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은혜 베푼 이웃’ 고층에서 밀어 살해…범행 밝힌 ‘3명의 증인’ [법원 앞 카페]
입력 2023-09-23 09:00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 카페에 앉아 쓰는 법원 출입기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생면부지 남에게 집과 땅을 물려주기로 하는 호의를 베풀었는데 죽음으로 되갚는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번 주 '법원 앞 카페'는 지난 14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선고된 한 살인 사건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60대 남성 A씨는 뇌성마비 등 장애를 앓고 있는 동생이 있습니다. 2014년 당시 인천의 한 병원에 동생을 입원시킨 뒤 A 씨와 A 씨 아내는 동생을 함께 간병했습니다. 마침 같은 병원에는 다른 한 여성도 입원해 있었는데 당시 70대 남성 B 씨의 아내였습니다. A 씨 가족과 B 씨 사이 인연이자 악연이 시작된 곳이었습니다.

2014년부터 A 씨 부부는 B 씨와 알고 지내게 됐는데 2년이 지난 2016년 입원 중이던 B 씨 부인이 숨지자 A 씨 부부는 B 씨의 집을 오가며 식사를 챙겨주며 친분을 쌓았습니다. A 씨 부부의 호의에 감동한 B 씨는 이들에게 자신이 숨지면 땅과 집을 물려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충남 태안군 소재 땅 명의를 A 씨 아내에게 이전해줬고, 아예 살던 집도 A 씨 부부가 살던 아파트 옆집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B 씨가 사망하면 옮긴 집을 A 씨 아내에게 넘겨준다는 공증도 해줬죠.

여기에다 장애로 입원 중인 A 씨 동생도 B 씨 집에 데려와 돌보기로 했습니다. 보통 친분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죠. 이대로만 지냈다면 해피엔딩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운명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러스트=우종환 기자 (Ideogram 생성)


A 씨의 방문 그리고 B 씨의 사망

2019년 10월 12일 오전 7시 반쯤, A 씨는 아내한테 전화 한통을 받습니다. B가 전화했는데 아프다고 한다, 집에 한 번 가봐라”라는 내용이었죠. 이에 옆집인 B 씨 집으로 간 A 씨는 B 씨에게 (병원 입원 중인) 아내가 퇴원하면 병원에 같이 가주겠다고 하니 좀 참아라”라고 말했다가 B 씨가 화를 내면서 말싸움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인 오후 2시쯤 경비원이 아파트 튓편 담벼락 옆에서 B 씨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검찰과 경찰은 A 씨가 B 씨를 베란다 밖으로 밀어 떨어뜨려 숨지게 했다고 보고 살인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반면, A 씨는 B 씨와 대화만 나눴을 뿐이고 사건이 벌어진 날 오전 8시 10분쯤 다시 방문 했을 때 B 씨가 없는 것만 확인했다며 범행을 부인했습니다. B 씨 스스로 뛰어내렸거나 사고였을거라는 주장을 한 겁니다.

A 씨 진술

오전 7시 31분경에 아내로부터 ‘어르신이 죽어버릴 거라고 한다. 빨리 건너 가봐라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바로 B의 집에 가보니 B가 침대에 앉아 있었습니다. ‘왜 죽는다는 말씀을 하시냐고 했어니 ‘이렇게 아픈데 살아서 뭐해요라고 했습니다. ‘월요일에 집사람과 병원가자고 말하고 제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8시 10분경에 다시 B의 집으로 가니 그 집에서 나오는 아내와 마주쳤습니다. 아내는 학교로 갔고 제가 B의 집으로 들어가니 B가 없었습니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전화해 베란다 뒤편을 확인해보라고 했습니다. 베란다 쪽을 보니 창문이 활짝 열려 있고 방충망이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A 씨의 진술을 언뜻 보면 그럴듯하지만 수상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집 안에는 CCTV가 없었죠. 따라서 정황 증거와 관계자 증인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법원은 잇따라 A 씨가 B 씨를 살해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유는 당시 A 씨와 함께 현장에 있던 증인들의 진술이 모두 A 씨의 범행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락가락한 아내의 진술

가장 핵심 증인은 A 씨 아내였습니다.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B 씨와 통화를 하는 등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7번의 경찰 조사와 법정 진술 1차례 등 모두 8번의 진술에서 아내는 계속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당장 첫 조사에서 아내는 사건 당일 아침 B 씨 집을 방문했느냐고 묻는 질문에 간 적 없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추가 경찰 조사에서 거짓으로 드러났고 아내는 이내 아침 사건 발생 추정 시각인 아침 8시쯤 자신도 B 씨 집을 찾았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다음으로 범행 장면을 봤는지를 두고도 진술이 오락가락했습니다. 처음에는 범행 장면을 본 적 없다고 주장했다가 나중에는 ‘범행 사실을 남편한테 들었다, ‘싸우는 건 봤으나 범행은 못 봤다, ‘범행을 봤다, ‘목격하지 못했다 순으로 진술이 바뀌었습니다.

