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종이컵에 왜 유독물질이…직원 52일째 의식불명
입력 2023-08-19 09:41  | 수정 2023-08-19 09:51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이미지. /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책상 위 종이컵에 든 액체 마셔
경찰 "업무상과실치상·화학물질관리법 위반 여부 수사"

경기 동두천시의 한 중견기업에서 종이컵에 담긴 유독물질을 물인 줄 알고 마신 근로자가 52일째 의식불명 상태입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건 지난 6월 28일 오후 4시쯤.

30대 여성 근로자 A 씨는 이 회사에서 광학렌즈 관련 물질을 검사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평소 종이컵에 물을 따라 마시는 A 씨는 이날도 현미경 검사를 마친 후 책상 위에 물이 든 종이컵을 발견하고 이를 의심 없이 마셨습니다.


하지만, 종이컵에 들어 있던 액체는 물이 아니라 불산이 포함된 무색의 유독성 용액이었습니다.

해당 용액은 직장 동료 B 씨가 검사를 위해 종이컵에 따라 놓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용액을 마신 A 씨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져 인공심폐장치(에크모·ECMO)를 달고 투석 치료를 받았습니다.

다행히 맥박과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사건 발생 52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진 =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사고 발생 후 A 씨의 남편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불산 독극물을 마신 7살 딸 아이의 엄마가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며 회사의 안일한 대처가 더 큰 화를 불렀다고 주장했습니다.

남편 C 씨는 "아내가 불산을 마신 후 5시간 동안 극약 독극물이 아닐 것이라는 회사의 말에 제대로 응급처치도 못 받았다"며 "병원을 3번이나 이송하는 동안 회사에서 보내준 성분 표시에는 불산도 없었다"고 분노했습니다.

그는 "불산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조금 더 빠른 조치를 취해 경과가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다"며 "어떻게 그런 독극물을 물 먹는 종이컵에 담아 관리하고 한 가정을 이렇게 하루 아침에 풍비박산 낼 수 있냐"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왜 본인이 따라 놓은 물도 아닌데 마셨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아내가 심정지가 오기 전 한 말에 따르면)그 검사실은 아내가 90% 혼자 쓰고 있던 곳이며 종이컵에 물 마시는 사람도 아내 뿐이라고 한다"면서 "아내가 현미경 검사가 끝나고 오른쪽을 봤는데 종이컵이 있길래 순간 본인이 따라 놓은 물인 줄 알고 먹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남이 따랐든 누가 따랐든 먹으면 안 되는 거냐, 거기에 불산이 있는 게 잘못된 것 아니냐"면서 "입장 바꿔 생각해 달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러면서 "'종이컵 안에 불산이 없었을 것'이라는 회사의 말 한 마디에 심정지가 오기 전까지 불산에 대한 아무 치료도 못 받았다"며 회사에 책임이 있음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했습니다.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 고의성·과실 여부 등을 중심으로 수사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A 씨를 해치려는 고의성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회사 차원에서 유독성 물질 관리가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관련 법규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최유나 디지털뉴스 기자 chldbskcjstk@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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