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위암 투병 중인 노르웨이 입양 한인 김 토마스 리셍(46·한국명 김민수) 씨는 최근까지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아동권리보장원을 통해 친부모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모으고 있습니다.
42년 전 입양됐던 그는 1981년 4월 24일 오후 5시쯤 대전역 대합실 안에서 우는 채로 발견돼 대전 피얼스영아원(현재 늘사랑아동센터)에 맡겨졌습니다.
아동 신상 카드 등 기록상 그의 생년월일은 1977년 4월 25일이지만, 이마저도 확실치는 않습니다.
김 씨 발견 당시 그의 옷가지 등에서 정확한 인적 사항이 적힌 쪽지나 편지는 따로 없었습니다.
영아원 관계자 등이 4∼5살로 보이는 남자아이라 입소 날짜에 맞춰 생년월일을 정하고 김민수라는 이름을 붙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발견 당시 김민수 씨/사진=연합뉴스
노르웨이 남부 도시 퇸스베르그와 플레케피오르에서 성장한 그는 이후 트롬쇠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금융기관 취업을 거쳐 현재는 회계사로 일하고 있고, 2011년 페루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 후 오슬로에 정착했습니다.
슬하에 8살 아들을 두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그는 학창 시절이 녹록하지만은 않았다고 회상했습니다.
금발과 푸른 눈의 백인들 틈바구니에서 차별과 괴롭힘의 대상이었던 그에게 '아시아 입양인'이라는 꼬리표는 언제나 숨기기 급급한 흉터였습니다.
김 씨가 어릴 때부터 '네 친부모는 널 버렸어'라는 말을 했던 양부모는 김씨 출생의 비밀과 한국을 살갑게 설명한 적이 없습니다.
학창 시절 김민수 씨/사진=연합뉴스
김 씨는 "두 살 아래 남동생도 한인 입양인인데 우린 항상 학교에서 '황인'(Yellow), '원숭이', '중국인'이라는 놀림을 받았다"며 "나는 축구에 소질을 보이면서 처음으로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고 그때부턴 내가 누군지 고민하기보다는 계속 축구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에만 몰두했던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잊어버렸다고만 생각했던 입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성인이 되고부터 본격적인 갈증으로 찾아왔습니다.
더 늦기 전에 친부모를 찾아야 한다고 마음먹었지만, 불현듯 2021년 6월 암 진단을 받게 됐습니다.
그는 연합뉴스와 화상통화에서 "삶이 곧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평생 모르고 살았던 내 삶의 시작점이 그렇게 간절해지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엄마를 만나면 꽉 안고,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묻고 싶다"면서도 "이것조차 욕심이라면 살아계시는지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간절함을 표했습니다.
김민수 씨와 부인 히메나 씨./사진=연합뉴스
노르웨이 현지에서 유전자 검사를 앞둔 그는 오슬로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통해 DNA 샘플을 경찰청 실종아동 데이터에 등록하고 내년에는 직접 한국을 방문할 계획입니다.
한국에서 친부모를 찾고 나서야 부모가 본인을 버린 게 아니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다른 입양인들의 사연은 그에게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그는 "양부모님은 내가 '1979년생이고 서울역에서 버려졌다'고 말했지만, 직접 조사해보니 나는 1977년생에 대전역에서 발견됐다"며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어쩌면 친부모님이 날 버린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친부모님이 절 버린 게 사실이라고 해도 원망하지 않는다"며 "그동안 부모님은 어떻게 살았는지, 저는 어떤 아이였는지, 형제자매는 있는지, 궁금한 게 너무 많다"고 덧붙였습니다.
[김가은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kimke399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