표=우종환 기자 (Chatgpt 생성)

이렇게 진술이 계속 바뀌면 신빙성을 의심받게 되고 범죄를 증명하는 데 도움이 안 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오락가락하는 진술 속에서 재판부는 아내가 진실을 말하는 부분을 잡아냈습니다.

먼저 아내도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점은 명백하다고 봤습니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아내가 현장에 있는 걸 본 ‘증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내가 범행을 목격한 게 맞다고도 판단했습니다. 목격했다고 할 당시의 증언은 직접 겪지 않고서는 나오기 어려운 내용들이었기 때문입니다.

A씨 아내 4차 조사

B가 아침 7시 29분 경에 전화해서 ‘허리가 아파 죽을 것 같다 병원에 가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7시 31분 경 남편(A)한테 전화해서 ‘아버님이 허리 아파 죽겠다고 병원 간다니까 가보라고 했습니다. 병원에서 외출해 8시 정각쯤 집에 들어가니 남편이 있었습니다. 남편에게 ‘아버님 많이 아프다니까 가봐야겠다고 하고 B의 집으로 가는데 남편도 따라 왔습니다.



B가 거실 소파에 앉아있다가 일어나면서 ‘허리가 아파서 입원해야 되는 데 돈 좀 있어야 겠다고 하자 제가 ‘지금 돈이 없으니 월요일날 모시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잠깐 작은방에 가서 남편 동생의 기저귀를 확인하고 나오니 남편이 거실에서 B에게 ‘아픈 사람한테 왜 병원에 가자고 하냐고 했고 B는 ‘내가 아픈데 누구한테 얘기하냐고 말하며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남편이 작은방을 등지고 있었고 B는 거실 창가 쪽을 등지고 작은 방을 정면으로 보는 상태였는데 남편이 피해자 멱살을 잡은 상태로 거실 창가 방충망 있는 쪽까지 두 세 걸음 밀고 가서 한 손으로 방충망을 열고 B를 밀어버렸습니다. B는 목이 잡혀서 그런지 크지 않은 소리로 ‘어 ‘어 하면서 난간에 등을 대고 기대어 뒤로 넘어갔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B가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자세히 진술해놓고도 아내는 왜 이후 진술과 법정 증언에서는 다시 범행을 못 봤다고 한 걸까요? 먼저 아내의 뒤집힌 진술은 아래와 같습니다.

A씨 아내 7차 조사

집 현관 문을 열고 현관에서 ‘아버님, 저 학교 다녀올게요라고 소리만 지르고 다시 나왔습니다. 당시에 B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8시 12분쯤 남편한테 전화가 걸려 와 ‘위에서 내려다 보니 (B가) 안 보인다 뒤쪽을 봐라라고 해서 확인해봤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가 중간중간 계속 B에게 전화를 시도했는데 통화가 되지 않았고, 그 후 연락이 안 닿자 오후 4시 54분경에 실종신고를 했습니다.

일단 진술 내용상 바뀐 진술은 이전 진술과 달리 확실히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재판부는 봤습니다. 그럼 아내가 진술을 바꾼 이유가 뭔지 주목했습니다. 아내가 범행 목격을 부인하면 남편이 범행을 했다는 증명이 되지 않으니 남편 A 씨에게 유리하게 되는 상황이 됩니다. 아무래도 남편을 위해서였을까요?

오히려 재판부는 남편의 보복우려를 이유로 봤습니다. 아내와 자녀의 진술에 따르면 A 씨는 가정에서 점차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이번 사건이 벌어졌고 수사 당시 남편이 구속될 줄 알고 범행 목격담을 진술했는데 덜컥 구속영장이 기각돼 버렸습니다. 아내는 급하게 부랴부랴 신변보호요청을 하긴 했지만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고 결국 아귀가 안맞는 진술을 반복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재판부는 판단한 거죠. 결국 범행을 목격할 당시의 아내의 진술이 진실에 가까운 반면, 이후의 진술은 모두 거짓이라고 보고 A 씨의 범행이 맞다는 점에 손을 들어주게 됩니다.

무시할 수 없는 증인

일러스트=우종환 기자 (Ideogram 생성)

살짝 언급됐지만 범행 현장에는 남편 A 씨와 아내, 피해자 B 씨 외에 한 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B 씨가 돌보고 있던 사람, A 씨의 동생이었죠.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동생은 범행 당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관건은 동생의 인지능력과 진술을 비장애인만큼 신뢰할 수 있느냐였습니다. 이에 전문가들이 투입됐습니다. 말이 부족하고 글씨도 쓰기 어렵기 때문에 동생은 간단한 질문에 답하는 정도만 가능했습니다. 그렇다고 단답형 질문만 계속하면 질문자의 의도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동생은 자신이 겪은 게 아닌 답변을 하게 될 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결과 동생은 ‘피해자를 어떻게 밀었느냐는 질문에 질문자의 멱살을 잡고 흔들거나 목 부위를 미는 동작을 했습니다. 전문심리위원들인 동생이 직접 보지 않았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 역시 동생의 답변이 앞선 A 씨 아내 진술과도 부합하는 만큼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A 씨 측은 동생이 증언거부권 같은 권리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증언했을 것이라며 법적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동생이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며 ”인지능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증거능력을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동생이 범행을 입증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죠.

