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나 납치됐어" 아들 전화에...적금 깨 달려간 보이스피싱 피해자
입력 2023-08-31 17:02  | 수정 2023-08-31 17:10
이 사건 피의자인 1차 수거책 김모씨가 지난 11일 오후 2시쯤 서울시 은평구에서 금융기관 사칭 보이스피싱 전화에 속은 피해자로부터 53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빠, 나 사채를 썼는데 갚지 못해서 납치됐어"

지난 17일 오전 10시쯤 인천에 거주하는 60대 A씨는 아들로부터 이 같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A씨는 이내 전화를 바꿔 받은 중국의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아들을 되찾고 싶으면 당신 아들이 사채로 가져다 쓴 3천450만원을 대신 갚아라"라는 협박을 받았습니다. A씨는 전화가 끊기자 곧장 아들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으나, 연락은 닿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A씨는 그동안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면서 번 돈으로 꾸준히 부어 1억 5천만원 상당을 모아둔 적금을 해지했습니다. 이어 사건 당일 오후 1시 약속 장소인 부천 시내로 가 보이스피싱 조직의 1차 수거책 김모(33) 씨에게 현금 3450만 원을 건넸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요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오후 2시쯤 다시 A씨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 아들을 풀어 주려 했는데 갑자기 흉기를 들고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우리 직원이 다쳤다. 합의금 5천만 원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보이스피싱을 의심한 A씨의 아내는 "경찰에 신고하자"고 했고, 그의 신고로 곧바로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보이스피싱 사건이라고 확신한 경찰은 오후 4시 40분 약속 장소인 광명 시내로 나가는 A씨에게 현금 가방으로 위장한 쇼핑백을 갖고 가도록 했습니다. 경찰은 이와 동시에 주변에서 잠복하다가 현장에 나타나 A씨로부터 쇼핑백을 넘겨받으려는 김씨를 검거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김씨는 지난 10일부터 검거 당일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자신이 속한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은 A씨 등 피해자들로부터 1억 원 가까운 돈을 수거해 2차 수거책에게 전달하거나 전달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습니다.

경찰은 김씨를 상대로 한 수사를 통해 이튿날인 18일 서울시 구로구에서 2차 수거책인 중국인 이모(48·여) 씨 등 중국 국적의 피의자 3명을 붙잡았습니다.

압수물/사진=연합뉴스


경찰은 이씨 등의 은신처에서 현금 1억 1천만 원과 계수기, 필로폰 22g, 마약 흡입기구, 가발 등 사건 증거물을 발견해 압수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2차 수거책들은 1차 수거책인 김씨와 달리 보이스피싱 조직으로부터 현금뿐만 아니라 마약류도 대가로 전달받아 투약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기 광명경찰서는 사기 및 마약류 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이씨 등 3명을 구속하고, 김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오늘(31일) 밝혔습니다.

경찰은 이들의 상선인 3차 수거책은 물론 전체 범행을 지시한 보이스피싱 조직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A씨의 개인정보를 사전에 탈취해 접근하고, 범행 과정에서는 아들과 전화 연락이 닿지 않도록 기술적 조처를 해 피해자를 완벽히 속인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보이스피싱 수법이 날로 고도화·지능화하고 있어 국민적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습니다.

[김가은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kmke39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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