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주하의 '그런데'] 벌금이 더 싸다는 사고방식
입력 2023-09-12 19:58  | 수정 2023-09-12 20:02
참기업인 유일한 박사는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정도경영'의 표상으로 기억됩니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31세의 청년 유일한은 일제 식민 치하에서 굶주리고 병든 민초들의 참상을 접하며 '건강한 국민만이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일념으로 제약회사를 세우는데.

그가 남긴 여러 명언 중 가장 울림이 컸던 건, '기업의 이익은,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가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그는 1936년, 회사를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3년 뒤 한국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실시해 주식의 절반을 유한양행 전 사원에게 무상으로 배분하기도 했죠.

청년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국내 열 번째 유니콘기업으로 성장한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 측이 '어린이집을 짓느니, 안 짓고 내는 벌금이 더 싸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가 결국 공식 사과했습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상시 여성 근로자가 300명 이상이거나 근로자 500명 이상을 고용한 사업장은 직장 어린이집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데, 무신사는 직원이 천500명, 여성 직원 비율도 55%에 달해 당연히 어린이집 설치가 의무인데도, 실수요자가 적다는 이유로 설치를 안 하기로 했거든요.

무신사 말대로 어린이집을 설치하지 않고 버텨도, 지자체장은 1년에 두 차례 이행 명령을 내리고 미이행 시 매회 1억 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게 전부입니다. 큰 기업에선 어린이집 운영비에 비해 벌금을 무는 게 남는 장사라 이거죠.


실제로 지난 5월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렇게 어린이집 설치 의무를 회피하는 기업은 136곳이나 됩니다.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인생 전반부를 엄청난 부를 축적하느라 보냈고, 나머지 후반부는 이를 나누는 데 매진했습니다. "사회 환원은 부자들의 신성한 의무"라면서 말이죠.

윗분들은 직원들에게 이런 말, 참 많이 하죠. '다 우리 식구'라고요.

하지만 너와 네 아이를 위해 돈을 쓰느니 벌금을 내겠다는 게 식구 맞습니까.

정말 내 가족이 회사를 다닌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죠.

아이 맡길 곳이 없어 발 동동 구르는데 나 몰라라 하다니요.

이럴 때 하는 말이 있죠. 차라리 남이 더 낫다고요.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벌금이 더 싸다는 사고방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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