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노출 심한 옷이 성범죄 원인"…왜곡된 통념 여전
입력 2023-08-22 17:13  | 수정 2023-11-20 18:05
사진 = 온라인커뮤니티
형법 제298조 '허락 받지 않은 신체 접촉, 10년 이하 징역·1,500만원 이하의 벌금'
'노출이 심한 옷차림. 성폭력 범죄의 원인인가'…"그렇다" 46.1%

최근 비키니를 입은 채 오토바이를 타고 도심 일대를 누비는 '비키니 라이딩'이 논란이 됐습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대구, 부산에서도 비키니를 입은 채 오토바이와 킥보드 등을 타며 도심을 활보한 이들에게 누리꾼들은 불쾌하다는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옷은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맞게 입어야 한다는 'TPO 원칙'을 위배했다는 겁니다.

이러한 누리꾼들에게 '비키니 라이딩' 일당 중 한 명인 모델 겸 스트리머 A 씨는 "저 때문에 불쾌했다면 죄송하다"며 사과했습니다.


그러면서 "입는 건 자유, 이렇게 입었으니 쳐다보는 것도 자유"라며 "만지지만 말아달라"고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이들에게 경범죄 처벌법 3조 2항의 과다노출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A 씨의 말처럼 우리나라에서 비키니를 입고 도심을 활보하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경범죄처벌법에서 '과도한 노출'이란 공개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성기·엉덩이 등의 신체 주요한 부위를 노출해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법이 규정하고 있는 '공개된 장소'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오긴 하지만, 통상적으로 도심 대로변이나 공공장소 등 노출을 할 만한 장소가 아닌 곳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노출을 할 만한 장소가 아닌 곳에서 노출을 하면 그 사람을 만져도 되는 걸까.

형법 제298조에 따르면, 상대가 허락하지 않은 신체적 접촉으로 성적 수치나 혐오의 감정을 느끼게 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즉, A 씨가 "만지지만 말아달라"고 했듯이, TPO에 맞지 않는 옷차림이든 법에 저촉이 되는 과도한 노출을 했든 상대가 원치 않은 신체적 접촉을 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만져달라고 입은 옷이 아니다"


일본의 한 페스티벌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DJ소다(본명 황소희)의 기사가 화제입니다.

황소희 씨는 지난 13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뮤직 서커스 공연 당시 관객에게 다가갔다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호소했습니다.

황 씨가 SNS를 통해 밝힌 내용에 따르면, 범행은 스텐딩석에서 발생했으며 관객 여러 명이 황 씨의 신체 부위를 만졌습니다.

관객들이 손을 뻗어 황 씨를 만지는 증거 사진도 함께 공개됐습니다.

이에 일본 공연기획사 트라이하드 재팬은 입장문을 내고 "소다님의 퍼포먼스 중 몇몇 관객이 가슴 등 신체를 만지는 사건이 발생했다"면서 "이런 성범죄 행위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가해자를 특정해 법적 조처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기획사는 오사카 현지 경찰에 성명 미상의 남성 2명과 여성 1명 등을 '동의 없는 음란 행위' 및 폭행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고발장을 접수한 경찰은 현장에서 촬영된 영상을 중심으로 수사를 벌였고, 오늘(22일) 20대 일본인 남성 2명이 경찰서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경찰에 자수하기 전 일본의 한 유튜브 채널 방송에 출연해 "DJ소다 음악을 들으러 가서 술을 많이 마셨다. 술김에 가벼운 마음으로 해버렸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DJ소다에게 힘든 시간을 드려 죄송하고 행사 측에도 면목 없다"고 사과했습니다.


트라이하드 재팬이 언급했듯이 황소희 씨가 당한 일은 성범죄 행위입니다.

하지만 성범죄를 당한 황 씨는 '2차 피해'를 겪고 있습니다.

영화 '고양이의 보은'을 제작한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은 자신의 SNS 계정에 "DJ소다가 주장하는 성추행 피해는 공개적인 '꽃뱀질' 같은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모리타 감독은 "남자를 유혹해 붙게 한 뒤 무서운 건달이 나타나 돈을 뜯어내는 것"이라며 "음악 페스티벌 주최자는 DJ소다의 수작에 가담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모리타 감독의 글을 본 많은 한일 누리꾼들은 분노하며 "명백한 2차 가해"라는 비판을 쏟아냈지만, "DJ소다의 과다한 노출 의상이 범죄를 유발했다"는 취지의 악성 댓글도 달렸습니다.

사진 = 네이버 뉴스 댓글 캡처

특히 황소희 씨의 사연을 소개한 언론 보도 등에는 "만져 달라고 입은 거 아닌가", "야하게 입었으면 성추행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지", "본인이 자초한 일", "굶은 맹수 앞에서 고기 던져 놓고 먹으라고 던진 거 아니라고 하는 격", "남자의 본능에 대해 무지하다"는 등의 댓글이 셀 수 없이 달렸습니다.

황 씨의 평소 옷차림과 성범죄를 연관 짓는 댓글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노출이 있는 의상으로 관심을 얻었으니, 감수해야 한다는 내용 등입니다.

사진 = 네이버 뉴스 댓글 캡처

이에 황 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내가 어떤 옷을 입든 성추행과 성희롱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이 말을 하기까지 엄청난 용기를 내야 했다"며 "노출이 있는 옷을 입는다고 그들이 나를 만지거나 성희롱 할 권리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노출 심한 옷, 성범죄 원인"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실제로 많은 국민들이 '노출이 심한 옷차림이 성폭력 범죄의 원인이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만19~64세 남녀 1만 20명을 대상으로 '2022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연구'를 한 결과 응답자의 46.1%가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면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는지'를 묻는 문항에는 32.1%의 응답자가 '그렇다'라고 답했습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따르면, 피해자의 옷차림 등 행실을 성폭력의 원인으로 몰아세우는 행위는 대표적인 '2차 피해'로 꼽히고 있습니다.

아울러 법원 또한 다수의 성폭력 사건 심리에서 "성폭력을 피해자의 평소 행실 탓으로 돌리는 주장은 '상당한 2차 피해'(서울중앙지법 2019고정215)"라고 규정했습니다.

여성가족부는 "전반적으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과 '피해자다움'에 대한 인식, 피해자에게 성폭력 피해의 책임을 돌리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면서 "이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최유나 디지털뉴스 기자 chldbskcjstk@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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