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생생중국] 푸얼(보이)엔 푸얼(보이)차가 없다?…중국도 이젠 차보다 커피
입력 2023-09-10 13:00 
푸얼시에서 커피농장과 커피숍을 운영하는 화룬메이 씨가 직접 재배한 커피를 끓이고 있다. / 사진 = MBN 촬영


지난 4월에 중국 남부 윈난성(雲南省) 푸얼시(普洱市)를 찾았다. 미얀마와 라오스와 인접한 중국 최남단 지역이어서 그런지 우리나라에선 봄 날씨를 느껴야 할 시점에 이미 한 여름 같은 더위가 다가왔다.

베이징에서 비행기로 4시간을 날아가 윈난성 쿤밍(昆明)에 도착한 뒤 다시 기차를 타고 푸얼역에 내려 또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해 다다른 곳은 어느 산 중턱에 뜬금없이 서 있는 커피숍이었다. 이 커피숍과 주변 커피농장을 함께 운영하는 화룬메이 씨의 말을 들어보자.

저는 이곳 푸얼시에서 나고 자랐어요. 도시로 나가 대학에선 인테리어를 전공했지만, 졸업 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일군 가업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커피 사업을 하게 됐어요.”



보이차의 고장 푸얼시, 이제는 커피 재배가 대세


별로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말이지만, 이곳이 푸얼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푸얼시는 중국 10대 명차 중 하나인 푸얼차(普洱茶), 일명 보이차의 고향이다.

고대 중국과 티베트, 인도를 잇는 교역로인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출발점도 바로 이곳 푸얼시인데, 차마고도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교역로가 생긴 이유가 푸얼시에서 재배된 차를 외부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푸얼시가 이제는 중국 내 최대 커피 산지로 바뀐 것이다. 중국 현지 매체에 따르면 중국 커피의 99%가 윈난성에서 생산되는데, 그중 절반 이상은 푸얼시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기자가 푸얼역에서 버스로 한 시간여를 이동하는 동안 보이는 것도 전부 커피 경작지였다. 실제로 1980년대 7헥타르에 불과했던 푸얼시의 커피 재배 면적은 2021년 기준 9만 3천 헥타르로 1만 3천 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푸얼시 어디에서도 이런 커피 경작지를 흔하게 볼 수 있다. 푸얼시가 차의 고장이 아니라 커피의 고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말이다. / 사진 = MBN 촬영


커피 인구 3억 명…매년 30% 가까이 성장하는 중국 커피 산업


그렇다면 중국인의 입맛이 차에서 커피로 변한 것일까?

코트라에 따르면 2021년 중국 커피 산업 시장 규모는 3817억 위안, 우리 돈으로 69조 2천억 원이었는데, 연평균 성장률이 27%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이 경우 2025년엔 1조 위안, 우리 돈 180조 원을 훌쩍 넘기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중국 하면 떠오르는 음료는 단연 차(茶)다. 동네 곳곳에서 차 전문점이 즐비하며, 지방 여행을 하면 어김없이 해당 지역에서 나는 차를 파는 곳들이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매년 300만 톤 이상의 차가 생산되고, 차 관련 기업만 30만 개 이상, 종사자가 7천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가히 세계 최고 차 시장이 아닐 수 없다. 중국 중장년층에겐 최고 기호식품은 단연 차다.

그럼에도 중국 소비자들의 선호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현재 중국의 커피 소비자는 약 3억 명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절대적인 숫자는 많지만, 전체 14억 인구에서 보면 아직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 중국인의 연평균 커피 소비량은 전 세계 평균의 10%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중국의 커피 산업 성장 가능성은 아직도 크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도 도시에선 이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차를 마시는 사람들보다 더 흔하게 목격할 수 있게 됐다. / 사진 = MBN 촬영


스타벅스·루이싱커피, 중국 커피 시장 놓고 치열한 미‧중 경쟁


이렇게 뻗어가는 중국 커피 시장을 놓고 벌이는 미‧중 경쟁도 볼 만 하다.

먼저 세계 최대 커피 브랜드인 스타벅스는 전 세계 80여 개 나라에서 3만 4천여 개의 매장을 운영 중인데, 중국에만 6천 개가 넘는 매장이 있다. 전체 매출 중 중국 매출 비중 역시 20% 정도로, 본토 미국에 이은 글로벌 지역 중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올 2분기 중국 내 매출은 전년 대비 46%나 급증하는 등 성장이 정체된 본토 미국 시장보다 중국 시장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모양새이다.

이에 맞서는 중국 토종 커피 브랜드 루이싱커피(瑞幸咖啡)의 행보는 중국 특유의 물량공세다. 지난 6월엔 창업 6년 만에 중국 내 1만 번째 매장을 열기도 했다. 여기에 이번 주엔 중국 명주 마오타이(貴州茅臺)와 손잡고 ‘마오타이 라떼를 선보이는 등 화제성도 있다.

커피에 마오타이와 우유를 섞은 이 제품은 알코올 도수는 0.5% 미만. 한 잔 가격이 38위안, 우리 돈 약 7천 원으로 결코 싸지 않지만, 출시 첫날인 지난 4일 하루에만 중국 전역에서 무려 542만 잔이 팔렸을 정도로 대박을 쳤다. 기자가 마오타이 라떼를 먹어본 소감은 사실 술도 커피도 아닌 어정쩡한 그런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신기한 건 사실이었다.

마오타이 라떼를 직접 마셔 본 소감은 ‘글쎄였다. 하지만, 술과 커피의 조합이라는 자체만으로도 신기하긴 했다. / 사진 = MBN 촬영


이렇듯 이제는 중국도 차의 나라에서 서서히 커피의 나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기자는 여전히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중국의 전통 차 세트를 선물한다. 뤼샹쉐이수(入乡随俗)라는 중국말이 있다. 고향에 가면 그 지역 풍속을 따라야 한다. 즉,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다. 사무실의 중국인 직원에게 이 말을 하니 풍속을 잘 따르려면 그 지역 사람들과 그 지역에서 나는 차를 함께 마셔봐야 한다”고 귀뜸해준다. 때문에 아직까지 중국을 알려면 커피보다는 차가 더 낫다는 생각이 앞선다.

[윤석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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