잠깐 언급했지만 동생은 A 씨 아내가 집 안에 있었다는 것도 증언했습니다. 덕분에 아내는 현장에 없었다고 주장하다가 이후 자신도 현장에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살이 아닌 가장 강력한 증거

마지막 증인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숨진 피해자 B 씨였습니다. 물론 망자인 B 씨가 법정에 나와서 진술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진술 대신 남겨놓은 게 있었습니다. 바로 ‘일기였습니다.

재판부는 A 씨의 범행이 입증되려면 B 씨가 자살했을 가능성이 작다는 점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B 씨의 일기가 이를 어느 정도 입증하고 있었습니다.

B씨 일기 중

오늘은 물리치료 받고 통증이 가라앉은 것 같다. 빨리 가라앉아야 내가 일하기가 좋은데 기다려다. 집에 와서 HOT BAG으로 뜨겁게 렌지에 돌려서 허리 등에 대니까 뜨거운 열이 등허리에 닿아 조금은 통증이 없어진 듯하다. 내일 또 병원에 가야겠다.

- 2019. 9. 30.


오늘은 휴일이라 병원에 갈 수도 없고 집에서 신경쓰면서 지내야겠다. 전기찜질해도 골다공증은 낫는 게 아니라 임시방편이다. 내일 병원에 갈 때까지 조심해서 지내야겠다.

- 2019. 10. 3.


엊저녁은 힘든 밤이었다. 골다공증으로 인해 온 몸둥아리가 아프고 쑤셔서 밤새 잠도 잘 못잤다. 고통은 말할 것도 없이 고통을 참고 한밤을 새우다시피 지냈다. 병원서 치료받고 옴.

- 2019. 10. 4.


아침 08:30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 받고 옴

- 2019. 10. 5.


아침 물리치료 왕복. 오후 1시 30분에 병원에 가서 변비치료약 처방 받아와야겠다.

- 2019. 10. 8.

B 씨는 매일 병원에 다녀오면서 치료받은 내용과 경과를 일기에 일일이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강한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B 씨가 자살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작다는 증거이기도 했죠. 재판부는 사건 당일에도 B 씨가 병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정황이 있고 일기를 봐도 자살을 의심할 정황이 없는 점을 고려하면 자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1심과 2심이 내린 형량은?

서울고등법원 (사진=연합뉴스)

A 씨가 B 씨를 살해한 게 맞다는 결론은 1심에 이어 2심까지 유지됐습니다. 지난 2월 1심 법원이 A 씨의 살인 혐의를 인정해 징역 15년을 선고했고, 지난 14일 서울고법 형사5부(서승렬 부장판사)도 A 씨와 검사 측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징역 15년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2심 법원은 A 씨의 형량을 정한 이유를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피고인은 피해자와 병원 문제, 돈 문제 등으로 다투던 중 피해자를 아파트 17층 베란다 밖으로 떨어뜨려 살해하였는바, 범행 방법이 잔혹하고 그 결과도 참혹했던 점, 피해자가 피고인 부부에게 자신의 재산을 증여하였고 장애가 있는 피고인의 동생을 지극정성으로 돌봐왔던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의 이 사건 범행은 더욱 불법상과 반사회성이 큰 점, 피해자는 지면에 추락해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서 끔찍한 공포와 고통을 느꼈을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이 즉시 신고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결과 범행 시점으로부터 약 30시간이 이후에야 담벼락과 노상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됐던 점, 피고인은 책임 인정과 사죄를 포함해 유족의 용서를 받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점….

- 2심 재판부

자신과 아내에게 땅과 집 상속을 약속해줬던 이웃, 거기다 뇌성마비를 앓고 있던 동생을 데려다 보살펴주기까지 한 이웃이었는데 한 순간의 다툼이 귀한 인연을 악연으로 만들었습니다. 악연이 범죄였음을 증명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B 씨로부터 상속을 받을 예정이었던 아내, B 씨의 보살핌을 받은 동생, 그리고 B 씨 자신이었습니다. A 씨에겐 자신의 아내와 동생이었지만 아내와 동생에게는 누가 더 소중한 인연이고 가족이었을까요?

A 씨는 2심 판결에도 불복하고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대법원에서도 결백을 주장할 걸로 예상됩니다. 대법원에서 A 씨의 범죄가 명확해질지 또는 2심까지는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지 지켜볼 일입니다.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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