당사자가 재협상하도록 유도하기로 한 점이 분양가 상승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일부에서 제기됩니다. 시장에서는 공급 부족 못지 않게 분양가의 '가파른' 상승도 걱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추석이 지나면 가을 이사철이 본격화되는데, 공언한 대책이 나왔음에도 "오늘의 분양가가 가장 싸다"는 인식이 굳어지면 시장은 어떻게 흘러갈까요. 또 패닉에 빠지는건 아닐까요? 대책이 반드시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추석 전에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서둘러 나온건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지금까지 부동산 핵심클릭이었습니다.
9월 26일 발표된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 중점 추진과제
[ 김경기 기자 goldgame@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